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만물의 근원이 모두 공허하다는 절대적 ‘무ꡑ를 깨닫고 보면 주체니 객체니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일체의 상대적인 내외의 개념이 성립할 수 없으며 진리는 그대로 ‘만월한광滿月寒光‘ 처럼 초연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 ‘만월한광’이 시사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의미 자체를 초월한 선기에 해당하지만 ꡐ보름달의 차가운 빛ꡑ 이란 바로 ‘명명불매明明不昧‘의 선정의 최고점, 선정禪頂의 경지를 의미한다고 보겠다. 따라서 일상의 언어 경계를 초월한 ‘반상反常ꡑ의 논리가 주는 신선함과 엄숙함은 선기시가 지니는 기묘한 표현의 멋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ꡐ선정출기禮定出機‘ 의 선기시는 참선의 수행으로 체득한 선사가 무아 삼매의 경지에서 표출하는 직관적이고 순간적인 언어와 행동의 작용을 담은 선게禪偈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화시禪話詩란 선학 禪學에 관계된 모든 이야기, 곧 선공부禪工夫의 경전이나 이치, 옛 선사들의 행적 등 선정의사事, 이理에 관한 강화講話등을 담은 시가를 말한다. 따라서 이는 선행의 이치를 노래한 선리시禪理詩와 선사들의 행적과 선려禪侶들의 주변적인 이야기, 곧 禪流, 禪侶, 禪和, 禪會, 禪房, 禪寺, 禪院, 禪椅, 禪病, 禪筌, 禪蹄, 禪窟 등에 관련된 선사시輝事詩로 나눌 수 있다.
다음은 원감圓鍵국사 충지의 게송으로서 선화시에 해당한다.
봄이 와 계수나무 동산에 꽃이 피었는데 그윽한 향기 꿈쩍 않는 소림사의 禪風 오늘아침 과일 익어 단․이슬에 짖었으니 끝없는 인간과 천상에서 같은 맛 보리라.
春日花開桂苑中 暗香不動少林風
今朝果熟霑甘露 無限人天一味同
마흔 살이 되어 김해 감로사 甘露寺의 주지가 되었는데 당시 한 선객이 국사에게 시를 청하여 즉석에서 지어준 시이다. 「원감록圖鑑錄」에는 실리지 않고 원감 국사 비문에 들어 있는 이 작품은 봄이 와서 계수나무 동산에 꽃이 피고 은은한 향기가 널리 퍼지니 이는 마치 옛날 달마조사가 선기를 일으킨 이래로 변함없이 전해와서 예서 그 선지禪旨를 보리라고 득의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달마의 선풍에 힘입어 감로를 마시듯 선리禪理를 깨달아 모든 중생들이 밝은 선심 禪心을 얻게 되리라는 말은 바로 ‘의고입선 擬古入禪‘ 의 선사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계와 천상계의 모든 중생들이 동일한 선미 禪味를 맛보게 된다는 ‘인천무애人天無碍‘ 의 선경禪境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선정禪頂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게송에서 원감 국사는 조주趙州 선사의 선화禪話를 회상하면서 좌선의 자세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조주선사는 모든 것을 버리라 하였고 분양의 무업선사는 망상을 말라 했지 .
우리 선문의 뛰어난 두 분 스님께서는 함께 소리치며 아무 말 못하게 하였네.
오직 欽山文邃가 그 경지에 이르렀으나 둔한 선기를 가지고 스스로 편안하였지.
평생동안 온갖 것을 깨우치지 못하여 날마다 날마다 단지 똑같은 모습이었지.
趙州放下着 汾陽莫妄想
兩個老作家 傷揚聲止響
爭如邃導師 抱純以自安
平生百不會 日日只一般
조주의 ‘방허착放下着’이나 분양의 ‘막망상莫妄想ꡑ의 일할一喝이 원감 국사에게 좋은 선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목에서 “흠산欽山이 말하기를ꡐ나는 평생 아무것도 깨달은 바가 없고 단지 하루하루를 똑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뿐‘ 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말을 사랑한 나머지 이에 게송을 지어 기록해 둔다”고 했듯이 그 스스로 선혜禪慧를 얻기가 쉽지 않음을 인지하였다.
물론 원감국사는 옛 선화禪話를 바탕으로 선정禪定을 체험하면서 선미禪味를 자득하고 선정바라밀을 이루었지만 선정禪頂에 오르는 일은 모든 선수행자에게 어려운 관문이 아닐 수 없었다.
