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작은 먼지로 만든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작은 먼지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이 작은 먼지들이 실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곧 작은 먼지들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작은 먼지들은 곧 작은 먼지들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작은 먼지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고 그 이름이 세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실로 있는 것이라면 곧 한 덩어리의 모양이니, 여래께서 설하신 한 덩어리의 모양도 한 덩어리의 모양이 아니고 그 이름이 한 덩어리의 모양입니다.’
‘수보리야, 한 덩어리의 모양이란 곧 이를 말할 수 없거늘 다만 범부들이 그 일에 탐착할 뿐이니라.’(무비 역해,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불광출판부)
삼천대천세계라는 우주의 만유는 기본 요소인 원자, 분자들의 결합 즉 먼지들로 이루어졌다. 먼지들로 이루어진 것이 세계(우주)이므로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도 세계가 들어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우주 내 만물은 다양한 변화와 생멸의 이치를 지녔지만 우주의 보편적 진화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일합상一合相이 자연 그 자체이므로 한 티끌 속에도 자연의 이법理法이 들어 있게 된다. 그래서 하나 속에 일체가 있기 때문에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티끌의 세계와 우주의 세계를 굳이 분별하여 어느 하나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티끌이나 티끌들로 이루어진 세계 모두가 역동적인 유기적 관계에서 변천해가는 구체적 연기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어느 특정한 한 과정에 대한 집착은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예를 들면 별은 어떻게 태어나 어떠한 과정으로 늙어가며 또 어떻게 임종을 거쳐 빛을 내지 못하는 암체로 사라지는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주 만유에 대한 이해는 각 대상의 연속적인 연기적 진화를 이해함으로써 만물은 고정된 자성을 가질 수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 만물은 고립된 상태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개체들과 집단을 형성하며 지낸다. 삼천대천세계라는 것이 곧 만유간의 유기적인 연기관계를 이루고 있는 집단을 뜻한다.
집단 내에서 각 개체는 고유한 생물학적 또는 화학적 진화를 수행하면서 이웃하는 다른 개체들과 역동적인 에너지의 주고 받음이 일어나는 연기적 수수관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자체의 고유한 진화뿐만 아니라 집단의 유기적 연기관계에 따른 역학적 또는 물리적 진화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서 생리적 진화를 하는 동시에 사회라는 조직 내에서 집단적 생활을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때 각 개체는 자체의 고유한 진화가 외부와의 수수관계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섭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개체의 고유성이 연속적으로 변화하면서 항상 새로운 초월적 단계로 변천해 가게 된다.
이처럼 연기법계를 이루는 집단 내에서는 각 개체의 고유한 정체성正體性이 사라지기 때문에 고정된 ‘나’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둘이 아닌 것’이라고 말한다. 즉 연기법계에서는 ‘자기’라는 고유성(특성)이 상실되면서 집단 전체의 보편적 특성이 나타나는 이완상태弛緩狀態에 이르고, 개체의 특성은 집단의 특성에 의해 규정되어진다. 그래서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가 전체가 되는 열반의 세계에 이른다.
한편 이런 이완상태에서는 최소작용의 원리가 성립한다. 그래서 개체간의 에너지의 주고 받음(작용과 반작용)에서 최소의 에너지를 소모하며, 또 각 개체는 가능한 최소의 에너지 상태에 머물려는 특성이 나타나는 연기법이 성립한다.
거대한 원시 성운에서 집단으로 탄생되는 별들은 태어날 때 평생 동안 먹을 것을 지니고 태어나므로 사상四相과 탐진치를 여읜 법신法身으로서 우주에서 가장 조화로운 연기법계를 따른다. 성단들은 다시 모여 더 큰 집단을 형성해 간다. 수천 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은하(수미세계), 은하들의 집단을 은하단(소천세계), 은하단들의 집단을 초은하단(중천세계), 초은하단의 집단을 초초은하단(대천세계)이라 하며, 우주는 이러한 수많은 별들의 집단들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집단형성은 역학적인 안정성 때문이다.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그 집단은 더욱더 안정된다.
별들은 집단 내에서 또는 집단들 사이에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주고 받음의 연기관계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면서 항상 안정된 평형상태를 이루는 이완상태로 진화해 간다. 그래서 무거운 별들은 성단의 중심부에 모여 집단 전체를 안정되도록 구속하는 역할을 하고, 가벼운 별들은 성단 외각을 돌아다니면서 성단의 활동성을 촉진시킨다.
이 모든 관계가 바로 효율적인 연기관계로 성단 내 별들 전체가 이완상태인 열반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보편적이므로 누가 누구를 제도하는 것도 아니며, 또 각자들은 이완(열반)에 이르렀다는 것조차도 모른 채 조화로운 무위적 연기법을 따를 뿐이다.
오늘날 우주라는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주의 연기법계를 논할 때, 《금강경》의 말처럼 우주법계에 관한 사행시 한 게송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연기법계에서 무위적으로 조건 지워진 ‘별들처럼’ 이완상태에서 최소작용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금강경》의 근본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