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기록하거나 읽는다는 일은 늘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삶을 추적하며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이나 경외심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구두 수선공이건, 한 기업의 총수이건 혹은 성공한 정치가이건 그들의 삶에는 한 인간으로서 고뇌했던 사고의 편린들이 널려 있고 우리 시대의 역사가 녹아 흐르기 때문이다.‘내가 저 쌀이 다 떨어지기 전에 공부를 마치든지 결과가 시원한 꼴이 안 나면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밥을 한 다섯 되쯤 해놓고 양동이에다가 퍼서 방구석에 두고 그 옆에는 김치단지를 하나 가져다놓았습니다. 양재기와 숟가락도 갖다놓았습니다. 겨울인지라 찬밥을 양재기에 떠서 김치조각 하나 놓고 대충 먹고는 우물가에서 찬물 한 모금 먹는 게 공양의 전부였습니다. 양재기고 수저고 일체 씻지도 않았습니다.… 죽을 사람이니 얼굴을 씻고 말고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 발도 안 씻고 방안 소지도 안하고… 방은 냉기만 가시게 하는 정도로 불은 조금만 때었습니다. 더우면 게으른 생각을 내기 때문입니다. 이불도 베개도 다 없애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한 삼 개월 이상 살았습니다.… 석 달 이상 청소를 하지 않은지라 아침에 해가 뜰 때는 앉은 자리에서 보면 윗목에 쌓인 먼지가 눈이 살짝 온 것 같았습니다.… 얼굴을 석 달 이상 씻지 않아도 씻고 분粉 바른 사람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밥그릇을 씻지 않고 그대로 먹어도 더럽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위생이니 병균이니 하는 것도 아무 소용없는 소리였습니다. 발도 씻지 않았고 그저 눈을 뜨면 얼굴 한번 손으로 부비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스님들이 올라오면서 순두부를 5되짜리 커다란 차관에다가 가득 담아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하루는 그 차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순두부 생각이 나길래 한 사발 먹으려고 다가가서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곰팡이가 새까맣게 나버린 뒤였습니다. 겨울이고 또 방이 차가운지라 몇 날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진하던 중 마음에 변화가 왔습니다.
-1997년 하안거 소참법문 중에서
이즈음에 이르면 가히 한 구절의 게송을 듣기 위해 나찰에게 몸을 던지는 설산동자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깨달음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몸을 사리지 않는 구도의 열정을 보며, 삶에 대한 우리의 나태함에 머리 숙이고 만다.
늘 그렇듯이 큰스님의 말씀에는 우리들의 폐부를 뚫는 강렬한 삶의 언어들이 꿈틀거린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새 다가온 삶에 대한 열정, 나는 물론 인간에 대한 믿음, 밖을 향한 따뜻해진 시선. 비록 짧은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나를 돌아보고, 삶을 돌아볼 여유를 찾는다. 재가불자의, 아니 세속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다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법문집을 엮으며 느낀 또 하나 기쁨은, 일반인들로서는 접하기 어려운 선객을 대상으로 한 결제 기간 중의 법문을 듣는 즐거움이다. 조계종단의 자랑인 간화선의 수행풍토와 그 정통법문에서 느끼는 맛깔스러움은 이제까지 출판되었던 대개의 법문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기쁨은 내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되찾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