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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의 산사에 문성文星이 모여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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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4년 01월 263호
김홍영

가야산 주변 고을인 거창과 고령 등지에 사는 선비들이 옛적 무진년 정월에 해인사에서 모이기로 약속하고 이곳에 이르러 이때의 정경을 노래한 일이 있었는데, 때는 1868년(고종 5)이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의 행로를 따라 함께 가보기로 하자. 그의 행로는 지금의 거창군 가조면 부산리釜山里를 출발하여 초나흘에 가야면 숭산 소학당小學堂에서 유숙하면서 ‘소학동자’라고 알려진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 선생의 자취를 생각하고, 초열흘에 홍류동 굽이진 길을 통하여 오전에 해인사에 당도하였다.
이때 산중의 푸른 남기가 짙게 맺히고 마침 눈꽃이 휘날려 흰 매화가 사방에 만발한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러한 정경 가운데 한가히 바둑을 두면서 함께 모이기로 약속했으나 저물녘에 이르도록 아직 당도하지 않은 벗을 기다리며 한 수 시를 읊었다.

동황하일송춘래東皇何日送春來 동황이 어느 날 봄을 보내었던가
구곡홍류동부개九曲紅流洞府開 아홉 굽이 홍류동이 열렸네.
남취적성무본백嵐翠滴成無本柏 남기의 푸른 빛 맺혀 뿌리 없는 송백 이루고
설화표작불향매雪華飄作不香梅 눈꽃은 휘날려 향기 없는 매화가 되었구나.
이모선희배기국已謀仙戱排碁局 이미 신선 놀이 꾀하여 바둑을 두고
공수선심단주배空守禪心斷酒盃 공연히 선심을 지켜 술잔을 끊었네.
반후기인유미지飯後期人猶未至 밥 먹은 후에도 기약한 사람 이르지 않으니
오종재헐만종최午鍾歇晩鍾催 오종이 울리길 마치자 곧 만종이 재촉하네.

궁금하게 벗을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고령에 사는 두 벗이 내리는 눈을 무릅쓰고 박모薄暮에 경사진 돌길을 따라 이르렀다. 이때의 심정은 아마 반가운 사람을 만나 청안靑眼으로 변한 진晉나라 완적阮籍의 눈이 무색했으리라. 먼저 이르러 기다리던 선비는 김기수金基洙(1818~1873)이고, 저물녘에 이른 두 벗은 최우문崔宇文과 박영학朴英鶴이었다. 이들이 모이고자 한 것은 옛적 백련사白蓮社의 고사를 계승하여 해인사에에서 시사詩社를 개최하기 위해서였다.

야화포롱삼계대夜話包籠三界大 밤중의 대화는 삼계의 큰 것을 다하고
춘유릉가오후사春遊凌駕五侯奢 정월의 놀이는 제후의 사치를 능가하네.

가남백리문성취伽南百里文星聚 가야산 남쪽 백 리에 문성이 모여드니
최후천년동부공崔後千年洞府空 최고운 떠난 후 천년 홍류동 적막한 때였네.

무진년 정월 산사에서 열린 고붕高朋의 시사는 천년의 홍류동 적막을 깨고 가야산 남쪽 백 리에 찬란한 문성의 광채가 모여드는 성대함을 이루었다.□

※필자 주:본문에 인용한 3편의 시는 김기수의 시문집인 《백후집栢後集》 권1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