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들의 글은 대체로 ‘좋지만 싱겁다’는 게 편집자들의 중론이다. ‘좋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글에 비해 영혼의 깃들임이 각별하다는 것이고, ‘싱겁다’는 것은 각별한 멋이나 치장을 싫어하다보니 읽다보면 멍하게 졸음이 오기 쉽다는 뜻이다. ‘좋으면서 싱겁지 않은’ 글을 찾으면 심봤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분들은 흔쾌히 책을 허락하는 경우가 드물다. 입 밖으로 나간 말들조차 무리를 지어 세상을 어지럽히는데 하물며 인쇄된 글자라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것인가. 스님들의 걱정은 결코 간단한 법이 없다.
성전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세검정 옥천암에서다. 낙엽 하나에도 마음이 뒤숭숭하던 가을날이었다고 기억되는데, 조계사 근처에 있는 책방 ‘여시아문’에서 아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다짜고짜 택시를 잡아타고 함께 옥천암엘 갔었다.
“모아 두신 원고가 있으시면 책을 내시지요.”
이 말을 던지고 나니 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스님이되 어느 정도의 공력을 가지고 계신 분인지도 몰랐고, 글을 잘 쓰신다고 하지만 제대로 읽은 글이 한 꼭지도 없으니, 무얼 믿고 이런 말을 했을까? 출판기획을 하는데 있어 글은 가리지 않아도 사람은 가려야 한다는 게 평소 개똥 같은 철학이었는데 도대체 그 순간에는 왜 입방정을 떨었을까? 하지만 원고를 받아와 출판을 결정하기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좀 싱겁다는 것은 아쉬움이었지만 ‘좋았다.’ 늘 갑론을박하는 원고만 접하다 산사의 향기가 가득한 글들을 접하니 평상심이 흔들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흔들리는 마음에 운명을 맡겨보자는 심보였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책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다만 사람이 책의 가치를 바꿀 뿐이다.” 흔들리는 마음에 운명을 맡겼다고는 했지만 출판기획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성전 스님의 원고는 극히 평범했다. 이슈도 없고, 소재도 평범하며, 주제는 모여 있어 너무 선명하기까지 했다. 원성 스님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이라도 있었다면 “그게 컨셉이요!”라고 우겨볼 수도 있었지만 그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기 있는 스님’도 아니어서 소위 ‘마케팅’을 하기에는 각이 서질 않는다. 하여 무엇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혹하게 할 것인가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한 컷당 7만 원에서 10만 원은 주셔야지요.”
책에 사진을 넣어 편집하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났더니 모두 7만 원과 10만 원 타령이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지출해야 하는가? 어림잡아 계산해도 저작권료보다 더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경제경영서를 만들던 출판사라 이런 쪽으로는 인적 물적 인프라가 부족했고,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스님한테 도움을 청할까, 생각도 했지만 명색이 출판사에서 사진 하나 해결하지 못해 손을 내민다는 게 민망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계절과 지역이었다. 원고의 내용만 쫓아 사진을 붙이자면 계절로는 가을과 봄, 지역으로는 오대산 등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편집부가 선택한 것은 직접 뛰어보자는 것이었다. 꼭 필요한 장면은 작가들의 사진을 구입해야 했지만 발품을 팔아 가능하다면 직접 찍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 부석사, 마곡사, 내소사, 수덕사 등을 중심으로 경기도와 강화 일대의 절을 다녔고 민속촌에까지 돌아다녔다. 수동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담은 화면만 수천 컷, 이걸 다시 어도비 포토샵에 걸어서 손을 보기까지 사진을 위해 쏟은 시간만 따진다면 편집의 거의 대부분을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의 제명을 지으신 분은 성전 스님이다. 출판사에서 제안한 제명은 ‘중놈, 걸망 하나 지고’였는데 처음에는 좋다고 하시더니 이내 마음을 바꾸셨다.
“아무래도 스님들을 너무 비하하는 표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유혹’이라는 제명을 제안하셨다. 유혹이라… 도무지 생각하지도 않은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할 때에는 그냥 길게 숨을 한번 내뱉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으리라. 하지만 시간이 없었고 우리는 숨 한번 길게 내뱉지 못하고 스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지금도 왜 책 제목이 ‘유혹’이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스님의 책 이름치고는 좀 얄궂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좋은 제목을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삶은 모두 유혹이 아니던가. 선방에서 용맹정진하는 선승에게도, 아귀지옥 같은 세상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는 우리들에게도 하루하루 내 삶의 일부이자 전부를 채워가는 것은 모두 ‘유혹’이 아니던가.
스님의 책을 팔아 돈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유혹’이요, 멋진 책을 만들었다고 자화자찬하던 것도 ‘유혹’이요, 다음에는 또 무슨 책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까 생각하는 것도 모두 유혹이다. 처음 글을 시작하면서 ‘싱겁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성전 스님의 글은 좀 싱거운 게 사실이다. 그 점에서는 지금도 스님에게 할말이 많다. 하지만 스님의 글은 좀 싱거워야 글답다는 비평에 달리 너저분한 이유를 섞고 싶지는 않다. 싱겁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약은 출판기획자의 욕심이요, 있는 그대로의 향기를 아름답게 느껴야 하는 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스님의 글을 책으로 엮었지만 아직 그 향기를 제대로 느끼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싱거운 스님의 모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