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동지冬至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우소 - 김홍영 2003년 12월 262호
어느덧 화려하던 단풍의 계절도 지나고 이제는 동짓달이 되어 완연한 겨울이다. 천지간에 유행流行하는 기운이 다함이 없이 이어져 나고 자라고 거두고 간직하는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순환을 계속하는데, 이러한 순환의 이치에 있어서 동지는 만물의 생성을 시작하는 천지의 본심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동짓달은 《주역》의 괘로서는 복괘復卦에 속하는 달이다. 이 괘는 땅 가운데 우레가 움직이는 형상이고, 순음純陰의 곤괘坤卦 다음에 하나의 양陽이 비로소 회복되어 앞으로 양의 기운이 점차 자라게 되는 상서로운 조짐을 보이는 뜻이 있다.
옛적 백발의 연로한 선비들이 동지에 해인사에서 함께 시를 읊은 일이 있는데, 김기수金基洙 이근용李根容 김태응金台應 윤후달尹厚達 등이었다. 이 가운데 김기수(1818~1873)의 시는 동지의 의미와 동지 무렵 산사의 광경을 그림처럼 묘사하였다.

백두수계대피심 白頭修契對披心 백발의 정다운 모임에 서로 마음을 여니
유수가야유고금 流水伽倻有古琴 흐르는 물과 가야산엔 옛 거문고 곡조 있네
옥관회비뇌재지 玉管灰飛雷在地 옥 대롱에 재 날리니 우레가 땅 밑에 있고
범궁종동월횡림 梵宮鐘動月橫林 산사의 종소리 가운데 달이 숲에 걸쳤네
산한송립간운회 山寒立干雲檜 차가운 산엔 구름에 닿을 듯 회나무 높고
탑고한서피설금 塔古閑棲避雪禽 옛 탑엔 눈을 피한 새가 한가로이 깃드네
대도동풍화신보 待到東風花信報 동풍의 꽃소식 이르길 기다려
여군휴수목란음 與君携手木蘭陰 그대와 손잡고 목란 그늘에 놀리라

첫째 연에서는 오늘 여기에 모인 벗들이 노경에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지음知音의 관계임을 말했다. 둘째 연의 첫 구절에서 ‘옥 대롱에 재 날린다’는 것은 동지에 양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함을 뜻하고, ‘우레가 땅 밑에 있다’는 것은 양의 기운이 비로소 회복되는 때가 되었음을 이른다. 이것은 양의 기운이 회복되어 앞으로 만물의 생성이 시작됨을 알리는 동지의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셋째 연에서는 ‘겨울 산에 높이 솟은 회나무’와 ‘눈을 피한 새가 깃든 옛 탑’의 모습이 마치 격조 높은 한 폭의 옛 그림을 통하여 정적靜寂의 경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동풍에 꽃소식 이를 즈음을 기다려 벗을 다시 만나겠다는 희망을 읊었다.
우리가 맞이한 이 겨울의 추위가 비록 혹독하나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양의 기운이 이미 싹튼 이상 그 기운이 점차 자라 삼양三陽의 봄이 되돌아옴은 필연한 순환의 이치이다. 그러할진대 우리도 동풍의 꽃소식 기다릴 희망을 품어봄직하지 않은가.□


*필자 주:김기수(1818~1873)의 호는 백후栢後이고 거창군 가조면 부산리釜山里에서 살았다. 본문에 인용한 시는 그의 시문집인 《백후집》 권1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