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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불이선不二禪을 그대로 그려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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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설곡 2003년 12월 262호
유마힐의 불이법문不二法門
우리는 항상 모든 경계를 상대적으로 분별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옳고 그름, 좋음 나쁨, 맞음 틀림 등으로 분별하여 차별 짓고 취사선택한다. 피할 수 없는 이러한 취사선택이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가는 원인이다.
그러나 선의 세계는 이러한 차별의 현상세계를 초월하여 본질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 본질의 세계에서 사물을 보고 살아가는 것을 선의 경계라고 한다.
유마힐 거사는 대승보살의 무차별적 경계를 성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32명의 대보살들이 유마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질문에 각기 자기 방식으로 대답하였고 마지막으로 문수사리 보살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어떠한 것이 보살의 둘이 아닌 법문에 듦이라고 생각합니까?”
“내 뜻으로는 모든 법(진리)이 말할 것도 없고(無言), 이를 것도 없으며(無說), 보일 것도 없고(無示), 알릴 것도 없어서(無識), 모든 질문과 대답을 초월한 것(離諸問答)이 바로 둘 아닌 법문에 듦입니다.”
32분의 대보살들이 각자의 좋아하는 바에 따라 대답한 것도 훌륭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대답들은 아직 개념과 생각의 경계 속에 머물러 언어와 개념의 차원(言說相)을 초월하지 못한 대답들이었다. 그러나 문수사리의 대답은 언설도 없으며 보일 것도 알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과 대답을 모조리 초월(離諸問答)한다. 참으로 상식을 깨뜨리는 멋진 대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때에 문수사리 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우리는 제각기 각자의 대답을 말씀드렸거니와, 어진 이께서는 마땅히 어떤 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듦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
유마힐은 잠잠히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然無言).
그때 문수사리가 찬탄하며 입을 열었다.
“좋고도 좋습니다(善哉善哉). 글자도 언어도 없음이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둘 아닌 법문에 듦입니다.”
유마힐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묵연무언然無言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의 대답은 이미 개념과 언설의 차원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러한 대답을 본 문수는 유마힐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서울의 어느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은 55×31.1cm 크기의 종이에 수묵으로 그린 그림이다. 작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조선 말기의 서예가이며 금석학자다. 실학實學에 밝았으며 동시에 시문詩文이나 경학에도 두루 통달했다. 또한 천주교와 도교에도 밝았던 그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었다. 또한 백파 스님(1767~1852)께 귀의하여 선불교에 깊이 심취했으며 스스로 병 거사(病居士:유마거사의 동체대비의 병환을 상징) 혹은 유마 거사라고 했다.
그러나 추사는 무엇보다도 서예가로서 독특한 일가를 이룬 대가이다. 그의 서체는 어느 누구의 서체를 모방한 것이 아닌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지를 구축하여 그만의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한국회화사에서 문기文氣 넘치는 그림을 그린 전형적인 문인화가이다. 나아가 그는 문기의 경계를 넘어 선기禪氣가 충만한 선화를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그가 그렇게 선기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선의 세계에 깊이 침잠한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는 묵란도墨蘭圖와 산수도를 많이 남겼다. 그 가운데 이 <불이선란도>는 넘치는 선기와 서예의 조형미를 더욱 중점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난초의 필선筆線도 그림의 획이라기보다는 서법의 연장이라고 할 만큼 그 선이 서법의 선이다. 그것은 그의 서법의 경지가 극치에 이르러 자유자재의 표현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룩된 것이다.
추사는 그림을 빌려 자신의 선적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담묵의 난엽은 난엽이라기보다 억새풀 같은 힘을 느끼게 해준다. 꽃의 줄기도 굳고 억세며 높게 그린 것이 더욱 난초의 힘찬 기상을 잘 나태내고 있다. 그러한 느낌이 바로 자신의 곧고 바른 성품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만이 선의 수행가가 되기에 알맞은 것이다.
더욱이 이 그림이 선화로서 개성을 살리고 있는 것은 화제畵題가 선적禪的인 데 있다.
“난화를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우연히 그 성품의 극치를 찾아 그려낼 수 있었다. 문을 닫아걸고 그 연유를 찾고 찾아보니 이것이 바로 유마의 불이선不二禪이었다. 만약 누가 억지로 그 이유를 설명하라 한다면, 유마힐의 ‘말없는 대답’으로 답하겠다”라고 한 화제는 유마의 불이선을 그대로 옮겨내고 있다.
또한 화제의 위치도 얽매임이 없어 독창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유자재로우면서도 조화를 잃지 않고 있다. 힘과 자유를 가득 품은 서체書體 역시 선적이다.
이 그림에는 이러한 긴장감뿐만 아니라, 글씨와 난엽의 조화에서 어딘가 해학적諧謔的인 감이 은근히 어려 있다. 이러한 자유분방함 역시 이 그림을 선화이게끔 하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