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여래께서 굳이 영취산(영축산)을 택하지 않으셨다해도 산은 늘 중생에게는 배움터이다. 세존께서 설법의 마지막에 언어言語를 도단道斷하고 연꽃을 들어 보이신 것과 마찬가지로 천지자연은 늘 말없이 설법 중이다. 예로부터 성현聖賢들께서 산을 택해 수행과 가르침의 터전으로 삼았던 이유도 다름이 아닐 것이다. 다시 묻기를 왕사성에는 다른 네 곳의 산이 있는데 어찌하여 기사굴산耆窟山(영취산)에 머무시는 것입니까? 답하기를 기사굴산은 다섯 산 중에 최승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최승인가? 기사굴산 정사는 마을 근처에 있으나 오르기 어려워 잡인들이 잘 올 수 없으나 또한 마을이 가까워 걸식을 하는데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기사굴산 중에 많이 머무시고 여타의 다른 산 중에 있지 않았다. 다시 장로 마하가섭은 기사굴산에서 삼장三藏을 집성集成하여 중생을 제도하였다.
이처럼 영취산(영축산)에서의 대승설법大乘說法은 보편普遍한 자리는 아니었다. 오르기 어려운 만큼 발심發心을 하고 용심用心을 내야만 그 법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설해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반야경般若經》, 《금광명경金光明經》, 《능엄경楞嚴經》 등에 전하는 수많은 설법들이 경전으로 이루어져 전하고 오늘의 중생을 교화한다. 영산설법도에는 설법을 하는 석가여래와 그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제자를 비롯한 수많은 보살과 천인 우바새 우바이 권속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주변은 영취산(영축산)의 수려한 광경이 병풍과 같이 둘러쳐 있다. 그때의 영취산(영축산)은 지금은 아련하나 그 그림 하나로 진리의 향기를 그저 느끼고자 할 뿐이다.
전세前歲 천하天下의 대경대법大經大法을 수천년 후에 나서 수천년 전의 일을 완전히 밝히고자 한다는 것이 이미 어렵고 허망한 일일지나, 일체의 경문과 진리는 도에 바탕을 두고 있고, 도라는 것은 천지일월성신天地日月星辰의 도를 근본으로 하나니 도를 밝히고자 하는 자는 그 몸과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 우러러 천문을 밝히고, 땅의 이치를 관찰하여 수신修身과 정심正心으로써 마음을 얻을 것 같으면 경문과 법을 진실로 가히 볼 수 있으리라 하였다.
겨울산은 보기에 가까우나 실제 걸음은 짧은 해를 쫓기 바쁘며, 여름산은 아득해 보이지만 걷다보면 어느 새 그곳이다. 동동거리던 발걸음이나 금세 당도한 것 같은 발걸음이나 간 걸음은 마찬가지이니, 이것 역시 마음의 거리가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