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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서봉 반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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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연정 2003년 11월 261호
사진 / 문영배 《화엄경 청량소淸凉疏》는 화엄경에 청량징관(당. 738~839) 스님이 주석을 달아놓은 것으로 반산 스님은 지난 1998년 서품에 해당하는 1권 <세주묘엄품世住妙嚴品>을 한글로 번역·출간한 바 있다. 그리고는 중간의 삼현三賢을 훌쩍 뛰어넘어 이번에 <십지품十地品>을 전 3권(7, 8, 9권)으로 번역·출간하였다.
《화엄경》은 흔히 어려운 경전으로 알고 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스님들도 강원에서 최종 학년인 대교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공부 과목에 들어 있을 정도로. 다른 경전을 섭렵한 후 최종적으로 공부하는 경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듯, 최상승의 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수반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실상 경의 원전 본문보다도 훨씬 어려운 것이 주석서. 표현된 언어 속에 농축돼 있는 교리와 사상을 풀어내려니 분량도 방대하고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석 문화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기는 하나, 교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면 전문가의 주석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잠시 월운 스님 얘기를 하자면, 10여 년 전만 해도 봉선사의 주인공은 노사였었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잰 몸놀림으로 주지를 하시면서 수련장이다, 통신강원이다 하여 무척 바쁘게 움직여 교계 신문과 잡지를 장식하곤 하였다. 그러나 솔직한 얘기지만 그때 스님은 왠지 외롭고 불안해 보였다. 주변에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는 소리도 입버릇처럼 하셨던 기억이 있다. 운허 스님의 법을 이은,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대강백이 강講이 아닌 잡일(?)에 매달려 있으니 아귀가 맞지 않을 수밖에. 이제 그 주지 자리는 후학에게 물려주고 뒷방에 물러앉아 학인들에게 강講을 하기 시작하였다. 스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그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가고 있다. 강사는 강의를 할수록 젊어진다더니 그래서인가 스님의 세수 일흔여섯일 터인데 60대에 뵐 때보다 더 건강하고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반산 스님은 노스님이 강을 열었기에 자신도 책을 낼 수 있었다며 번역의 공을 노스님께 돌린다. 의례적 겸손만은 아닌 듯하다. 반산 스님이 봉선사에 온 것은 1999년 말, 7권 번역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창녕의 한 암자에서 혼자 번역작업을 하다, 스님 표현에 따르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점점 더 산은 높아지고 혼자 오르기는 너무 버거웠다.”고 한다. 마침 능엄학림에서 <십지품> 강의가 진행되고 있어, 공부하면서 월운 스님께 물어가며 번역을 마칠 요량으로 남양주로 향했다. 그 후 서봉瑞峰이라는 당호를 받으면서 스님의 전강제자가 되었고, <십지품> 완간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화엄경청량소》 그 중에서도 <십지품>을 우선 번역한 것일까? 청량소도 어렵지만 그 가운데서도 <십지품>은 과목科目이 많고 행상行相이 복잡하여 스님들도 공부하다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다. 반산 스님이 출판을 위해 모 출판사를 찾아갔을 때, 출가해 《화엄경》 공부를 해본 바 있다는 사장님은 정중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십지품은 지뢰밭”이라고. 과목科目도 너무 많아 가다가 ‘길 잃어 버린다’나.
<십지품>은 《화엄경》의 가장 중심 위치에 서 있는 부분으로, 환희지歡喜地에서 법운지法雲地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방법 내지는 단계를 설하고 있다. 그 전 부분은 부처님의 성불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고, <십지품> 이후는 깨달은 이의 경지가 설해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화엄경》으로 생각하는 <입법계품>은 사실 하나의 독립된 경전이다.
반산 스님이 다른 무엇보다 <십지품>을 우선 번역한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소승적 요소가 많아 “소승과 대승, 나아가 화엄에 대한 통로역할”을 하고 있기에, 선불교 우선의 한국불교 풍토에서 교리적 측면에 취약한 스님네들이 반드시 읽고 가야 한다고 보았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알고 밀쳐 두는 것과 모르고 외면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스님네들은 번역에 무척 신중을 기했다. 제대로 못하면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들은 바도 있다. 그래서 번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특히 경전번역은 한문실력이 따라줘야 하고 동시에 불교교리 공부의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반산 스님은 꼬박 5년의 세월을 <십지품> 번역에 매달려 왔음에도 100% 자부할 수는 없다고 망설임없이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한 일이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초역을 해야만 잘못된 부분이 지적될 수 있다.”
