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 용맹정진 하던 때의 일이다.
선방스님 한 분이 몸이 심하게 아픈 적이 있었다.
아픈 환자는 짐을 싸서 떠나든지, 아니면 큰방에서 정진하면서 끙끙 앓아야 한다.
그 당시 부방장으로 대중들을 지도하시던 혜암 큰스님은 오히려 그 스님을 다그치는 것이었다.
“죽어도 이 방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정진하시오. 다시 한 번 용맹심을 내도록 하시오”
큰스님의 한마디에 환자 스님은 그 날부터 죽을 힘을 다해 용맹정진에 참여하였고
나중에는 벽에 살짝 기대어 정진하도록 배려해주는 모습에서,
공부에는 추상 같지만 인정에는 따스하던 어른의 살림살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용맹정진 마지막 날은 졸지 못한다.
깜빡 졸기라도 하면 죽비경책이 사정없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특히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는 ‘소나기 경책’이 계속된다.
죽비를 맞고 돌아서면 또 잠이 쏟아진다.
이때는 수마睡魔의 공격도 거세지는 시간이라서 눈꺼풀의 무게가 정말 실감된다.
가끔 대중들이 수마에 깊이 빠져 죽비경책도 소용없을 때가 더러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혜암 큰스님이 나선다.
죽비를 들고 졸고 있는 스님의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치는데, 그 소리가 선실을 쩌렁쩌렁 울린다.
작은 체구지만 죽비를 손에 들기만 하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백여명이 넘는 대중을 경책하고도 힘이 부치지 않으셨다.
스님의 매서운 죽비경책을 받고 나면 저절로 허리가 펴지고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눈이 떠진다.
한번은 덩치 좋은 학인 스님이 마음 놓고 졸고 있었다.
나이 든 노인이 아무리 힘주어 쳐도 아프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날 학인 스님은 어깨가 처질 정도로 경책을 받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죽비 끝으로 큰스님의 기氣가 모이는가 봅니다.
죽비가 어깨를 내리칠 때마다 아름드리 나무토막으로 내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공부를 다스리는 힘은 체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행에서 나오는 것인 것 같습니다.”
그때처럼 죽비 맞은 자리에 시퍼렇게 멍들더라도
대중들의 잠을 깨우던 큰스님의 경책이 다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