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청소년 수련회를 회향하고 난 후 한 학생에게 장난삼아 툭 던져주고 받은 인사말이다. 어제 1,080배 할 때만 해도 얼굴에 힘겨워하고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었는데 한 학생이 수련회 일정을 무사히 끝마치고 나서 막상 집에 가려고 하니까 무척 서운했던 모양이다. 자꾸 슬퍼진다며 울먹이던 그 어린 소녀의 마음이 이번 1차부터 7차까지 대부분 수련생들의 마음이 아니었는가 싶다.
이번에 나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우연찮게 수련회 습의사 소임을 맡아서 내려오게 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난 출가하기 몇 년 전 이곳 해인사 하계수련회에서 수련생으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그 습의사 스님들의 엄격함과 절도·위엄 등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과연 과거의 엄했던 그 습의사 스님들만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또 대부분 수련생들이 1년에 단 한 번뿐인 여름휴가 때 귀한 시간을 쪼개서 수련회에 참가하는 것을 잘 아는 나로서는 단 며칠 동안이지만 그들에게 감동과 성취감,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지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차까지 수련회를 다 마치고 보니 개운하다는 면보다 내가 부족한 면이 많아 수련생들에게 더 큰 감동을 실어주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야 포교국장 스님이나 선배 습의사 스님들이 한결같이 해인사 수련회는 힘들게 해야 제대로 된 수련회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입재식 하기 전에는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던 수련생들이 일정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평온하고 다소곳하게 변해 있는 모습과 보름달같이 환한 얼굴 표정들을 보면서 고통을 참고 하심하고 인내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뒤에 찾아오는 성취감과 행복들도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수련 4일째 되는 날에는 소위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1,080배와 곧이어 2km가 넘는 마애불 산행을 하게 된다. 젊은 분들도 1,080배 한 후인지라 힘이 들어서 올라갈 때는 불평도 많이 하고 상당히 힘들어 한다. 습의사 스님들이 조금만 약한 마음이 들어 빨리 올라가라고 독촉하지 않으면 절반 이상의 수련생들이 끝까지 오르지 않고 계곡이 있는 중간 휴식처에서 그냥 쉬어버린다.
3차 때인가… 한 번은 시간도 조금 부족한 것 같고 수련생들이 꽤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혜오 스님이 중간 휴식처에서 늦게 올라온 사람들을 마애불까지 못 올라가게 막았다. 이때 머리가 하얗게 쉰 노보살님이 마애불에 올라가는 길목에 서서 올라가려고 머뭇머뭇거리고 계셨다. 내가 얼른 달려가서 말렸다. “보살님 올라가지 마세요. 너무 늦었습니다.”하고 문득 노보살님 눈과 마주쳤는데 그 두 눈에는 애원과 갈망으로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스님, 올라가게 해주세요. 스님 말씀 거역해서 죄송합니다. 이번에 마애부처님 뵙지 못하면 언제 지가 다시 올 수 있겠습니까.” 금방이라도
눈물이 주루룩 흐를 것 같은 눈빛으로 애원하는데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혜오 스님 말을 어겨서 조금 미안했지만 그렇게 신심 깊은 노보살님을 모시고 마애불까지 동행한다는 게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었다. 힘들어 하셨지만 올라가는 내내 얼굴에는 어린 소녀같은 미소를 머금으면서 즐거워하셨다.
나는 수련 기간 내내 이 노보살님의 신심 깊은 포근한 얼굴이 떠나지 않았다.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구도의 열정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데 삭발하고 승복까지 잘 차려입은 나는 얼마나 절실하게 불도를 구하려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또 수련 4일째 되는 날 저녁 예불 후에는 포교국장 현진 스님과 함께 하는 <차 한 잔을 나누며>라는 코너가 있다. 현진 스님의 구수한 입담과 재치 있는 사회 속에서 좌선, 1,080배, 묵언, 차수 등 힘들었던 수련 과정 동안 생긴 에피소드, 감동 받은 일 등을 차 한 잔을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몇몇 분은 가슴이 시큼하도록 감동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젊은 보살님이 있었다. 얼마 후에 시집을 간다면서 시집가기 전에 어머니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꼭 해드리고 싶었는데 고민한 결과 해인사 수련회를 택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걸음만 겨우 걸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아서 수련 기간 내내 고생을 많이 했지만 아주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좋아했다. 젊은 보살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또 임신 7개월이 된 임산부도 있었다. 수련회에 꼭 참가하고 싶었는데 애기 낳고 나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위험을 무릅쓰고 참가했다고 한다. 힘들어도 입술을 꼭 깨물고 수련회에 임하는 자세가 보기 좋았고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회향을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한달 보름 동안 7차까지의 긴 여정을 다시 돌이켜보니 힘든 일도 꽤 있었지만 나 나름대로 감동도 많이 받고 보람도 느껴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처음 법사단으로 내려와서 어리둥절했던 나를 많이 도와주신 포교국장 현진 스님과 혜오, 무성, 혜원, 무진, 현오 스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