《한글대장경》을 만들면서 번역자에 따라 같은 용어를 다르게 사용한 것을 통일시켜 놓은 것만도 한결 작업을 수월케 했다. 이렇듯 앞서 해놓은 작업들은 뒷날의 밑거름이 된다. 사실 누군가의 지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노스님 개탄하듯 ‘번역을 아무리 잘못해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는 좋은 나라’라는 말은 그만큼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반산 스님은 가방끈이 꽤 긴 편에 속한다. 출가후 23년 동안 선방에서의 3년을 빼면 지금까지 죽 경학 공부처를 떠나보지 않았으니 천상 강사라 할 만하다. 물론 본인은 선사이고 싶었단다. 그러면서 월운스님을 비롯하여, 종범 스님, 무비 스님, 덕민 스님, 각성 스님 등 우리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대강백들의 가르침을 두루 받는 흔치 않은 복을 누려 왔다. 물론 가만히 있는데 누가 가져다 준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했다. 통도사 극락암 명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는데, 공부욕심이 강해 출가 후 바로 동국대학을 가고자 했다. 그러나 은사스님을 비롯하여 큰스님들의 반대로 강원을 먼저 가야 했다. 당시만 해도 큰스님들은 학교 보내면 중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며 학교 보내기를 기피했다. 그때는 무척 섭섭했는데 갓 출가한 학인들을 보면서 노스님들 말씀의 깊은 뜻을 이제 와서 깨닫는 것을 보면 기성세대가 된 모양이다. “적어도 10년간은 절집 안에서 중물이 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속인과 다를 바가 없어.” 요즘 출가연령의 상향 추세도 그렇거니와 그에 따른 전반적 공부 분위기도 스님은 영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
어쨌든 스님은 통도사, 법주사를 거쳐 해인사에서 강원을 졸업했는데, 그때 스님은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하루 2~3시간밖에 잠을 안 잘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덕분에 안경이라는 훈장을 얻게 됐지만. 그후 중앙승가대학에 들어가면서 종범 스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화엄경》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도 스님의 화엄경 강의법회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이후 《화엄경》 공부에 대한 미련은 이어져 쌍계사로 가 덕민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1996년에는 은해사 승가대학원에 합류해 무비 스님의 가르침도 접할 수 있었다. 결국 《화엄경》 번역에 이르니, 그로 인해 월운 스님과는 전강제자라는 깊은 법연을 맺게 되었다.
제방의 강백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나름대로는 교학과 한문 실력을 자부하고 있는 반산 스님이지만 부족감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한문에 대해서는 어른스님들 앞에 서면 실력이라고 할 수도 없음을 깨닫는다고.
“어른스님들은 출가하기 전에 서당을 다 거친 분들이라 사서삼경 정도는 이미 공부를 마친 분들이지만 우리 세대는 학교공부 마치고 출가한 이후에야 한문을 시작했으니 토대가 다르다. 언어교육은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는 말은 괜한 얘기가 아니다.”
출가후 선방 몇 철 산 것 빼놓고는 공부만 해온 반산 스님도 그러하니 다른 스님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래서 스님은 요즘 어른스님들 다 가시고 나면 경전의 오역誤譯들을 누가 잡아주나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조급하다.
최근 불교계 모 신문의 기획기사인 ‘굿바이 한문’은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당연히 가야 할 길이지만, 아직도 번역되지 않은 원전들은 어떻게 하고 벌써 한문을 ‘굿바이’ 한다면 모두 사장돼 버리고 말 것이다.
한문을 해독할 수 있는 강백들은 점점 연세가 들어가는데, 강원에서 학인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의 한문실력으로 그분들을 이을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은 누가 봐도 걱정스런 일이다. 종단 차원에서 마땅히 역경사를 양성해 고전번역에 노력해야 마땅하지만, 아직은 여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저변확대도 중요하지만 전문분야를 해독해 내고 개발해 낼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고급화 노력도 병행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순 한문으로 비문을 짓고 시를 지을 수 있는 분이 몇 안 된다. 이분들이 현직에서 강의할 수 있을 때 한 자리에 모시는 자리 마련해 놓고 제방의 강사와 강주스님들이 정기적으로, 예를 들면 방학 동안 돌아가며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시켜야만 한다.”
주변에서는 벌써 다음은 어디를 낼 것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뒷부분인 <입법계품入法界品>을 하면 좋겠다는 이도 있으나 <세주묘엄품>과 <십지품>을 냈으니, 그 중간의 삼현三賢 부분에 해당하는 2, 3, 4, 5, 6권을 해야지 않겠나 마음먹고 있다.
《화엄경》을 마무리하면 다음은 어떤 경전을 하고 싶냐는 성급한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사실 스님이 하고자 하는 일은, 의외로 모든 경전의 번역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이 경전공부를 할 수 있는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책을 만드는 일이다.
그건 약간의 글 솜씨만 있으면 그리고 스님 정도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는데 스님의 생각은 달랐다. “어려운 공부도 마치고 다 알아야만이 쉬워질 수 있다. 모르면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스님이 어려운 원전 번역에 열과 성을 기울이는 것은 앞으로는 한문이라는 장벽에 가려 공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진짜 이유다. 이는 교학을 전문적으로 접하고자 하는 이들이 대상이긴 하지만, 나아가서는 일반 불자들이나 관심있는 이들이 한문 때문에 불교가 어렵다는 소리 안 나오게 하고자 하는 깊은 뜻도 담겨 있다. 스님의 번역작업은 실제 멀어져만 가는 한문세대와 함께 진정으로 기쁘게 한문과 굿바이 하기 위한 준비작업인지도 모르겠다.
“화엄은 칠처구회七處九會라 하여 일곱 장소에서 아홉 번 법회가 열리는데, 4번은 천상에서 3번은 지상이라. 천상은 도리천, 도솔천, 야마천, 타화자재천인데 제일 높은 타화자재천에서 <십지품> 설법을 한다. 수행이 최고의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는 중생이 있는 땅으로 내려와 설법을 한다. 그러고 보면 화엄의 구성은 참으로 재미있다.”
부처님은 지금 우리의 어디쯤 와 계신 것일까.□

취재·정리/이연정, 사진/문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