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이 살며시 품에 안은 듯 한 해인사성보박물관은 해발 약 700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2002년 7월에 개관한 박물관은 어느덧 만 1년이 훌쩍 지나고 있다. 내가 해인사성보박물관과 첫 인연을 맺은 시기는 한참 개관준비로 바쁜 때 작년 6월말에 동국대학교 박물관팀에 합류할 무렵부터다. 그리고 개관 이후 해인사성보박물관과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인가’하며 조용히 경주로 내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예연구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다시 해인사성보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리고 난 후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 연구소에서 지내왔던 나에게 있어서 성보박물관이란 너무 생소한 느낌을 받는 곳이었다. 우선 스님들이 많은 절 아래에 있다는 것, 그리고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는 많이 동떨어진 곳이라는 것이 나에게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사회로 나간 첫발이며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또 몇 년을 여기에 있을지 모르지만 정열을 쏟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너무 오버(over)해서인지 몇 달 만에 몸무게는 약 10킬로그램이 빠져버렸다. 사실 지금은 예전에 입었던 바지에 주먹 하나가 왔다갔다 한다.
학예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여러 관람객들을 만나게 되는데, 성보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중에서 약 60퍼센트 정도는 박물관이라는 곳을 처음 오는 듯 하다. 어느 날에는 어떤 관람객들이 눈을 멀뚱멀뚱하면서 “여기가 뭐 하는 곳인가요?”라고 묻는 말에 난 말문이 막혀 조용히 밖으로 인도해 ‘해인사성보박물관海印寺聖寶博物館’이라는 편액을 가리켰다. 그 관람객들은 내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보고 난 후 다시 이렇게 말했다. “해인사는 알겠는데…… 그 다음 글자는 뭐야?” 그래서 난 여기는 해인사에 소장하고 있는 성보를 전시·관리하는 성보박물관이며 전시된 성보를 보기 위해서는 소정의 관람료가 필요하다고 설명을 하자 “들어올 때 돈을 냈는데, 또 돈을 내는 거야? 도둑놈 심보네!”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또 다른 날은 일단의 관람객들을 안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설명을 하자니 여러 관람객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이 많으면 질문도 많아진다고, 목조희랑조사상(보물 제999호) 앞에서 열심히 설명을 하고 지나칠 무렵 한 관람객이 물었다. “저거는 팔면 얼마나 해요?” 조금은 어이가 없는 질문에 물끄러미 그 관람객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3대가 편안하게 지낼 겁니다.”라고 하니 그 관람객은 “참! 좋은 거구나!”하며 다른 전시실로 유유히 건너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이라는 시간을 지내면서 성보박물관의 문제점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예산문제, 인력수급문제, 사중寺中의 인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크게 세 가지 중에서 예산문제만 원활히 풀린다면 나머지는 쉽게 풀릴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영산회상도, 희랑조사상 등 약 350여 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해인사성보박물관의 경우 자립도는 약 2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머지 적자분은 본절인 해인사에서 모두 떠안아야 되는 형편으로 어려운 살림의 해인사로는 많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인력수급이나 문화교육 등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문제가 이렇다 보니 다른 사찰에서는 문화재보수 등의 명목으로 받은 국비, 지방비에서 사중 운영금을 마련하기 바쁘고, 이로 인해서 문화재의 부실보수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여러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느 부분만큼은 지원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 교구 본사의 성보박물관을 건립하는데 지원을 한정할 것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허가를 준 곳 또한 국가이므로 박물관으로서의 자리를 다질 때까지만이라도 운영자금에 대해서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지원에 대한 이유는 각 사찰 및 성보박물관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는 문화재는 그 사찰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문화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찰이나 소유자의 책임원칙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아무런 지원 없이 방치하게 된다면 조그만 상처가 큰 병으로 악화되듯이 성보박물관의 조그만 문제들이 큰 위기로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 다음으로 문제는 박물관 전문인력의 부족과 사중의 인식문제이다. 더 많은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재원의 확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사중의 인식변화가 먼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박물관 운영에 있어서 가장 충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학예연구원으로 현재 한두 명의 학예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는 성보박물관으로서는 본사의 성보聖寶를 관리하기에도 벅찬 형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예보조원을 두려면 그만한 재원이 마련되어야 되지만 성보박물관을 소유하고 있는 사찰에서는 학예연구원에 드는 재원만으로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성보박물관이라는 것을 두지 않았던 사찰로서는 적자로 허덕이는 박물관은 뜨거운 감자로 인식되고 있다. 또 이와 더불어 성보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인식 부족도 문제이다. 성보박물관은 각 사찰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얼굴이며 교구본사 및 말사의 성보를 관리·보존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리고 소장 유물의 전시 및 다양한 기획전을 통해 불교를 이해시키며 교육하는 포교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성보박물관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무관심에 대한 반성과 소속 사찰의 스님들의 성보박물관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의 자세가 먼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