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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단 환경기구 설립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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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2003년 09월 259호
범종단 환경기구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교계신문에 따르면, “조계종을 비롯한 타종단들이 연대한 불교환경기구가 창설될 예정이어서 자연환경 보존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한 불교계의 역량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 이번 범불교적 환경기구는 북한산 관통도로 등 현안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전 종단의 힘을 결집하고, 향후 장기적인 안목에서 불교적 환경대책을 수립하고 종단 및 국가정책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 종단이 공동으로 환경연구소를 설립하고 불교환경의제를 제정해 전문가 및 활동가 양성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불교신문, 2003. 8. 12>

환경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한 세대 전 스톡홀름에서 환경의 문제가 전 인류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정부의 정책과 인류의 모든 활동에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세계 각국의 정부 책임자들이 동의했다. 환경의 문제가 인간의 삶의 질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건강, 나아가 생명의 문제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인식은 상당히 높아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리우’ 이후 10년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를 보면 더욱 심각하다.
최근 경기 침체에 따라 환경의 질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정책들이 잇따라 도입되고 있다.
즉 2005년부터 경유승용차의 운행허가, 골프장 허가면적의 확대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현안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 또한 철저히 반환경적이다. 새만금 간척 사업,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 사업, 금정산·천성산 관통 경부고속철도 건설 사업 등이 주요 현안인데, 멀게는 10년에서 3년 가까이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세 사업 모두 불교계와 시민·환경단체 등에서 주도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보전에 따른 가치를 정책에 반영해야 하며, 이에 따라 사업의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업의 경우, 국립공원 보전과 서울북부(노원·도봉) 지역의 심각한 대기오염에 따른 주민의 건강권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개발에 따른 이익이 크다 한들 보전해야 할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지, 훼손된다 해도 괜찮은지를 따지자는 것이다. 특히 개설된 도로에 의해 주민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면, 그 어떤 개발이익도 무의미하다. 국립공원 보전에 대한 문제도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국립공원은 개발에 의해 훼손될 자연환경의 최후 저지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국립공원은 또한 정부가 지정해 보전토록 한 구역이다. 국립공원에 토지가 편입될 경우 토지소유자는 재산권 행사도 제한받는다. 국민에게는 보전을 위해 권리를 제한하면서 정부 스스로가 정한 보전지역을 훼손하는 것은 아무리 정부라 한들 권한 남용에 해당된다. 세 사업이 지닌 공통의 문제는 또 개발지상주의가 여전히 정부정책에서 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개발지상주의는 종교와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인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조화로움의 회복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조화로움은 둘 이상의 관계가 원만하다는 뜻인데,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사람과 자연까지의 관계도 포함하고 있다. 자연은 사람을 포함해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점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개발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인간에 의한 인간과 자연의 불화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인간에 의한 일방적인 이용과 파괴라는 일방통행이 되어버렸다. 자연은 여기에 대해 각종 환경재앙으로 인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결국 개발지상주의는 종교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불교의 불살생, 연기의 가르침은 개발지상주의로 인해 그 가르침의 바탕이 침식되고 있다. 따라서 슈마허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현재 진행중인 종교적·영적인 가치에 대한 배려 없는 ‘근대화’가 현실적으로 유쾌한 결과를 낳고 있는가 하는 당면한 의문이 남는다.”<내가 믿는 세상, 문예출판사, 2003, 68쪽>

현대의 경제는 종교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 슈마허의 견해이다. 범종단 환경기구의 구성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불화와 부조화로 치닫는 이즈음 불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과 실천 방향을 제시해줄 구심점을 불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불자들뿐만 아니라 시민환경단체에서 불교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1세기는 환경 즉 생명과 평화가 화두이다. 이에 대한 큰 가르침을 불교에서 제시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불교가 단지 조직상으로 거대하고, 몇몇 뛰어난 스님들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기와 불살생의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범종단 환경기구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다.

경전은 청정국토를 얻기 위해서는 심청정心淸淨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맑고 깨끗한 국토를 원하거든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마음이 맑고 깨끗해짐에 따라 불국토는 깨끗해지느니라.”(유마경) 따라서 환경운동은 심청정하는 신앙운동이어야 하는 ‘심청정 불사’이다. 우선 불교 내에서 구현함으로써 그 범위를 차츰 넓혀가야 한다. 불교에는 자연친화적 도량 건축, 생활 관습, 옛 스님들의 가르침이 그 어느 집단보다 강하게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이를 체계화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의 과제이다.

단지 외연의 확장이어서는 안 된다. 확장된 외연을 넓이와 깊이를 넓고 깊게 하는 에너지로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여러 종단이 뜻을 모으는 것인 만큼 성급한, 어느 특정한 종단의 일방적인 진행은 경계해야 한다. 환경운동의 궁극이 조화로움의 회복에 있듯, 환경운동을 위한 결사 또한 목적을 앞세우는 의욕이 과잉되어 조화로움을 깨뜨려서는 성과가 아무리 좋다한들,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