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생명이 있는 것에 선악善惡이 따로 있고 시비是非를 가릴 것이 있을까마는 굳이 이를 가리자면 시비는 없을지라도 선악은 있을 것이다. 세상 삼라森羅의 만상萬象들이 그물과 같은 인연으로 얽혀 있어 다른 생명을 취해야만 내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니, 부득불 내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것은 불가피不可避한 불선不善일 수밖에 없으리라.부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시기를 정각을 이룸으로써 모든 천인들이 내려와 이미 부처가 된 것을 찬탄하였다. 눈빛에 일찍이 있지 않던 선열禪悅이 드러나 해탈의 지혜와 선정의 편안함을 음식 삼아서 선정의 기쁨을 누렸으며 쉬임없이 칠일을 밤낮으로 도량의 그 나무(보리수)를 관觀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였다.
석가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후 나무를 관하며 은혜를 생각함은 세상 만물의 근원이 되는 공덕功德을 찬탄함이니, 부동不動의 보리수가 석가여래의 성도成道까지 그 곁을 떠나지 않았음도 움직이는 생명이라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석가여래의 곁을 지켰으므로 석가의 깨달음을 함께 찬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래의 깨달음을 삼계의 모든 신神들이 증명하였고, 무릇 모든 천인들이 그 깨달음을 펼치시기를 권하고 또 청하니 그것이 보리수 아래서의 첫 전법륜轉法輪이다. 그러므로 석가여래의 설법을 그린 장면에는 하늘로부터 비천들이 그 깨달음의 희유함을 찬탄하며 꽃을 뿌리고, 석가여래의 금색신金色身 뒤에는 장하디장한 보리수 두 그루가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이때 보리수는 석가여래 깨달음의 상징이며, 전법륜轉法輪의 방편이다.
석가의 보리수는 여래의 성도를 지켜준 공덕이었고, 지금 우리 사바세계의 초목은 중생을 먹이고 살리는 공덕이니, 지극한 선善이 이외에 따로 있을 것인가. 어리석은 중생은 선善인 줄도 모르고 부득불 먹는 음식으로 시비是非만을 가리고 있으니 여래께서 나무를 관하던 그 순수한 마음이 우리네 마음에도 나투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