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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함께 떠나도 좋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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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3년 11월 261호
계절의 변화는 묘한 매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활력이 되기도 한다. 세월의 뒤안길로 멀어진 삶의 흔적을 돌아보게 하고, 느슨해진 일상의 고삐를 당기게 한다.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의 마음은 쌀쌀한 바람결이 다잡아 주고, 하루를 선물처럼 감사하며 사는 사람의 풍요를 주변으로 나누게 하는 힘이 계절이 변하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도심을 벗어나 주어진 소임으로부터 떠나보는 시간, 떠나는 가을의 후미에서 마음의 품을 넓히는 시간에 나는 이 연주자의 음악과 함께 한다.
파우(Pau)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일생 동안 바흐의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음악의 바다에서 자유를 얻었던 사람, 바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다. 파블로 카잘스는 187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남쪽에 있는 카탈로니아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다. 시골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 11살까지 오르간,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 다음으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첼로를 배웠다고 한다. 카잘스가 처음 첼로 연주를 들었던 것은 호세 가르시아의 연주회에서였다. 첫 번째 음이 나오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던 카잘스는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첼로 소리에 매료되어 연주회가 끝나고 아버지에게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악기가 바로 저 악기라고 말한 후부터 평생 첼로와 삶을 함께 했다. 어린 카잘스는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학교에 입학해서 호세 가르시아에게 첼로를 사사했고, 마드리드 음악원을 나왔다. 연주 실력이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성장해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카잘스의 유년기는 그렇게 평안하지 못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페 토스트’라는 선술집 겸 도박장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어린 카잘스의 연주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스페인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왕이 그를 왕궁에 초빙하여 연주를 하게 했고, 그에게 첼로의 명기 ‘갈리아노’를 하사했다.
파블로 카잘스는 첼로계에서 거의 독각 같은 존재다. 스승이었던 호세 가르시아가 있었지만 스승에게서 배운 주법보다는 자신이 만들어낸 운지법이 훨씬 연주하기 쉽고 첼로로부터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이 새 주법의 발견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나는 이 카잘스를 첼로계의 나한이라고 생각한다. 소리로 중생의 고단한 삶을 쉬게 하는 나한 같은 존재다. 그런 카잘스의 일생에 가장 아름다운 인연이라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지 않을까 싶다. 카잘스는 자신을 첼로의 마에스트로로 만들어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이렇게 만났다.
“그날 아버지는 나에게 처음으로 풀사이즈의 첼로를 사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부둣가의 오래 된 악보 상점에 들렀다. 많은 스코어(score:악보)들을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우연히 낡고 색이 바랜 한 묶음의 스코어를 발견했다. 아, 그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나는 마치 왕관에 달린 보석들처럼 그 악보를 품고서 돌아와 방에 처박혔다. 그리고 몇 번이고 계속 탐독했다. 그때 내 나이 열세 살이었지만 그 후 80년 동안 그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놀라움은 항상 생생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는 말로써는 다 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며 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12년간 매일 밤 그 곡을 연구하고 연습했지만 그 중 한 곡이라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주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 (알버트 칸, 《나의 기쁨과 슬픔, 파블로 카잘스》 중에서)
사람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것이 사람과 자연일 수 있고, 평생을 받쳐 주는 일일 수도 있고, 어떤 사상과 이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파블로 카잘스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의 만남 같은 아름다운 인연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한 생애 동안 첼로만을 연구하고 사랑했던 첼로의 성인 파블로 카잘스는 예술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실천했던 음악가였다.
금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이자 평화주의자였고 불의에 단호했으며 경건하고 겸허하게 살다간 위대한 음악가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질서 안에서의 자유’를 삶의 모토로 살았던 첼로의 거장 카잘스는 80세에 방년 20세의 제자 마르티타 몬테스와 결혼했고, 젊은 아내를 맞아 100세까지는 문제없이 살겠다고 장담하던 카잘스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1973년 10월 23일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잘스가 임종의 자리에서 평소 아들처럼 사랑했던 피아니스트 ‘유진 이스토민’의 연주로 들었던 음악 역시 바흐라고 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바흐의 음악과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나는 카잘스가 연주한 음악들에 대한 매력도 매력이지만 우선은 카잘스의 정신과 삶에 반했다.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에는 카잘스가 연주한, 듣고 또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감상하고, 도심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길 위에서 나는 주로 Concerto나 Trio, 그리고 String Quartet을 듣는다. Edward Elgar나 Max Bruch, Johannes Brahms, Antonin Dvorak의 Cello Concerto가 있는 음반과 카잘스와 동시대의 거장이었던 프랑스 출신인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꼬르또(Alfred Cortot)와 바이올리니스트 쟈크 티보(Jacques Thibaud)와 함께 했던 베에토벤, 슈만, 슈베르트,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듣는다. 자연과 내가 어우러지고 악기와 악기가 조화롭게 어울려서 만들어 내는 최고의 소리와 함께 떠나는 길은 혼자라도 넉넉하다. LP 음반에서 복각한 CD라서 소음이 조금 있지만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따뜻함이 있는 음반들이다.
언젠가 울진 불영사를 향하는 길에서 함께 했던 음악도 이것이다. 자연을 거역하지 않는 굽어 흐르는 길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한 음악가의 연주에 내 호흡을 맡겼던 것이다. 소박한 첼로의 깊고 그윽한 선율이 뻗어내린 산자락과 아름답게 치장하고 달려드는 가을 단풍 물결과 하나 될 때 나도 없고 소리도 없음을 맛보았다. 그 시간만큼은 시비나 분별이 없다. 넘치고 모자람도 없고, 못나고 잘난 것도 없다. 원망과 분노도 사라지고 어깨에 실려 있던 삶의 고단한 무게도 내려앉는다. 오직 자연과 나 사이에 음악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먼길을 거리감 없이 해를 등에 지고 불영사에 도착했을 때 혼자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더니 스님들이 묻는다. “스님 혼자 왔어요?” 나는 너무나 천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스님들께 소개해 드리려고 멋진 파블로 카잘스와 함께 왔습니다.” 음표들이 아직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도 했지만 그저 단순한 농담으로 그렇게 대답했더니 스님들께서 정색을 하고 묻는다. “아니, 그럼 그 사람 어디 갔어요? 저녁 드시라고 해야지.” 나는 천진무구한 스님들의 반응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웃으면서 “그 사람 자기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갔나…어디 갔지?”라고 두리번거렸더니 그때서야 웃으며 “나는 정말 외국사람 달고 온 줄 알았잖아” 했다. 그렇게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운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조건 없이 인간 생존의 조건이 되어주는 햇살과 공기와 물처럼 음악도 때론 좋은 영양제가 되어 준다. 여행길에 편안한 친구가 되어 주고 힘든 하루를 거뜬하게 넘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 주는 아름다운 음악이 있어 오늘 하루도 모든 인연에 감사한 마음으로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