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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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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정암 2003년 09월 259호
정암 / 수덕사 근역성보관장

“스님, 대웅전은 왜 단청을 안 해요?”
“예, 단청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오래 돼서 다 바래진 것입니다.”
“그래도 단청을 해야지, 입장료 받아서 다 뭐해 먹고 그렇게 합니까?”하며 심한 불쾌감을 나타내며 시비를 건다.
‘이런… 스님이니까 참아야지, 참아야지’하며 우문우답愚問愚答으로 말한다.
“칠백 살 먹은 할머니 얼굴에 화장하면 화장 잘 받나요, 그냥 그대로 보는 것이 제일 아름다워요.”
수덕사 대웅전은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화려함으로 환희심을 내게 하는 한국 목조건축의 백미로 많은 사람들에게 안락을 주는 귀의처가 되어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칠백여년의 시간은 퇴색된 단청 속에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운데 살아나고, 대웅전의 치밀한 내부 구조는 가만히 앉아서 음미해 보는 가운데 편안함을 준다. 그곳에는 맞배지붕이니 주심포 양식이니 우미량이니 하는 분별도 필요 없고 그저 느끼는 가운데 대웅전의 맛과 멋을 알게 된다.

오늘도 박물관 입구에서는 실랑이가 그치지 않는다.
“또 돈이야!”
“여기도 돈 받아요. 뭔 놈의 절이 돈만 받기만 하느냐고요….”
“나 기잔데 그냥 들어갑시다.”
매표소임의 보살님은 매표하며 겪는 일이 하도 많아 습관이 된 탓인지 무덤덤하게 반응을 한다. 내심 신심으로 봉사하는 보살님한테 죄만스러운 감정을 가져 본다.
그것도 모자라 저녁에 열어 본 홈페이지 게시판은 여지없이 ‘사찰이 이래서 되는가’ 운운하며 여과 없는 독설이 게재되어 공연히 겸연쩍게 하지만 뒤끝에 남는 텁텁함은 자조 섞인 웃음으로도 해결이 되질 않는다.
TV프로그램의 영향일까? 박물관에서 유물을 관람하며 ‘저건 얼마나 할까’하며 서로 소곤대는 사람들, ‘이 유물 진짜냐’며 물어 보는 사람들,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데도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몰래 유물을 찍는 사람들 등 박물관에서 나오는 천태만상의 목소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물관에는 수백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시간 여행이 있고, 선조들의 과학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으며, 삶의 지혜가 있는 공간임에도 매일같이 입장료 문제로 언쟁을 하고, 볼썽사나운 모습이 반복되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여행지에 이르렀을 때 그 지역을 잘 이해하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다고 한다. 그곳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기에,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장場이기에 언제나 즐길 수 있고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말사의 노비구니스님께서 오래 된 나한상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택시를 타고 박물관을 찾아왔다. 암자에 두기에는 불안도 하거니와 많은 사람이 나한님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스님의 말씀에 신문지를 펼쳐 보니 갓 시집 온 새색시마냥 수줍은 미소를 함빡 머금은 나한님이 다소곳이 앉아서 나를 반긴다. “스님! 감사합니다.” 정례를 하고 박물관에 수장하고 난 후 진열장에 전시하니 나한님은 안심낙처安心樂處에 모셔져 고맙다는 듯이 또 그 수줍은 미소로 화답을 한다.
어느 말사에 성보실태조사를 나갔다. 고찰의 구석구석을 보며 소장되어 있는 성보문화재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촬영과 함께 치수를 재며 하루를 보내던 중 대웅전 계단을 내려오는데 우연찮게 발밑의 계단이 범상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흙을 쓸고 보니 그곳에는 조그만 연봉오리가 양각되어 나를 반긴다. “스님! 아니 이게 왜 여기 있어요.” “ 내가 아남. 옛날부터 거기 있었나, 능력 있으면 빼.” “공구 있시유.” 주지 스님은 창고에서 공구를 가져다준다. 두 시간 진땀을 뺀 끝에 계단에서 빠진 돌에는 4각이 연화안상문蓮花眼象紋으로 양각된 부재가 활짝 피어 또 나를 반긴다. 다른 돌로 계단을 보완하고 나니 정성이 갸륵해서인지 주지스님은 지게를 가져와 넌지시 주며 가져가라고 한다. 산 밑에까지 지게에 부재를 지고서 내려오는 길엔 무게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또 하나의 유물이 빛을 발한다. 며칠 후 여러 스님들이 모인 자리에 그 주지스님의 할喝 “정암이 눈에 아무것도 띄게 하지 마쇼. 대웅전 계단도 뽑아가네.” 스님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직책이 관장인 걸 어떻게 하냐고요.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제일 빛을 발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을 경우 가치는 사라져 버린다. 그 동안 많은 불교 문화재가 도난당하여 외국으로 밀반출되거나 인사동의 한구석을 장식하며 또 다른 주인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일이 허다하였다. 그러나 이제 각 사찰들에서 만들어지는 성보박물관으로 종전의 문제점들이 조금은 해소되었지만 그래도 앞길은 요원하다.
불과 백년 전의 성보를 보더라도 불화를 그리고, 불상을 만드는 금어나 불모가 스님들이었고, 스님들의 정성에 의해서 모셔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이 땅 전체가 몽고의 말발굽 아래에 있으면서도 무수한 사람들의 원력이 결집되어 나온 산물이기에 세계의 보물이 된 것이고,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은 당대의 일류장인들이 ‘닥나무를 심고 그 뿌리에 향수를 뿌려 자라게 하고, 불가에서 밥을 먹어야 하고, 향수로 목욕을 하고, 몸을 깨끗이 한 사람만 함께 한다’는 지극한 정성이 있었기에 1300년이 지난 지금도 향내가 나는 보배로 남아 있다.
비단 국보나 보물만이 문화재임은 결코 아니다. 깨어진 기왓장도 문화재일 것이고, 못 조각 하나도 문화재일 것이다. 문화재의 가치는 그 문화재가 지니는 예술성도 중요하겠지만 문화재를 보전하려고 하는 부단한 노력이 선행될 때 그 가치는 더해지는 것이다.
신라와 조선이 한 곳에서 만나지고, 서울과 평양이 한데 어우러지는 시공을 벗어난 박물관.
이런 박물관은 문화재에 대한 열린 의식들이 공유될 때 비로소 모든 이들이 즐겨 찾는 박물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