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주변 고을인 거창과 고령 등지에 사는 선비들이 옛적 무진년 정월에 해인사에서 모이기로 약속하고 이곳에 이르러 이때의 정경을 노래한 일이 있었는데, 때는 1868년(고종 5)이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의 행로를 따라 함께 가보기로 하자. 그의 행로는 지금의 거창군 가조면 부산리釜山里를 출발하여 초나흘에 가야면 숭산 소학당小學堂에서 유숙하면서 ‘소학동자’라고 알려진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 선생의 자취를 생각하고, 초열흘에 홍류동 굽이진 길을 통하여 오전에 해인사에 당도하였다.
이때 산중의 푸른 남기가 짙게 맺히고 마침 눈꽃이 휘날려 흰 매화가 사방에 만발한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러한 정경 가운데 한가히 바둑을 두면서 함께 모이기로 약속했으나 저물녘에 이르도록 아직 당도하지 않은 벗을 기다리며 한 수 시를 읊었다.
동황하일송춘래東皇何日送春來 동황이 어느 날 봄을 보내었던가
구곡홍류동부개九曲紅流洞府開 아홉 굽이 홍류동이 열렸네.
남취적성무본백嵐翠滴成無本柏 남기의 푸른 빛 맺혀 뿌리 없는 송백 이루고
설화표작불향매雪華飄作不香梅 눈꽃은 휘날려 향기 없는 매화가 되었구나.
이모선희배기국已謀仙戱排碁局 이미 신선 놀이 꾀하여 바둑을 두고
공수선심단주배空守禪心斷酒盃 공연히 선심을 지켜 술잔을 끊었네.
반후기인유미지飯後期人猶未至 밥 먹은 후에도 기약한 사람 이르지 않으니
오종재헐만종최午鍾歇晩鍾催 오종이 울리길 마치자 곧 만종이 재촉하네.
궁금하게 벗을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고령에 사는 두 벗이 내리는 눈을 무릅쓰고 박모薄暮에 경사진 돌길을 따라 이르렀다. 이때의 심정은 아마 반가운 사람을 만나 청안靑眼으로 변한 진晉나라 완적阮籍의 눈이 무색했으리라. 먼저 이르러 기다리던 선비는 김기수金基洙(1818~1873)이고, 저물녘에 이른 두 벗은 최우문崔宇文과 박영학朴英鶴이었다. 이들이 모이고자 한 것은 옛적 백련사白蓮社의 고사를 계승하여 해인사에에서 시사詩社를 개최하기 위해서였다.
야화포롱삼계대夜話包籠三界大 밤중의 대화는 삼계의 큰 것을 다하고
춘유릉가오후사春遊凌駕五侯奢 정월의 놀이는 제후의 사치를 능가하네.
가남백리문성취伽南百里文星聚 가야산 남쪽 백 리에 문성이 모여드니
최후천년동부공崔後千年洞府空 최고운 떠난 후 천년 홍류동 적막한 때였네.
무진년 정월 산사에서 열린 고붕高朋의 시사는 천년의 홍류동 적막을 깨고 가야산 남쪽 백 리에 찬란한 문성의 광채가 모여드는 성대함을 이루었다.□
※필자 주:본문에 인용한 3편의 시는 김기수의 시문집인 《백후집栢後集》 권1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