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영지影池 연재를 마치면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영지 影池 - 김대식 2003년 12월 262호
황룡사 옛터입니다. 9층탑 심초석 근처에서는 멀리 남산이 바라보입니다.
거기 산 속에 쏟아부었던 여러 해 세월이 꿈인 듯합니다.

10여 년 전 어느 여름날 어스름녘, 부처골 감실부처를 처음 찾던 날이 아직도 아련합니다.
이력이 생기면서는 동짓날 정오 무렵 때맞추어 찾아가서 뵙곤 했던 그 은은한 웃음도,
첫 대면의 그 아련한 사무침을 당하지 못합니다.

물어물어 찾아갔던 미륵골 보리사에서, 부처님의 상호를 촬영하느라 야단스럽게 사다리를 받치고 올라서서,
망원렌즈로 상호만 커다랗게 클로즈업하면서 이게 외람된 짓이 아닌지,
부처님께 야단 맞지나 않을지 걱정하던 일이 어제 같습니다.

봉화골 칠불암까지 뻘뻘 땀흘려가며 오르던 여름 아침이 있는가 하면,
부엉골 여래좌상 앞에서 햇빛 제대로 들기를 기다리면서 맑은 콧물 흘리며 오들오들 떨던 겨울 낮도 있었고,
천룡사 터에서 서산 머리에 걸려 있던 달을 아쉬운 이별처럼 배웅했던 늦가을 아침이 있는가 하면,
옥룡암 뜰에서 매화 향내 맡으며 호사스럽게 부처바위를 찾던 봄날도 있었습니다.

지난 9월 나그네는 태풍 매미가 마구 쓰러뜨려 놓은 삼릉골 소나무들을 스쳐 지나서
용장골로 해서 서남산을 올라가 보았습니다. 골짜기 안쪽이 온전했음은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나그네는 오랜만에 용장사 터 3층탑 옆에 퍼질고 앉아 멀리 물결치듯 하는 산맥들에 눈을 주면서 다시 매월당을 떠올렸고,
연화대좌로 올라가서는 고청 윤경렬 선생의 남산 사랑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남산, 사랑.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남겨두고 떠나가면서
연연하는, 그, 사랑이란 것이, 마음 쏟아붓는 일임을 나그네가 처음 알았던 것도 남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