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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하나 냉큼 들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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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유정 2003년 11월 261호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 기운이 도반스님들의 옷깃에 묻어 설현당으로 들어온다.
심상한 일상 속에서 이맘때쯤 이면 고개를 들어 들녘을 바라보게 된다.
밖을 바라봄은 오히려 내면을 비추어 보며 자기 부수기의 치열한 싸움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진척 없는 걸음을 따라 4년의 강원 생활 끝자락에 서 보니,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알고 예까지 왔으며, 갈 곳을 알고 남은 길을 마저 갈 수 있을까? 소용돌이치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어 햇살 가득한 정오에 밀짚모자 덮어쓰고 걸음을 떼어 놓는다.
이 도량의 길들은 익숙하여 세밀한 설계도를 그릴만치 잘 알지만 그저 찬찬히 모르는 길처럼 걷고 싶었다. 어떠한 이끌림으로 산중을 찾아온 사람들 틈에 섞여본다. 오늘따라 마음가짐이 달랐을까 오신채 냄새도 나지 않았고 설령 코로 맡았다 해도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설현당을 나와 회성당과 삼성각을 거쳐 갈림길에 섰다.
오른쪽은 종각으로 밖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대문이고 정면은 서점을 거쳐 복숭아와 딸기가 있는 작은 밭을 지나 십육전 후면의 벽화를 볼 수 있다.
왼쪽으로 가면 오백 살은 거뜬히 드신 처진 소나무가 울타리 안에 있고 지장전과 관음전, 작압전의 후면과 만세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돌아서면 학인스님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곳이다.
도량 안내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혼이 없는 무정이라고 생각해오던 것들에서 새삼 온기와 목소리를 느끼는 심리가 재미있어서이다. 《화엄경》에서는 누각도 법문을 하고 의자도 말을 하고 구름도 광명을 놓아 끊임없이 법을 설한다. 무정이 설법을 하면 누가 듣습니까! 무정이 설법을 하면 누가 듣습니까! 무정이 설법을 하면 무정이 듣지. 무정이…그러나 지금 이 순간 무정설법을 유정으로 유정이 서서 듣고 있다니 이 절묘함이여. 허공에 휙 하니 선 하나를 긋는 회초리 소리가 지나간다. 사는 일. 일상이라는 것 그리고 타성, 나날이 새롭게 시작하며 다시 살고 싶다. 이제사 지나간 4년의 시간이 안타까워 괜스레 목메어 온다.

처진 소나무는 크기 때문에 어디서건 눈에 띈다.
소나무를 해송과 육송으로 나누는데 해송은 남성적인 기품, 육송은 여성적인 기품이 있다. 해송은 가지가 굵고 어렸을 땐 밋밋하게 자라기 때문에 볼품이 없지만 늙을수록 힘이 있고 멋스러워지며 육송은 줄기가 많고 굽이치듯 가지를 틀며 자라므로 재미가 있지만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운문사 소나무는 육송으로 알고 있다.
해를 거듭해도 무성하게 푸른 이유가 정성을 들인 탓도 있겠지만 소나무가 가진 이미지가 여성적이지만 않은 것은 이곳에 머무는 대중들의 힘이 시원하게 뻗어 당당한 양적인 기운의 원천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계절의 반 이상을 비와 함께 보낸 올 여름, 잠깐이라도 햇님이 비추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던 여름에 견주어 오늘 따스한 가을햇살은 너무 청량하다. 그래서 더 은밀하고 소중하게 느껴짐을.

나무에 새잎이 돋아나고 그 색이 짙어지며 새벽이슬 머금은 이파리 위로 막 눈뜬 투명한 작은 해를 담아내어 각각의 나뭇잎들이 빛날 때, 그때가 나뭇잎이 가장 이쁠 때이다.
요즘같이 붉게 물든 가을잎에서 청순함을 찾는 것은 무리겠지만 지금 그들에게서 자기 분에 맞게 누렸던 삶을 제 때에 되돌려 주고 충분히 썩을 수 있고 썩어서 다시 거름이 되어 주는 지혜를 배운다. 자연은 인류의 살아 있는 스승, 그 가슴팍은 그대로 학교요 교실이다. 지금 이 순간 나뭇잎 한 장에서 천하의 가을을 배우고 뿌리로 돌아가는 당연성과 비울 줄 아는 겸허를 배운다. 되돌리고 비우는 그 단계에서 욕심을 놓고 양보할 줄 알며, 물려줄 줄 아는, 그러면서도 주장하지 않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자가당착하지도 않고, 온전히 나의 힘이라고 공을 내세우지도 않는 연약한 듯 강한 어머니! 어머니를 본다.

어느새 대웅보전과 전향각 사이의 감나무 아래를 지나친다.
두 볼 빵빵히 살 오른 반홍시를 좋아라 손 닿을 듯 뜀질해서 따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본다. 홍시를 먹고 더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뺨을 상상하면 웃음이 번진다. 나를 보고 찔끔 주춤거리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씩 웃는데 감나무가 말을 건넨다.
“넌 나눠 줄 것이 있니?”
질문하는 뉘앙스가 자못 거만하다.
“난 아직 잎도 나지 않은 묘목인걸, 지금은 기름진 검은 흙 만드느라 바쁘지만 곧 촉촉이 젖은 땅이 되면 그때부턴 아낌없이 주는 너처럼 큰나무가 되어야지. 아니야 나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키워내는 진실한 검은 흙이 될테야.” 진짜 감나무가 내게 물었을까. 아낌없이 주는 보살행에 대해 부러움 반, 심술 반으로 혼자 삐죽거리며 대답해 주었다.

경내를 한바퀴 돌아 마지막 닿은 비로전 앞에 섰다.
중앙계단 양 옆의 늙은 해태부부의 조각상을 보고 세월의 풍파를 무심히 받아낸 소탈한 미소를 따라 지으며 설현당으로 돌아온다. 밀짚모자를 벗어 경상 옆에 두고 편안히 앉았다.
충분히 따뜻하고 깊었던 오후 포행을 둘이서만 알기 위해서.
시간이 흘러 저녁방선을 하고 모두 소등을 했다. 정랑을 다녀오다 홀린 듯 다시 선 그 사거리에서 목수건 질끈 동여매고 또 걷는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감당하던 땅은 별 말이 없다. 그 대신 이제사 제 소릴 내며 분주히 바쁜 밤 식구들의 발자국수를 헤아린다.
같이 세어 주기엔 이제 밤은 차다. 길은 걷기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걷는 동안 그곳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을 또 가르쳐 주었구나.

방문 열고 들어선 나를 제치고 바람 하나 냉큼 들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