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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新疆 쿠차의 쿠무투라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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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3년 09월 259호
쿠차는 천산산맥 남쪽의 타무르 분지에 위치한 곳으로 예부터 동서 교류의 가장 중요하고 규모가 큰 오아시스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중국의 한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이 살고 있으며, 그들 고유의 말과 글을 쓰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짙은 눈썹과 커다란 눈, 그리고 높은 코와 큰 키 등으로 인도인에 가까워 중국의 한족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특히 위구르 여자들은 아주 화려한 의상과 많은 장신구를 하고 있었으며 반면에 남자들은 머리에 작고 둥근 모자를 쓴 소박한 모습이었다.
쿠차는 근래에 들어선 신시가지 이외에도 구시가지가 있어 그곳에는 흙으로 만든 집과 이슬람 사원, 그리고 아침에 장 서는 거리 풍경 등을 볼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바자르’라는 커다란 장이 서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바자’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쿠차 시내의 또 하나의 명물은 방풍림이다. 이것은 시내로 모래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심은 가로수로 줄이어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도시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나무 그늘을 따라 아침부터 과일 노점상이 늘어서 우리 일행은 뜻하지 않은 호사를 경험했다. 이 지역은 밤낮의 기후차가 커서 여름에는 수박과 멜론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특히 멜론은 종류가 너무나 많다. 색깔마다 크기마다 모두 미묘하게 맛이 달라 생애에서 최고의 맛있는 멜론을 즐겼다.
한편 쿠차는 실크로드의 최대 규모의 석굴 조성지로 잘 알려져 있는 키질 석굴 이외에도 키질가하, 심심, 쿠무투라 등의 석굴들이 있다. 이 지역의 대부분 석굴들도

여러 차례의 심한 훼손 때문에 그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다행스럽게 근래는 키질 석굴연구소가 생겨 이 지역의 석굴들의 복원과 관리, 안내 등을 맡고 있다. 이 지역의 석굴들을 배관하기 위해서는 키질 석굴연구소의 허가를 얻은 후에 우선 그 사람들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 또한 각 석굴에는 현지인인 석굴 경비원이 있어 연구소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열쇠와 현지의 경비원이 가지고 있는 열쇠를 합쳐야만 석굴을 볼 수 있도록 이중의 장치를 하고 있다. 어떤 특정의 굴은 키질 문물보관소의 열쇠까지 합쳐 세 개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석굴의 배관료도 보존과 복원의 기금을 이유로 꽤 비싸므로 미리 이에 대한 경비를 따로 생각해 두는 것이 좋다. 이러한 현지인들의 노력과 유네스코와 외국의 원조 덕분에 근래 키질 지역의 석굴들은 점차 복원과 보존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쿠무투라 석굴은 무자르트 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강을 따라 가야 하는데 따로 도로가 없다. 미리 키질 석굴 연구원이 마을의 마부에게 연락을 하여 하류에 있는 수력발전소 앞에서 만나 마차를 타고 가야 한다. 쿠차인의 늙은 마부는 멋드러지게 치장을 한 나귀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 마차를 타고 석굴을 찾아가는 기분을 한껏 내면서 6킬로 정도를 가니 현지 석굴 경비원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석굴은 전체 112굴이 지금까지 알려져 있으며, 3세기에서 13세기의 긴 시기에 걸쳐 조성되었다. 여기도 역시 보존 때문에 일반에게는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하는데 우리는 약 15개 정도의 굴을 배관할 수 있었다. 쿠무투라의 전체적인 벽화 양식은 인도, 희랍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으며 화려한 장식문양 등은 보이지 않았다. 석굴의 건축 형식은 전실前室, 중심주中心柱, 후실後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중심의 기둥을 돌면서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으로 만들어진 곳이 많았다. 특히 전실은 쿠차 지역의 다른 석굴 등에서는 대부분 무너져 버렸지만, 이곳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전실에는 여러 개의 창을 내어 햇볕을 안쪽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으며 또한 다른 굴로 연결하는 통로 구실도 하고 있었다. 이곳의 거의 모든 벽화는 훼손이 심하여 그 원형을 알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연구원의 말에 따르면 13세기경에 이 지역에 들어온 이슬람교도에 의한 훼손을 시작으로 한때 마을 사람들의 생활공간으로 쓰이기도 하였고, 20세기에는 영국인, 독일인이 보존상태가 좋았던 일부 벽화를 떼어내 가져가 그 일부는 독일미술박물관에 있다고 하였다.
먼저 제68굴에서 제72굴이 연달아 있는 오련동五連洞을 배관하였다. 이곳은 바로 강 옆에 위치하고 있어 전실의 창문으로 앞의 강을 내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굴이다. 사진은 바로 이곳에서 찍은 장면이다. 이 일련의 석굴들은 6세기경의 조성으로 입구가 서쪽으로 나 있어 오후에는 햇볕이 안쪽까지 환하게 들어온다. 제68굴은 가운데 네모난 기둥(方柱)이 있고 이 기둥을 돌면서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으로 악기 공양을 올리는 비천과 천상세계를 그린 벽화의 일부가 남아 있다. 제69굴은 설법을 행하던 강당으로 이곳에는 쿠차 문자로 세 사람의 쿠차 승려에 대한 내용이 벽에 새겨져 있으며 중국 본토의 승려가 쓴 것으로 보이는 문자도 새겨져 있다. 5세기 경에 조성된 제58굴은 전실이 무너져 없어졌으나 보리수 가운데의 기락천伎樂天과 삼계의 천인이 화려하게 남아 있어 이 굴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수력발전소가 있는 강 하류에는 최근에 발견된 쿠무투라 신1굴과 신2굴이 있으나, 갑자기 불어난 강물 때문에 그곳에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다녀온 친구에 의하면 돔 형식의 천정에 비천상의 벽화가 완벽하게 남아 있어 그 아름다움에는 침묵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비록 그곳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훼손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나 기쁘다.
마차를 타고 쿠무투라 석굴에서 돌아오는 동안 우리 일행은 말없이 강물만 유심히 바라보았다. 여행길에 지친 탓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모두들 그 옛날 이 길을 지나가신 현장 스님과 혜초 스님을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처럼 빨리 쿠차로 돌아가 맛있는 멜론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