유종원柳宗元은〈선당禪堂〉에서 다음과 같이 선정禪頂의 경계를 노래하면서 아울러 선리禪理를 말하였다.
산꽃이 그윽한 선방네 떨어지고
방 안에는 속세 잊은 나그네 있네.
有를 찾기란 본디 취할 일 아니요
空을 살피려면 분석해선 안되리라.
온갖소리 모두인연 따라 생기니
멍하도록 시끄러워도 고요한 것을.
마음과 경계가 본래 시원히 뚫리니
새가 날아가듯 자취 남음이 없어라.
山花落幽戶 中有忘機客
涉有本非取 照空不待析
萬籟俱緣生 罝然喧中寂
心境本洞如 鳥飛無遺跡
이 작품은 선정의 이치를 말한 점에서 보면 선리시禪理詩에 해당하지만 그윽한 禪堂의 정취를 노래한 점에서 보면 선취시禪趣詩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자수子秀선사가 「불조진심선격초佛祖眞心禪格抄」에서 〈여래선격如來禪格〉가운데 <능지중여래선能智中如來禪〉을 노래했듯이 원융한 심경에 대하여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만상萬相의 유有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또한 공空과 ꡐ공공空空ꡑ에 대한 집착마저 버린다면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도 고요함을 이룰 수있는 ‘심경무애心境無碍’ 의 선정禪定에 들 수 있다고 하였다.
알고 알고 또 아는 곳이라야
만물이 없음을 알고
밝고 밝고 또 밝은 곳이라야
자취를 끊음이 밝다.
앎과 밝음의 두 가지가 융합된
마음 지혜의 해가
두루 밝고 크게 비치니
온 허공이 밝고도 넓도다.
온 허공이 밝고도 넓은 곳에는
봄바람이 풀릴 테고
이르는 곳곳 산 속 선방마다
꽃이 활짝 피었으리.
了了了處了無物 明明明處明絶迹
了明二融心智日 圓明大照空寥廓
空寥廓處春風解 處處山房花灼灼
이러한선정禪定에 대하여 일찍이 혜능慧能조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선지식이여. 어떤 것을 좌선이라고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일체 선악의 경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坐라고 하며, 안으로 자기의 성품이 움직이지 않음을 보는 것을 선禪이라고 한다. 선지식이여. 무엇을 선정禪定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습을 떠나는 것을 선禪이라 하며,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을 정定이라 한다. 만일 밖으로 모습에 집착한다면 안의 마음이 어지럽고, 만일 밖으로 모습을 여윈다면 마음이 곧 어지럽지 않으리라. 본래의 성품은 절로 깨끗하고 절로 고요한 것인데 다만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곧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만약 여러 경계를 보고서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면 이는 참된 정定이다. 선지식이여. 밖으로 모습을 떠난 것이 곧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곧 정定이니 밖의 선禪과 안의 정定이 바로 선정禪定이 되는 것이다.「정명경淨名經」에 이르기를, ꡒ즉시에 깨달아 막힘이 없으면 도리어 본연의 마음을 얻는다?”고 하였으며. 「보잘계경 普薩戒經」에 이르기를, “나의 본디의 성품은 원래 절로 깨끗하다ꡓ고 하였다. 선지식이여. 생각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스스로 본디의 성품이 깨끗함을 보고서 스스로 닦고 행한다면 스스로 불도佛道를이루리라.
만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선정禪定의 요체임을 밝혔다. 그리하여 본연의 성품을 이루는 선적禪寂의 수행으로 마침내 불도佛道에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육초의 이러한 선리는 후대 많은 선객들에게 지침이 되어 선정의 참뜻을 깨우치고 참맛을 터득하게 하였다.
취미翠微 대사 수초守初 역시 〈산거山居〉라는 선미시禪味詩에서 대경對境을 잊고 한가한 마음자리를 얻는 것이 선정禪定의 입문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산이 나를 불러 머문것 아니요
나 또한 산을 알지 못하였어라.
산과 내가 서로 잊는 자리라야
바야흐로 유별나게 한가하리라.
山非招我住 我亦不知山
山我相忘處 方爲別有閑
산을 택하여 산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 산마저 잊어버리는 수행을 통해야만 진정한 선정에 이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역시 마음밖으로 상相을 떠나서 마음의 고요함을 이루는 것이 곧 선禪임을 인지하였다. 이러한 선에 대한 이해는 함허당涵虛堂기화己和의 〈의희양산거擬曦陽山居〉에서도 나타난다.
