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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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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3년 12월 262호
물은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흐르는 데 아름다움이 있고 바람은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지나가는 데 아름다움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의 법칙을 따르고 이 겨울에 나뭇가지를 떠나는 나뭇잎도 사람도 그 무상한 법의 힘은 거부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유정 무정들이 항상하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 방송국으로 향하다가 만나는 햇살도 어제의 햇살이 아니며, 싸늘하게 와 닿는 바람도 어제의 그 모습이 아니다. 어제 듣던 음악도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느끼고 바라보며 지금 호흡하고 있는 나 자신도 어제의 내가 아니다. 모든 것이 어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냥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고 변해가는 것이다. 이런 법칙 속에 내가 있고 만물이 생성하고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겨울 육안으로 들어오는 풍경들은 다 집착 없이 떠남의 아름다움을 품게 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집착을 보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 불자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래! 저런 아름다운 집착은 자기 능력껏 하고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한 가정의 주부로서 두 딸아이의 엄마로서 특수학교 중등부 교사로서 삶을 살고 있는 불자다. 길에서 우연히 지나친 다운증후군 장애인의 순박함에 마음이 걸려 자기 삶의 중심이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이 되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특수학교로 발령을 받은 이 불자는 어느 한 곳이나 중복 장애를 가진 제자들을 바라보며 매 순간 울고 웃는단다. 정상인 보다 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들이 가끔은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사는 자신에게 좋은 선지식이란다.
한 달 내내 아니면 한 학기 내내 기숙사에 의탁된 아이들이 가족들이 찾아와야 할 때 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며 운동장에서 서성이는 뒷모습을 차마 지나칠 수 없어 아이들이 다 숙소로 돌아가야 퇴근을 한다고 말하는 그 불자의 마음은 애석하기 그지없다. 학생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모아서 학생이 가장 힘들게 고집 부리고 집중을 못할 때 그 사진 한 장이면 책상으로 돌아와 앉는 아이의 순수함이며, 교정 여기저기서 마주칠 때마다 “선생님 사랑해요” 라며 팔 크게 벌리고 하트마크를 지어 보이는 아이의 애잔함을 볼 때마다 아이들 모두의 사랑이 되어주지 못해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크게 느낀다고 말한다.
지금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교에는 두 형제가 가족 없이 보육원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형은 단신이라 중학교 특수반에서 공부해야 하고 동생은 정상인이라 보통학급에서 공부를 하고 있단다. 그런데 동생은 이제 중학생이라 사춘기에 접어들어 청소년들이 겪어야 하는 감정의 기복을 겪고 있는데 비해 장애를 가진 형은 오히려 낙천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로 자기의 환경을 극복해 가는 모습이 두 아이를 가진 엄마의 가슴을 아리게 한단다.
가끔 주말에 집으로 초대해서 부족한 공부도 돌보아주고 옷가지며 학용품을 챙기면서 작은 정성을 쏟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 형제들의 가슴에 위로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다고 한다. 지난 여름 자기 가족과 그 어린 형제를 데리고 해수욕장으로 여름 휴가를 떠났단다. 해수욕장에서 딸아이들의 오빠가 되어 잘 놀던 형이 저녁을 먹으면서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해서 “왜 새삼스럽게 그래” 하고 그 불자가 물었더니 “늘 가족과 함께 방학 때 여행가는 것이 꿈이었거든요”라고 말하더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꿈을 이루게 해 주시네요.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잖아요” 하면서 장난기 섞인 말투로 그 어색함을 갈무리 하는 의젓함에 코끝이 시큰해졌다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 있는 아이들과 먹으라고 통닭이며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주었단다. 아이들이 들고 가기에 무거울까봐서 보육원 안에까지 태워다 줄까 했더니 그 선물을 들고 두 형제가 으시대며 걸어 들어가고 싶었던지 보육원 입구에서 굳이 내려 달라고 했다. 자기들이 들고 들어가겠다고 해서 그렇게 해 주었더니 아이스크림과 치킨을 든 두 팔을 마음껏 흔들며 보육원으로 들어가는 두 형제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스님 저도 그렇게 넉넉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때론 막막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하는 그 불자의 고운 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론 지금도 꾸준히 그 형제를 돌보고 있지만 힘이 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집착인가. 아침에 눈을 뜨면 일간지나 텔레비전에서 서로를 비방하며 자기들의 정당성을 유지하려는 인간들의 치졸한 몸부림들을 보게 된다. 누가 누구를 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인지, 부끄러움이나 작은 양심을 권력에 저당 잡힌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사회는 이런 소시민들의 보이지 않는 작은 실천이 있어 유지되고 아름답게 인간의 온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몇 해 전에 시각 장애를 가진 불자를 만나게 되었다. 맹인학교에서 학생들의 살아갈 길을 가르치기도 하는 이 선생은 자기중심의 삶보다는 시각 장애를 가진 맹인들의 삶과 복지를 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도 한때 청소년 시절에는 시각 장애인이 된 자신의 삶이 한스러워 목숨을 버리기 위해서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두 눈을 가진 사람들이 번번이 자기를 위험한 순간에 구해 놓더란다. 그래서 “아! 내 목숨이지만 이것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구나” 생각하고 그 후로는 자살을 포기하고 다시 태어난 삶으로 자기보다 더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고 원을 세웠다고 했다. 슬하에 자녀 한 명 두지 않아도 아들과 딸이 많은 분이다. 지금껏 그의 삶이 그렇듯 시각장애인들의 복지와 교육을 위해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살고 있다. 나눔으로 행복한 삶을 알고 비움의 미덕을 아는 불자다.
세상엔 이렇게 가슴 훈훈한 사람들이 많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세상의 부정과 부패를 보기보다 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이 못다 이룬 일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자기반성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가끔 세상을 온통 부정적인 자기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자기 기준의 자로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재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이다. 눈을 아름답게 뜨고 살아도 부족할 시간인데 이것은 이래서 좋지 않고, 저건 저래서 틀렸다고 한다. 저 사람은 저 부분이 나쁘고, 이 사람은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 타인이 자기를 바라보는 밝은 거울이라면 얼마든지 수정의 여지를 찾으면 좋을 일이지만 비판을 위한 허물보기는 자기 삶에 백해무익한 일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전도된 망상이나 욕망에 얽혀서 마음의 눈이 흐려져 있다. 그러나 따뜻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의 눈을 뜨고 세상의 아름답고 작은 행복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자기가 갖지 못한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더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품어서 독이 되는 욕망과 번뇌는 크기를 줄여가고 그 자리에 아름다운 집착 하나쯤 꼭 품고 사는 것도 좋을 일이다. 하나를 더 채워서 느끼는 갈증보다 하나를 나누면서 얻어지는 그 풍요를 아는 넉넉함으로 말이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가슴이 시린 이웃들이 많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집착이 시린 이웃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엄동설한에 따뜻한 땅의 온기가 품어주는 씨앗은 이듬해 아름다운 꽃과 튼실한 열매를 맺듯이 내가 품은 아름다운 집착은 누군가의 고단한 삶에 희망이고 에너지가 될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자의 아름다운 집착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