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께 성스런 불사를 알리다대장경 신비의 비밀, 정성과 합리성이 어우러진 결과
우리 선조들이 대장경판을 만들자고 마음 먹은 때는 언제나 외세의 침입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초조장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1011년은 거란군이 개경에 침입해 온 시기였고, 1231년 재조장경(현재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의 제작은 몽고의 침입으로 왕이 강화도로 피신해 있을 정도로 다급한 때였다.
외세침입을 무기가 아닌 부처님의 힘(佛力)으로 막아보겠다는 발상은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상상을 불허한다.
1236년 시작한 팔만대장경 판각사업은 16년에 걸쳐 연인원 150만명이 동원된 국가적인 거대 프로젝트였다.
그동안 연구 조사된 바에 따르면 8만여 장의 경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굵기 40cm 이상 길이 1~2m의 통나무가 1만 8천 개가 필요했다. 이 정도의 나무를 벌채해 각판장까지 운반하는데 연 10만명, 목판에 붙일 필사본 5천자를 쓰는 데 연 5만명, 글자 하나하나를 파는 판각에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그 인력이 125만명이다. 또한 경판을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옻을 채취하는 데만도 1천명 이상. 그 뿐인가. 이들을 뒷바라지할 인원도 만만치 않게 필요했을 일이다.
또한 우리는 흔히 대장경판의 판각이 국가적인 사업이었다고만 알고 있지만, 경판에 새겨진 시주자 이름 가운데 많은 수가 개인이었던 점은, 대장경판 속에는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던 당시 서민들의 땀과 원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성은 반드시 하늘을 감동시키기 마련. 81,340장에 이르는 팔만대장경판(재조장경)이 완성되자 몽고는 물러갔고 다시는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 경판이 현재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돼 있는 팔만대장경판이다.
대장경판은 신비의 대명사이다. 완성된 후 몽고군이 물러갔던 일은 과거의 신앙으로 치부한다 해도 목판이 77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오고 있다는 점은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무를 3년간 바닷물에 담갔다가 찌거나 음지건조하여 판각하여 옻칠을 하였다든지, 장경각의 과학적인 구조 등이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 부분적 훼손이 생겨 대장경에 대한 보존대책은 여러차례 거론돼 왔던 일이다. 관람객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어차피 보존이 된다해도 나무의 수명이 과학적으로 1천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점과 화재발생의 위험성 등에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화재발생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한 적도 있었다.
1974년경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새 장경전을 건축하여 경판을 옮기자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화재예방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항온항습시설을 설치하여 수분변동에 따른 경판의 손상을 근본적으로 막아보자는 좋은 취지였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지어진 새 장경전은 화재는 예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무의 보존에 대한 철저한 연구없이 진행되다보니 습도조절이 안 되는 구조라, 해인사 스님들이 반대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정책에 반대하는 일은 아무리 절집이라 해도 목숨을 건 일이었다고 한다. 그후 해인사 스님들은 장경각 이전 문제에 있어서만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은 불교인들의 신앙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며(국보 제 32호) 세계문화유산(95년 지정)이기도 한 귀중한 것이기에 언젠가는 보존에 대한 단안이 필요했다.
팔만대장경 보존의 불가피성
인청동은 1만년 이상 문제없어
지난 9월 대구지하철 참사사건이 난 직후 해인사 주지 세민 스님은 더 이상 팔만대장경을 방치할 수 없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인명조차 경시하는 이런 세태에서 장경각이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대로 잘 보존된다 해도 나무의 수명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문화유산을 후세에 까지 보존하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다 팔만대장경을 동판으로 제작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장경각은 보존을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동판대장경을 제작해 현재 실시설계 중에 있는 신행문화도량에 비치해 누구나 와서 보고 만지고 인경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다.
문화재이기에 보기만 하고 만져보지도 못하는 단점을 이참에 체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마침 신행문화도량 건립을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이미 구성돼 있던 터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고 자문위원을 보완 감수를 받는 일이 함께 진행됐다.
금속공예가 김승희 교수(국민대 조형대학), 건축가인 정기용 교수(한국 예술종합학교), 이상해 교수(성균관대 건축과), 조성룡 건축가(도시건축대표),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과 교수인 프란시스코 사닌, 금속조각가인 이영학 씨, 청주 고인쇄박물관 나충희 연구원, 재단법인 아름지기(문화재보호단체) 신연균 이사장 등이 자문위원들이다.
동은 종류가 다양한데 인청동燐靑銅은 값이 좀 비싸지만 강인성과 내구성이 풍부하여 반영구적 보존(1만년~2만년)이 가능해 취지에 맞는다는 일단의 결론도 자문위원들의 전문적 식견의 도움이 컸다. 재료는 (주)풍산에서 조달키로 했다.
