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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달린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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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관암 2003년 12월 262호
해인사에 사는 대중이면 누구나 해마다 한두 번쯤 가보는 곳이 보현암 뒤쪽 산등을 오르는 길이다. 해인사 전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해인사를 바라보노라면 아름답고 신비롭다. 해인사가 계절을 찾아 여행하는지, 그저 무상한 계절이 해인사를 스쳐가는지 몰라도 봄, 여름, 가을을 거쳐 이젠 하얀 솜이불 덮고 그 화려했던 지난 계절을 감상하듯, 내일의 새봄을 기다리듯 지금 가야산하伽倻山河는 해인삼매을 즐기고 있다.
경관이 잘 보이는 목에서 해인사를 바라보면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지만 선주형국船走形局에 자리 잡았다는 해인이라는 거대한 배가 제대로 항해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도 있다. 지난 일년 동안 <월간해인> 해인소식란에 빼곡히 적혀 있는 해인사의 행사나 일들을 상기하면 ‘주지스님을 비롯한 모든 대중들이 한 해를 원력적으로 살아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떨쳐버릴 수 없는 일은 ‘대중 모두가 많이 피곤했겠구나’ 그리고 ‘모든 일들이 해인사의 정체성正體性(identity)과 능력에 맞고, 불교본연의 자리에서 시대에 부응하는 일들을 제대로 했는가’에 대한 단상斷想이다.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더니 금세 1년이 되었고, 한 해 한 해가 쌓여 해인사의 연륜은 1200년을 넘겼다. 지나온 연륜과 역사의 유산은 박물관을 장엄하게 장식하거나 뿌리 있는 문화민족(집안)임을 자부하는 데서 빛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바르게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이 될 때 그리고 대중을 일깨우는 죽비소리가 될 때 빛나는 것이고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해인’ 정신과 ‘해인사’를 자랑으로 삼고 자부심마저 느끼는 만큼 해인사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해인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은 도량을 쓸고 닦는 데서부터 시작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해인의 향기와 정체성을 자신과 해인사가 앞으로 바르게 나아가는 데 백미러로 활용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의미에서 <월간해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불교의 정론지로서 가장 깨어 있다는 <월간해인>의 역할은 해인 정신과 함께하는 해인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정체성의 한 단면인 배타와 폐쇄, 주체성의 역기능을 순화시키고 꾸준히 업그레이드하여 시대와 함께, 대중과 함께 생동하는 정신으로 창출하는 일이다. 이것은 해인사와 해인사 대중이 바로 나아가고 그리고 불교가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며 마침내 나라와 인류가 바로 서는 일이 될 것이다.
해인사에는 지금 백미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 해인사가 옛보다 몸집이 많이 커졌다고 한다. 몸집이 커지면서 불안해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스템에 대한 불안이다. 해인사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발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제도와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조화와 균형이라는 안정적인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나는 일전에 어느 작가로부터 12월 달력 그림에 둥근 거울이 달려 있는 달력을 선물 받았는데 매우 기발한 아이디어라 생각했고 귀한 선물이 되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를 보내면서 <월간해인> 독자 여러분들의 12월 달력이 거울로 비춰지길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