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류동 풍국楓菊, 늦가을에 아름답다는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홍류동천 - 김홍영
2003년 11월 261호
시월 중순부터 이 땅의 산하 대지를 점차 울긋불긋하게 물들이며 남하하기 시작한 단풍의 행진이 이제는 절정에 이르렀다. 이즈음 가야산 홍류동은 그야말로 단청을 입힌 듯 화려한 색조를 자랑하고 있는데, 잔잔하게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어울려 이곳을 찾아 만추의 경치를 완상하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자못 즐겁게 한다. 이러한 아름다운 광경을 보지 못한 채 이 가을을 지나쳐 버린다면 또한 유감스럽지 않겠는가.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여유와 운치를 다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절기에 한가로운 놀이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와 감흥마저 없기야 하겠는가. 이러한 정황은 고금에 다를 것이 없었다.
옛적에 가야산 가까이 성주에 살았던 최항경崔恒慶(1560~1638)이란 학자는 지금의 성주와 고령의 경계 지점인 오암鰲巖에 서재를 짓고 창 밖에 대를 심어 그 정절貞節을 사랑하였다. 그리고 죽헌竹軒이란 편액을 붙이고는 이로써 자신의 호를 삼고 이곳에서 한가로이 기거하였다.
죽헌은 시기적으로 이 무렵 종일토록 찾아오는 사람 없어 무료하게 시를 읊는 가운데 몸에는 조갈병이 있어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나 가야산 가을 경치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고자 속절없이 발동하는 호기豪氣를 절로 억누르기 어려워 다음의 시로써 그 심정을 피력했다.
상감수엽사단청霜樹葉似丹靑 서리가 나뭇잎 붉게 물들여 단청 칠한 듯
가절여허효독성佳節如許效獨醒 아름다운 절기 이러한데 나 홀로 깨어 있네
문도홍류풍국만聞道紅流楓菊晩 듣자니 홍류동 풍국 늦가을에 아름답다는데
욕추선려보산정欲追仙侶步山庭 신선을 따라 산사의 뜨락 밟고 싶어라
홍류동 풍국楓菊이 늦가을에 아름답다는데, 이 아름다운 절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산하 대지를 물들인 단청의 색조가 퇴색하기 전 단 하루라도 대자연의 향연에 참여하는 여유와 운치를 누릴 수 있다면 신선을 어찌 별도로 구할 것 있겠는가.
*필자 주:인용한 시의 제목은 <가야산 가을 경치를 구경하고자 하여(欲賞伽倻秋景)>이고, 이 시는 죽헌의 시문집인 《죽헌집》 권1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