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어디 있느냐고 찾아다니는 사람은 성인을 만날 수 없다조주종심 선사에게 어느 초심자가 물었다.
“학인이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왔으니 스님께서 지시指示하여 주십시오.”
“그대는 아침 죽을 먹었는가?”
“예, 먹었습니다.”
“그러면 발우를 씻게.”
이 한 마디에 그는 확연히 깨달음을 이루었다. 깨달음을 찾아 나선 모든 선수행자들은 깨달음의 그 순간을 대망하며 수행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미 큰 깨달음을 이룬 선각자들은 깨달음을 향한 추구를 그만두라고 가르친다. 깨달음을 특별한 곳에서 찾는다면 이미 틀린 일이다. 깨달음의 길을 지시해달라는 초심자에게 천하의 도인은 아침에 죽을 먹었으면 발우를 씻으라는 가르침을 내린다.
우리들이 수시로 봉독하는 《반야심경》도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지혜를 얻을 것 없다고 설파한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역시 대장부는 여래의 길마저 답습하지 않으며 부처되기를 기다리지 않을 뿐 아니라 조사가 되기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남아 있는 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은 밖에서 무엇을 구하기보다는 안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을 더 중요시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서울의 조계사에서 서울로 가는 길을 묻는다면 그에게 무슨 답을 할 것인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이 이미 서울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스스로가 이미 완전한 깨달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달마는 무제가 던진 세상의 제일 성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결코 성인은 없다(확연무성廓然無聖)”고 되받는다. 행복을 구하여 쫓아다니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을 만날 수 없다. 누구든 그 자리에서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이 어디 있느냐고 찾아다니는 사람은 성인을 만날 수 없다.
달마의 ‘확연무성’이라는 답은 이미 있고 없고의 차별을 떠난 답이다. 무제가 그 경지를 알아차릴 리 없었다.
달마가 한줄기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다
국립중앙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김명국의 노엽달마도蘆葉達磨圖는 97.6×48.2cm의 크기의 종이에 수묵으로 그려진 작품으로서 달마가 한줄기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는 모습이다. 양무제와의 대화(법거량)에서 무제가 달마의 본의를 이해하지 못하자 달마는 무제를 떠나 양자강을 건너 숭산崇山으로 들어간다.
양자강에 한줄기의 갈대를 꺾어 던지고 그것을 타고 건너는 달마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제에게 반쯤 등을 돌리고 있다. 굳게 다문 입과 부라리며 치켜뜬 눈에서 무제의 선기禪機 모르는 아둔함에 대한 감추지 않는 질타가 묻어 있다.
옷깃은 바람에 나부끼고 그의 얼굴은 위압적이다. 머리까지 덮어쓴 가사자락의 표현은 그 비백飛白의 기법에서 선線의 굵고() 가는(細) 차이가 심하다. 주저 없이 내두른 필법은 취광醉狂이라는 그의 자호가 암시하듯, 대취 뒤의 몽롱한 상태에서 붓 가는 대로 휘갈긴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이러한 대담 내지 대범함과 대조적으로 담묵으로 처리한 얼굴 표정과 다리털의 표현은 섬세하기 그지없다. 옷깃이나 윤곽을 표현한 거친 부분은 거친 대로 기발하고, 얼굴이나 발의 털을 표현한 부분은 세밀한대로 정확히 그 묘사할 바를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필요 없는 부분은 한점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표현하고자 한 그의 의취意趣를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이 작품은 그 당시 달마의 심경을 가장 적의적절適意適切하게 표현해 낸 신품神品으로 평가받는다.
그림에는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작품이 있고, 배워서 이룰 수 있는 경지의 작품이 있으며, 배우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서도 나면서부터 스스로 이룬 경지의 작품이 있다. 옛사람들은 뒤의 것을 일러 신품이라 했다. 신품이라 함은 이처럼 거리낌 없는 활달한 필치와 인위적 작위作爲 없는 자연스러운 운필로 붓 가는 대로 내맡겨 이루어진 작품을 이르는 말이다.
신품의 경지에 오른 화가를 신필神筆이라고 한다. 연담 김명국은 조선시대 화가 가운데 신필로 추앙받는 첫 번째 화가다. 신필이라면 어느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천재성과 기존의 격식을 뛰어넘는 파격적 끼(氣格)가 있어야 한다.
이 그림은 앞사람들의 기법을 초월한 무법無法, 조잡한 군더더기 없는 무잡無雜, 거리낌과 속박에서 벗어난 무심無心, 격식에서 벗어난 자유분방의 무애無碍 등 선화의 보편적 속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격조 높은 선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