깊은 산에 나무가 빽빽하여
숨어 살기 알맞고
조용한 경계라 사람 드무니
흥취마저 넉넉하다.
이 가운데 솟아나는 맑은 의미를
배불리 얻어
문득 내 몸과 세상을 잊으니
절로 한가롭구나.
山探木密合幽居 境靜人稀興有餘
館得箇中淸意味 頓亡身世自容與
‘정靜ꡑ과ꡐ청淸ꡑ과 ‘망亡’으로 요약되는 선의 요체를 나타내면서 선정의 단아한 정취를 노래하였다. 「유마경維摩經」에서 즉시에 깨달아 막힘이 없으면 도리어 본연의 마음을 얻는다 (卽時豁然還得本心”고 하였듯이 몸과 세상의 존재를 ‘돈망頓亡ꡑ함으로써 스스로 본연의 마음자리를 얻어 한가롭게 된다
는 것이다. 이는 바로 ‘선정미도禪定味到’의 경계에 이르는 것임을 말한다.
탈속脫俗의 한가로운 정취를 바탕으로 청정한 무욕, 무상의 정신 세계를 노래하는 선미시禪味詩는 소동파蘇東坡가ꡐ소나무와 삼나무는 진정 불법의 이치요, 차와 죽순은 모두 선정의 취미로다(松杉眞法音 茶荀盡禪味)ꡓ라고 하였듯이 대경對境을 좌선의 고요한 마음으로 관조하면서 진리를 파악하거나 참선 수행의 열락悅樂을 노래한 선사들의 선탈禪脫, 선정禪頂의 시가이다. 선정禪頂의 열락을 노래한ꡐ선정미도禪定味到’ 의 선미시 禪味詩는 다음의 대감大鑑국사 탄연坦然의 〈문수사文殊寺>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높은 선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선방이 어찌 이리 밝고도 넓으리오
온갖 세상 인연이 모두 고요하여라.
돌 틈 사이로 오르막 길이 뻗어 있고
바위 뚫고 샘물이 뚝뚝뚝 떨어진다.
뽀얀 달이 처마 끝 기둥에 걸려 있고
시원한 바람이 숲골짝서 불어온다.
그 누가 저 스님의 가르침 좇아서
맑은 좌선으로 참된 즐거움 배우리.
一室何ꝁ廓 萬緣俱寂寞
路穿石罐通 泉透雲恨落
晧月掛簷楹 凉風動林壑
誰從彼上人 淸坐學眞樂
먼저 온갖 세상의 인연이 고요하게 보이는 선적禪寂의 명상을 통하여 국사는 높은 선기禪機를 나타내고 있다. 바위를 뚫고 샘물이 떨어지듯이 맘은 마음껏 솟아난다는 참선의 경계야말로 노사의 선정 禪頂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문수보살의 환영이 둥근달처럼 떠오르고 그러한 선풍이 고요한 산사에 불어오니 참다운 선정의 열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부휴당浮休堂 선수 善修의〈증암선백贈岩禪伯〉과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의 〈추루술회 秋樓述懷〉라는 게송이다. 이들 게송 역사 참선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선열禪悅의 경지에 이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문을 닫고 혼자 고요히 좌선하며
마음을 비우니
구름아래 푸른 산에
외마디 봄새 소리 들린다.
이른거리는 아지랭이
한가로운 운취가 넘치는데
다만 스스로 기뻐할 뿐 그
대에게 주지 못하누나.
黙坐虛懷獨掩門 一聲春鳥碧山雲
煙霞剩得閑中趣 只自熙怡不贈君
매양 빈 누각 향해 좌선하며 반성하지니
날마다 일어나는 가을흥취 끝이 없어라.
이슬 맺힌 노란 국화 옥을 머금은 듯하고
단풍 섞인 푸른 솔 붉은 빛과 다투는 듯.
거센 바람이 지나가자 새로 밤이 터지고
찬 서리 내리자 벌레소리조차 조용하다.
다만 홀로 이 소식을 깨달아 즐길 뿐이고
다른 스님과 더불어 몰래 나누기 어렵다.
每向虛樓坐省躬 日來秋興起無窮
露凝黃菊花含玉 楓雜靑松碧關紅
風勁自隤新하栗 霜寒多寂---蟲
只堆獨許伊消息 難與師資喑洩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