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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폭풍 속의 17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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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손혁재 / 불교포럼 운영위원 2004년 04월 266호
선거 한 달을 앞두고 정치판에 폭풍이 몰아쳤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공조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것이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망연자실 절망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득의양양 기세가 올랐다. 그러나 이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국민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70%가 넘는 국민이 탄핵에 반대함을 보여주었다.
탄핵소추 이후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거의 50% 수준으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도는 뚝 떨어졌다. 한나라당 지지도는 열린우리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민주당 지지도는 거의 한 자리 수로 원외정당인 민주노동당에게 뒤지기도 한다. 현재의 지지도가 선거 때까지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이 추세를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센 탄핵반대 여론에 놀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 책임을 방송 탓으로 떠넘겼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방송사를 윽박질렀지만 민심은 더욱 싸늘해질 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뿐만 아니라 반대자까지도 탄핵을 반대하는 것은 탄핵소추안 의결이 정당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은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아무 때나 탄핵을 소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범죄행위가 아니라 비판으로 끝날 실수를 빌미로 탄핵을 한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국민은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국민이 선출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가 정지되었다. 대통령 지위는 유지되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결정될 때까지 노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된다. 노 대통령이 직무를 행한다면 그것은 무효가 된다. 대통령 권한은 국무총리가 대행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절차를 시작했다.
탄핵심판의 최종결론이 내려지기 전에 4·15총선이 치러진다. 유권자는 4·15 총선에서 소중한 주권행사를 해야 한다. 비리 의원들을 지키기 위한 방탄국회, 체포동의안 부결, 구속되어 있는 의원을 석방시킨 ‘교도소 습격사건’ 등 16대 국회는 참으로 문제가 많았다. 이런 16대 국회에 대해 국민은 4·15 총선에서 엄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다수 국민이 탄핵안 가결을 헌법상 국회 권한의 충실한 행사라기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정치적 공세로 보는 한 열린우리당은 당연히 1당이다. 과반수인가 아닌가만 유동적일 뿐이다.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엉뚱하게 비치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 정서를 자극한다든가, 측근들의 결정적인 비리가 드러난다든가 하는 경우가 아니면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
민주당은 기존의 지역적 지지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의석 확보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우세했던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하기는 더욱 어렵다. 민주당은 개혁의 이미지를 열린우리당에게 선점 당한 채 고전해왔다. 게다가 탄핵 파동에서 보이듯이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모습이 민주당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호남과 DJ에 대한 배신’을 강조해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을 붙잡으려 하겠지만 별 성과가 없을 것이다. DJ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결집력이 약화된 지지자들을 끌어들일 능력도 민주당에게는 없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을 확보해도 민주당의 세는 줄어들어 ‘호남의 안방대장’도 되지 못하는 ‘호남의 자민련’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지역에서는 완전히 몰락하고 호남지역에서도 명맥만 유지할 뿐 ‘호남의 여당’ 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의석수가 한 자리 수에 머물고 있는 자민련은 원외정당인 민주노동당에게까지 쫓기고 있다. 15대 국회 하반기에 51석까지 늘어났던 의석은 16대 총선에서 17석으로 줄어 원내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했다.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는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에게 뒤졌고, 16대 대선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자민련이 충청권에서의 녹색바람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지만 자민련이 회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번 총선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진보정치세력의 원내 진입이다. 민주노동당은 16대 대선에서 100만 표 가까운 득표로 확실한 대안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굳혔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민주노동당이나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것보다 축소되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약진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원내진출은 기정사실이다.
이번 총선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물갈이이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돌풍을 몰고 왔던 낙천·낙선운동은 물론이고 지지·당선운동, 후보추천 운동 등 다양한 유권자 운동이 등장하면서 ‘물갈이’ 민심이 선거의 최대 변수로 등장했다. 게다가 탄핵안 가결로 국회에 대한 국민불신이 높아져 낙천·낙선운동 등 유권자운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16대 대선을 계기로 특정한 지역에 압도적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카리스마적 1인 보스가 끌어가던 사당정치, 지역정치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돈이나 지역감정, 색깔론, 흑색선전, 언론의 위력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17대 총선에서도 많은 유권자는 낡은 정치의 퇴장을 바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정치권만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7대 총선은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낡은 정치가 탄핵안 파동을 계기로 정치에서 퇴장하는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