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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환경의제21은 ‘불교정신 위기’ 극복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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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2003년 12월 262호
지난 11월 14~15일, 적지만 매우 의미있는 모임이 열렸다. 이후 이날은 한국불교 발전의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 ‘불교환경의제 21 수립을 위한 불교환경 워크숍’ 21세기의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종단 안팎의 사부대중 80여 명이 참석하여 심도있는 토론을 하였는데 이후 “불교환경의제21”로 발표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의 발생 원인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설득력있는 분석은 ‘생산력주의’ ‘발전 이데올로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경운동 또는 환경활동은 다음과 같이 정의해야 한다. “환경문제는 역사의 ‘발전’이라는 개념,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전복을 강제하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사고, 과거의 물질적 풍요를 추구해온 모든 사회문화적인 가치와 정치 체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적 변화를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란 무엇인가. 생각의 방법을 바꾸는 것, 사실에 바탕해서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것이다. 기계론적 사고에서 유기체적 사고로의 전환, 즉 물질은 원자적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는 부분의 합과 동일, 정신과 육체, 물질과 영혼이 나누어져 있다는 오류에서 벗어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며, 인간과 자연이 통합되어 있다는 생태적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생태적 윤리는 불교의 가르침과 합치한다. 인간과 자연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만물에 불성이 깃들여 있다는 가르침에 닿는다. 물질을 원자적 부분들의 조합으로 보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연기의 가르침이며, 인드라망의 형상으로 구현된다. 따라서 새삼스럽지만, 불교의 가르침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윤리이며, 불교는 인류가 당면한 환경문제에 가르침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스스로 실천의 중심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겨우 환경문제에 인식을 갖게 된 것도 외부에 의한 불교환경의 침해에서 비롯됐다. 부끄러움을 넘어 참회해야 할 상황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지적은 너무나 타당하다.
“불교환경문제는 불교정신의 위기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불교환경문제는 한국불교의 정신사적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소유와 소비를 위한 현대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이 가져온 폐해에 대해 불교계는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그 대답이 ‘불교환경의제 21’이다. 그러면 워크숍에서는 어떤 행동계획들이 논의되었는가 살펴보자.
교구별 환경위원회의 구성, 정부의 개발정책 및 사업에 관한 분석 보고서 발간, 지방정부 조례 제정 참여 및 의견 개진, 사찰의 생태지도 작성, 지역사회와의 연대와 협력, 자동차 사용의 제한 등이 제시됐으며, 이에 대한 타당성과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논의됐다. 특히 환경예산의 책정도 논의됐는데, 주목되는 부분이다. 환경의 문제가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임에도 중앙종무기관이나 교구본사의 환경예산은 매우 미미하다. 중앙종무기관은 2003년의 경우 3천여만원으로 일반회계와 대비할 때 0.188% 수준에 머물렀다. 최소한 1% 이상씩은 책정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지방정부의 의사결정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세입증대를 위해 개발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런 작태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행정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경북 봉화 청량사의 신도회에서 영주시의회에 대한 모니터링 활동을 한다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시정을 파악하고 감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찰의 생태지도 작성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산중사찰은 생태적으로 본다면, 개발의 광풍이 휩쓸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생태적 건강성이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어지간한 사찰은 30년 이상된 수목이 그득한 8등급지이며, 계곡은 거의 1급수를 유지하고 있어 동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조사가 돼있지 않다보니 그 가치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생태지도는 사찰의 생태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며, 동시에 개발로부터 사찰의 수행환경을 지키는 유용한 수단이다. 환경단체와 협의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찰의 소임자와 신도들이 함께 참여하면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다. 그리고 불교의 신성성과 함께 생태성을 합쳐 ‘절대보전지역’으로 선포하는 일도 함께 진행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교와 사찰, 사부대중의 절제하는 삶이 의제의 가장 큰 중심이다. 불교 안을 둘러보면 우리 스스로가 환경문제의 원인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대웅전 앞까지 닦아놓은 자동차도로, 대형화를 추구하는 불사, 불편함 하나 없이 해주는 각종 살림도구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어느덧 사찰도 절제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다. 불편함을 새로운 즐거움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소욕지족의 정신과 생활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불교환경의제21’은 한갓 구호에 그친다. 수행환경을 지키는 활동은 정부의 국책사업을 방해하고, 지역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불교의 편협한 이기주의로 비쳐질 뿐이다. 나아가 불교의 수승한 가르침은 경전에나 있는 박제품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불교정신의 위기’란 지적을 현실로 확인할 것이다.
‘불교환경의제21’을 수립하기 위한 논의는 다른 말로 하자면, 불교정신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노력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아직은 논의의 초기 단계이다. 더 많은 사부대중의 논의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가 과제로 남아 있다. 워크숍에는 3개 교구본사의 사회국장과 기획국장이 자리를 함께 했지만, 교구본사 전체를 대표한 참석은 아니었다. 입법기구인 중앙종회에서도 참석하지 않았다. 의제가 선언이나 강령과는 달리 관련자(사부대중)들의 논의와 협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함께 하기 위한 과정은 필수적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조계종단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사업이 곧 ‘불교환경의제21’의 수립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교구본사의 참여는 의제의 성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의제 초안을 만들기 위한 논의에 교구본사 차원의 참석이 있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건대, ‘불교환경의제21’의 수립은 불교정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