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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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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5년 04월 158호
명백한 과오
종단을 개혁하고자 사부대중이 혼연일치가 되어 힘을 모은 사건이 있은 지 꼭 일 년이 지났다. 서의현으로 대표되는 구 종권의 파행적인 종단 운영은 불교계만의 과제가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걱정거리였다. 군사독재정치를 종식하고 이른바 민간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 사회 개혁을 부르짖고 있음에도 불교계의 무사안일은 여전히 계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양식있는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종단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구 종권의 대표적인 잘못은 정치 권력과 밀착하여 종단의 자주성을 훼손한 데 있었다. 세속의 정치가 잘못을 저지르면 마땅히 그것을 교정하고 중생의 공동 이익을 위해 정진하도록 계도하는 것이 종교인의 도리인데, 오히려 구 종권은 독재와 부정으로 중생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부도덕한 정권과 결탁하여 그 정권의 안녕을 빌어주고 때로는 정권의 입김으로 종권이 영향을 받게 하였다. 이 점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명백한 과오였다.
구 종권의 과오는 승가 공동체의 전통 가풍인 화합을 해치고 대중 사이에 갈등과 반목을 조장한 점에도 있다.
종권을 지키려는 집착욕만이 가득하여 잘못을 고쳐 주려는 비판 세력에 대해 가혹한 조치를 서슴치 않아 종단의 질서는 엉망이 되고 따라서 교계 안팎으로 수행 승단의 위상에 커다란 상처를 갖게 하였다.
또 하나는 삼보 정재를 자의적으로 사용하여 종단의 건강성을 해쳤다. 종단 운영에 필요한 일체의 재정이 공개된 상태에서 들어오고 나가야 마땅한데, 몇몇 목 좋은 사찰을 장악하여 비공개적인 수입과 지출로 종단을 운영하였다. 게다가 정치자금으로 유용되었다는 의혹을 산, 권력을 배경으로 수주한 정부 공사대금이 불사대금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사찰의 관리 책임자인 주지직을 매판매직하여 소중한 정재를 탕진하고 출세간의 청정한 규율을 흐려 놓았다.
더욱이 구 종권은 대중의 의사는 무시한 채 독선적으로 종권을 연장하려 했다. 과거 세속 정치에서도 국민의 여론을 물리력으로 탄압하며 독재를 한 결과 국민의 힘에 의해 권력의 비참한 말로를 보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 종헌의 조항마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종권을 연장하려는 작태에 사부대중은 정의로운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서의현 체제에 대한 비판은 명백한 사실에 입각하여 내려진 것이었다. 막연한 추측이나 심증으로 넘겨짚거나 매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집권한 팔 년 동안의 행위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아울러 한국 불교의 발전을 위한 구종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그의 출신, 성장 과정, 배움의 정도 등이 비판의 기준이 되지 않았다. 오로지 그가 팔년 동안 한국 불교에 끼친 부정적 영향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비판을 가한 것이다. 만일 막연한 비난이나 음해였다면 결코 ‘정의로운ꡑ 일이 될 수 없으며 대중이 그렇듯 지칠 줄 모르고 몇 날 며칠을 개혁 불사에 전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지난해의 개혁 불사가 갖는 중요한 교훈이다.

냉철함과 온화한 개혁 정신
수행과 정진의 도량을 감연히 떠나온 전국의 승려나 생업을 팽개치고 구종의 의지를 드높인 재가자등 사부대중의 가슴속에는 개혁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져 종단의 전통적인 가풍이 바로 서고 반목과 질시, 갈등과 대립의 오랜 고질적 풍토가 말끔히 걷히길 바라는 염원이 간절하였다. 먹장구름처럼 언제나 스산하게 종단을 덮고있는 못된 분위기가 사라지고 따사로운 햇빛이 종단과 사회를 화기어리게 하여 주길 학수고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해 4월 15일 이후 조계사에 운집했던 사부대중은 다시 수행 도량으로, 생업 현장으로 돌아가서도 개혁회의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주시했다. 종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서의현 체제가 막강한 세력을 부리게끔 도와 주었던ꡐ해종 행위자’ 에 대한 처리에서부터 종헌의 개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현재의 새 체제로 이양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더러는 불만스러운 적도 있었으나 그래도 구각을 벗겨 내는 진통으로 이해하였다. 종단의 이상적 건설이라는 당위를 실현함에 있어 현실적 어려움이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정으로 대중은 받아들였다. 특히 해종 행위자에 대한 처리가 애초 대중의 요구 수준과는 많은 차이가 났을 때 얼마쯤 반발도 있었다. 그러나 개혁회의의 심사 과정이 비교적 여법하였으므로 그 결과에 대해서도 대중이 크게 반발없이 수긍한 것이다. 여기서 ‘여법했다ꡑ함은 수많은 해종 행위 당사자를 일일이 등원 공고히하여 그들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었고 화합과 섭수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조치였다는 뜻이다. 곧 흥분과 분위기에 좌우되어 징계를 위한 징계를 내리지 않고 정법 정신에 밑바탕을 둔 승가의 규율을 정립하려는 조치를 하였다는 점에서 좋은 귀감이 되었다.

