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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로 향한 마음의 문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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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4년 01월 263호
진명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한 해를 돌아보며 지난 시간의 장단점과 못다 이룬 일을 살피는 시간이라면, 1월은 또 한 해의 살림을 계획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지구상에 이렇게 시간 위에 선을 긋고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동물은 인간밖에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시간의 선을 효율적이고 분명하게 긋고 그 내면을 성실과 노력으로 채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한 생을 길게 생각하면 별별 것을 다 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주어진 환경을 생각하면 원하는 한 가지를 이루기도 모자라는 것이 우리 생에 주어진 시간의 길이이다. 숙세에 지어온 인연과 업의 힘에 따라 특별한 누군가는 세계를 바꿀 만한 업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그야말로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자기 한 생명을 유지하고 자기와 인연된 가족을 부양하고 사는 데 온 힘을 다 소진하고 세월의 힘을 따라 그렇게 가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멈출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이 세월은 공부를 하거나 기도를 하는 시간에도, 일을 하는 시간이나 잠을 자는 시간에도,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에도 내 앞으로 시간은 꾸준히 쉬지 않고 흘러간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은 어느새 나를 여기 지금 이 자리에 데려다 놓았다. 내가 원하는 삶이든 아니든 간에 지금 이 순간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 불가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지나간 해도 다가오는 새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냥 현재의 삶에 진실하고 충일하면 되는 것이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면 충만할 뿐이다. 하지만 시간을 그렇게 무시무종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삶에 아무런 걸림이 없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힘이 아직은 축적되지 않은 범부인지라 시간에 걸리고 흐르는 세월을 부리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무구했던 마음이 현실적인 나이의 숫자나 늙어가는 육신에 걸리고, 그 알량한 학문이나 명예·권력·재물, 그리고 크고 작은 욕망에 걸려서 온갖 물이 들어 뒤범벅이 되어 사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와 흐르는 세월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 아잔타 석굴은 삼세三世의 원願을 세워 이루었다고 했던가. 하루나 한 달의 계획, 한 해의 목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한평생의 원도 성취하지 못하고 가는 인생에 삼세의 원을 세운다면 큰 욕심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과 세월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으로 생활의 질서를 다잡고 흘러가는 세월의 꾸준함을 배운다면 기필코 한 가지 원은 성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새해에는 마음에서부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했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자기 앞에 세상은 고여 있는 물인 것이다. 자기 마음의 눈의 크기만큼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귀가 열려 있는 만큼만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고 사고의 넓이만큼만 세상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 나은 내일을 원한다면 굳어가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마음 안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다 드러내서 생각을 전환해보는 것이다. 생활 습관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안에 장단점을 다 가지고 살아간다. 부드럽고 고운 장점을 많이 드러내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하고 거친 단점을 많이 드러내고 사는 사람이 있다. 사람 내면에 충만한 에너지 중에 장단점이 절반씩 차지한다면 그것을 십 퍼센트만이라도 더 장점으로 전환해서 그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화낼 일이나 다툴 일이 없지 않을까. 갑신년 새해에 외부로 이루어야 하는 큰 목표에 대한 계획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적인 마음으로부터 생각의 전환을 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실천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분수, 즉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아는 일이다. 자기를 발전적으로 자신감 있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최면을 걸어 능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것이 착각으로 빠지게 하는 것은 삶에 있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분에 넘치게 계획을 크게 잡고 자기 그릇에 넘치게 뭔가를 채우려고 하는 것은 번뇌만 가득한 욕심이 되고 한낱 부질없는 욕망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작은 그릇에 아무리 많이 담고 싶어도 그릇의 크기만큼만 담긴다는 진리는 다 알고 있다. 작은 서까래가 대들보 노릇은 못하는 것이고 잡초가 고목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느끼고 알려고만 한다면 우리의 공부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자기의 분수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서까래가 자기 자리를 알고 큰 나무가 자기 역할을 알 때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자기의 분수를 모르면 비난을 면치 못하고 그로 인해 번뇌만 쌓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자기가 자기 삶의 어디쯤에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 또 그 남은 인생에서 어떤 것이 실현 가능한지를 안다면 자연히 욕심이나 욕망의 크기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현명한 발견이 아닐까 싶다. 자기에게로 눈을 분명히 뜨면 외부로부터 능력 밖의 것을 더 채우려고 했던 재물이나 명예에 대하여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 줄어들고 마음은 자연히 허덕임을 쉬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번뇌가 자연히 줄어들고 삶은 지금 자기가 소유한 것에서부터 만족과 풍요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하루하루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삶에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새해를 맞이해서 자신에게 이런 약속은 어떨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제부터 생각을 바꾸고 묵은 생활에 대한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보는 것이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어나야 나방이 되듯이 묵은 생각과 습관은 그렇게 바꾸어가는 것이 삶에 활력이 될 것이다. 교만심은 겸손으로 이겨가고 인색함은 작은 것부터 베푸는 마음으로 바꾸어가자.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나는 마음은 그것이 외부에서 왔건 자기 내면에서 일어났건간에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사랑과 자비심으로 대신하고, 크고 작은 욕심은 자신이 소유한 것부터 헤아려서 크기를 줄여가자.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은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하고, 자기 입에서 떠나는 말이 누군가를 해치고 아프게 하는 무기가 되지 않기를 살필 것이며, 진심을 담고 사랑을 담아 말하도록 하자. 사람이나 일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자신을 어리석음의 화석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런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자신의 장점을 찾고 가꾸는 데 쓰도록 하자. 그리고 게으르고 나태함은 자기의 꿈이나 희망을 앞세워 자신에게 묻도록 하자. 그러면 어찌 게으를 수 있으며 부지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자기에게 음으로 존재하는 요소들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에너지로 바꾸어가는 것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분명하고 정확하게 바라보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쌓아가는 모든 것이 다 진실하고 바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잘 하고 보람 있는 일도 있겠지만 이렇게 해가 바뀌는 것을 계기로 해서 자신을 솔직하게 살피는 것이 더 낳은 발전을 위한 큰 걸음이 될 것이다. 가끔은 자신만이 아는 일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신구의身口意로 행위하는 것이 그 대상이 누구이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묻어둔다면 자기의 발전을 기대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 일수록 솔직하고 진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의 삐그덕 거리던 문을 닫고 올해는 넓고 큰 문을 열고 싶다. 넓은 세상으로 그리고 사람과 사람에게로 밝고 환한 에너지를 건네주고 또 받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