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사찰 박물관은 99년 통도사 성보 박물관의 개관을 시작으로 현재 10여 개에 이르고 있으며 다른 사찰에서도 속속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사찰 박물관은 교구 본사를 중심으로 교구 말사의 유물까지 관리·전시·교육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사찰 박물관의 조건은 시설이나 인력 면에서 모두 열악한 형편이며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각 사찰 박물관의 관장스님 이하 학예연구원들이 의욕적으로 활동해나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늦게 시작한 사찰 박물관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 박물관의 업무는 물론이고 사찰 박물관만의 특징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찰 박물관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 종교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찰 박물관은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이라는 명칭을 쓴다. “성보聖寶”는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성스러운 보물쯤 될 것이다. 성스러운 보물을 간직한 박물관… 박물관이라는 학술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기관에 성보라는 종교성이 더해진 곳이 사찰 박물관으로, 유물을 연구와 감상의 대상으로 볼 것이냐 종교적 대상으로 볼 것이냐 하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생긴다. 이 양자간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고 조화롭게 지켜나갈 것인가가 현재 사찰 박물관의 고민이며 앞으로의 활동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불상을 예로 들어보자. 법당 수미단위에 앉아 계신 부처님은 우주의 법신으로 진리의 상징이며 예배의 대상이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람을 초월한 것이다. 이러한 부처님이 박물관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부처님이 아닌 “불상”이 되어 버린다. 우주의 법신이 아닌 사람이 만든 물질일 뿐이며 예배의 대상이 아닌 연구와 감상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재질과 크기가 기록되고 사진이 찍히며 간혹, 복장물을 드러내 분석하고 보존처리되기도 한다. 숭고한 부처님이 철저히 해부되는 순간이다. 그 후 부처님은 유리관 속에 들어가 불빛을 쏘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이렇게 종교성이 탈각되고 미술품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종교인에게는 모독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사찰 박물관은 사찰의 한 부분이므로 더욱더 거부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불상은 불교라는 테두리를 떠나 우리 민족 전체의 유산이며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그 유산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잘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것 또한 이 시대 사람들의 책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로 훼손 정도가 심하거나 보존 가치가 높은 불상을 두고 스님과 학예연구원이 갈등을 빚기도 한다. 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양자의 차이를 어떻게 메워 나가야 할까?
대부분 사찰 박물관 학예연구원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님들과 신도들의 우리 민족 전체 문화재로서의 불교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며 학예연구원들 또한 종교적 엄숙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문화재로서의 의미를 유지시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서서히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으며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불이不二의 정신으로 “성聖”과 “속俗”의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면 다른 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는 사찰박물관만의 독특한 특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포교와 교육의 장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다.
현재 사찰 박물관의 역할 중 가장 미진한 것이 교육 부분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교육까지 그 여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박물관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사찰에 속해 있지만 독립된 공간이기도 하다. 굳이 불교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번쯤은 다녀갈 수 있고 불교신자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불교에 대한 호감도와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높아지는 신도들의 지적 욕구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갈수록 불교인구가 고령화되어 가는 추세에서 젊은 세대에게 쉽고 참신하게 불교를 포교할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이다.
셋째,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사찰 문화재는 우리 나라 국가 지정 문화재의 40%, 시·도 지정 문화재 및 문화재자료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 비지정 문화재까지 합친다면 우리 나라 문화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풍부한 문화재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획전시나 상설전시를 할 수 있다. 특히 이제껏 공개가 안 되던 유물이나 신앙의 대상으로서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유물들을 성보 박물관에서 전시·연구할 수 있다. 어느 곳보다 전공자에겐 좋은 기회이며 관람객들 또한 다른 박물관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접근의 용이함을 통해 실물 자료·기록 자료·구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하여 불교 관련 아카이브(문서·자료의 집합)를 마련하고 불교 연구의 새로운 거점으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 간단히 언급한 사항 이외에도 사찰 박물관은 뛰어난 많은 스님들의 조력을 받을 수 있으며, 많은 신도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의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나 이러한 장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더 효율적인 운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각 사찰 박물관간의 연계도 활발히 이루어져 상호 부조적으로 활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찰 박물관이 기존 국립박물관 등에 비하면 초라한 형편이나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라고 생각해 보면 발전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할 수 있으며 사찰 박물관이 가진 특징들을 활용한다면 머지않아 명실상부한 박물관으로서 불교계만의 새로운 문화이자 우리 나라 박물관계의 큰 축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