진행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다행히도 기술력이 좋은 회사를 통해 다양한 샘플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동판 대장경 모형은 이번 고불식에서도 몇가지 전시되었듯이 재질이 동일 뿐 모양은 목판 대장경과 같다. 크기는 가로 695㎜, 세로 239.5㎜로 목판과 같다. 두께는 목판(35㎜)보다 얇은 20㎜이나 무게는 4.5㎏으로 목판(3.5㎏)보다 무겁다. 색상은 목판에 가까운 진한 밤색이다. 뒤에 나온 것은 인청동 본래 색깔이 더 드러났다. 동판 위에 필름을 붙여 글자 부분을 남기고 나머지를 화학적으로 부식시키는 방식으로 제작, 목판 대장경과 마찬가지로 양각 형태를 띠고 있다. 과거와 같이 주물을 떠서 하는 것과는 달리 제작방법이 간단해진 것이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팔만장이 넘는 고려장경의 복원은 시작 시점으로부터 길게 잡아도 3년이면 마무리된다고 한다. 여기에 드는 인력은 총 50명 정도. 과거 16년 동안 150만명이 동원되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다.
자문위원들의 감수는 내구력, 보존력, 복원력, 인경의 편의성 등 물리적 특성과 미적 특성이 함께 고려되었다. 또한 고려장경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안도 나왔다.
일단 고려대장경의 오탈자 부분(훼손 또는 처음부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 일본의 신수대장경이나 중국의 대장경에는 수록돼 있으나 고려장경에는 없는 《지장본원경》 등의 경전들을 보충하는일, 또한 우리 나라 원효, 의상 등 스님들의 어록 등을 보완하는 것이다. 그러면 경판수는 자연히 더 늘어나게 된다.
해인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자문위원들의 생각과 같아 적극 수용키로 했다. 기존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 전산화 작업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조사된 내용이 있고 이번 기회에 다시 위원회를 구성해 확정지을 계획이다.
예술성과 현실의 갈등
그러나 미적 측면에서 전문가들의 몇가지 지적은 해인사에서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많은 자문위원들이 “좀더 원본과 가까우면서 오래 가고 후대 사람들이 볼 때도 감탄할 만한 예술적인 측면에서 손색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민대 김승희 교수가 이런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글자를 더 도드라지게 하고 또한 부식의 원인이 되는 땜질은 일체 하지 않고 문양을 넣는 것도 제안하고 있다.
글자체는 고려장경 원본이 아닌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표준체로 제작한 폰트체로 제작을 했는데, 너무 딱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조각가 이영학 씨는 “원본에 가깝게 만든 글자체이나 동판으로 제작되다 보니 나무의 부드러움이 사라졌다. 나무의 느낌이 나기를 바란 생각이 무리였던 것같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지적은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간단치 않다는 것이 동판을 제작해야 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어쨌든 동판이라는 것이 나무와 같을 수는 없기에 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판으로 더욱 글자체를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판이 두꺼워진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점은 동판의 무게가 현재의 배 이상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비용도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실제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난제가 있다.
아름지기 재단 정인숙 총무이사는 “1만년 이상을 내다보는 불사이니 만큼 조금 늦어지더라도 서체나 판각 등에 대한 소위원회라도 구성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숙지한 후 진행해 나가야 후일에도 후회없는 불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조만간 해인사에서 마무리지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이다.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인이 동참한다면
부시와 김정일에게도 동참 권유
해인사 주지 세민 스님 생각에는 과거 대장경판 조성불사를 통해 외세의 침략에 마음을 모았듯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세계평화를 함께 기원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고려 때 그 어려운 시기에도 십시일반 보시하여 경판 조성을 했던 의미를 오늘날에도 되살리고자 함이다.
세민 스님은 고려장경이 불교문화재이기에 앞서 우리 민족의 뜻이 모아진 결정체인 만큼 참여의 폭을 불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타종교인들에게도 참여를 권하고 있고 그 가운데 강원룡 목사 같은 분은 선뜻 동참의 뜻을 전해왔다. 다른 종교계 인사들에게도 함께 하자고 할 예정이며, 세계평화의 의미를 담아 미국 대통령 부시를 비롯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뜻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능하면 팔만대장경 영인본이 있는 북한의 묘향산 보현사에 기증도 고려 하고 있다.
동판팔만대장경은 일단 새로 지어질 신행문화도량 안의 ‘팔만대장경 법당’에 모셔지게 된다. 그리고 경판 소유를 원하는 이들은 집이나 회사 등에도 모실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언론발표 이후 벌써부터 해인사에는 어떻게 불사에 동참할 수 있는지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불사를 계기로 불교계가, 나라가, 세계가 평화롭고 살기좋은 정토가 되어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