적어도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에 개혁을 이루는 과정에서 대소간의 불상사나 반 개혁적 준동이 있었음에도 대중의 지지를 얻어 굳건히 개혁 불사를 추진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나 종단적으로 도덕적 우월성을 고수했던 것이다. 만일 개혁을 추진하는 집행부가 이러한 정도를 걷지 않고 기분 내키는대로, 또는 분위기에 편승한 무리수를 두었더라면 그 결과는 과거의 악순환을 재현하여 한국 불교의 퇴행만을 가져 왔을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총무원에서 작성한 ‘불교방송정상화방안ꡑ이라는 문건을 불교방송에서 출처를 확인하지 않고 지난 2월 24일 오후 다섯시 이십분ꡐ무명을 밝히고’ 방송 중에 ‘불교방송을 음해하는 검은 세력들에게 경고한다ꡑ라는 감정적 성명서를 불교방송 연출자 일동 명의로 원색적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종회 방송대책소위원회(위원장: 명진스님)는 수차례 모임을 갖고 다각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며 김태호 사장 퇴진 등 네 개 항의 요구 조건을 결의하였다.
불교방송 정상화 방안이라는 문건에 대해 치졸하다할 만큼 대응한 불교방송 관계자의 작태는 방송기관에 종사할 수 있는지 그 자질을 의심케 한다. 일단 이들에 대한 조치는 방송사가 대중의 여론을 반영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실로 불교방송의 탄생을 위해 사부대중은 헌신적이었다. 그만큼 전파매체를 통한 포교의 필요성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방송이 사십 년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는데 견주어 불교는 단 하나의 전파매체도 없었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실현을 본 것이 불교방송이다. 따라서 방송에 대한 대중의 애정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삼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92년 12월 당시 불교방송 지방망을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걸은 사실도 있다. 그 공약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다가 얼마 전에야 어렵게 부산과 광주지역에 불교방송이 나가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불교방송인들의 사명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물론 세상사가 구설수와 풍문에 휩싸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번 처사는 공중파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무책임하고 경솔했다고 본다.
개혁회의에 이어 출범한 현 총무원장 체제는 사부대중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일반 여론 매체도 구체제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인식이 좋게 바뀌고 있다. 총무원에 대한 그릇된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은 개혁 회의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누적된 종권 행사의 잘못을 바르게 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불교의 위상을 파악하여 사부대중과 순환 체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재가신도들에게도 보편 타당한 행정으로 귀속감과 책임감이 함께 하도록 하고 불교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신바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관념적이고 독단적 관계는 발전적으로 청산하여 종속의 관계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앞으로는 상호의존 또는 상호보완 관계에 좀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 불교적 특징을 드러낼 수 있고, 또 거기서 얻어낼 수 있는 실천적 사상과 정책도 그 만큼 풍부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구종법회에 들이 닥쳤던 공권력에 의한 ‘법난’ 한 돌을 맞아 4월의 봄은 진정 감회가 깊다. 조계사를 날마다 메웠던 열기는 한국 불교의 잠재력이 얼마쯤인지를 실감케 한 쾌거였다. 그 잠재력을 잇고 키워가는 냉철함이야말로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정신을 옳게 구현하
는 길이다. 86년 6월 항쟁으로 분출된 사회 개혁의 정신이 날로 퇴조하는 사회 현실에서 개혁 불사의 정의로웠던 정신만이라도 항상하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