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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直指》에 대한 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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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박충일 2003년 09월 259호
2001년 9월 4일은, 평생을 인쇄인으로 살아온 내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1440~1450)보다 70년 앞선 우리의 《직지》가 세계기록 문화유산에 등재됨으로써,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발명설을 뒤집고, 우리 나라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국가임을 세계로부터 공인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화혁명이 인류 문화 발전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하다. 인류는 의사전달을 위해서 네 번에 걸친 정보혁명을 거쳤다. 그 첫 번째가 몸짓이나 소리에 약속된 의미를 부여하여 의사를 전달한 것이고, 두 번째가 각종 부호나 문자를 사용해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는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책을 간행한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컴퓨터의 발명이다. 역사가들은 이 가운데 가장 위대한 혁명으로 금속활자의 발명을 꼽고 있는데, 활자를 이용해서 책을 간행하여 보급함으로써 정보의 대량 전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금속활자본이 1377년 고려 때 백운 화상이 지은 《직지심체요절》, 일명 《직지》라는 것이 밝혀졌다는 것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을 제작했고, 목판인쇄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데 이어 이뤄진 것으로, 우리 나라가 목판인쇄는 물론 금속활자 인쇄를 창안한 문화민족이자 인쇄종주국임을 세계가 인정한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직지》의 원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이 책은 고려 말의 대선사였던 백운 화상께서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 책에서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요점만을 간추려낸 것으로, 현재 금속활자본과 목판본이 전해오고 있다. 백운화상은 《직지》 2권과 《백운화상어록》 2권을 남겼다. 그 가운데 《직지》는 과거 일곱 분의 부처님과 마하가섭, 보리달마, 중국의 다섯 조사를 비롯한 대선지식들의 가르침 가운데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가르침을 초록하여 편찬한 것이다. 수행에 필수적인 중요한 이 책의 그 하권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금속활자본으로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고려불교 문화유산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금속활자로 인쇄한 주자본은 1377년 흥덕사에서 펴냈는데, 상권은 전해오지 않고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듬해에 여주 취암사에서 인쇄한 목판본은 현재 상하 권 모두가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에 각각 완전본이 전해오고 있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하권은 구한말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로 부임했던 꼴렝 드 프랭시가 수집해간 장서 중에 포함된 것으로, 도서수집가인 앙리 베베르를 거쳐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1972년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책의 해’ 기념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주최한 책의 역사 종합전시회에 공개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 이 책의 간기에 적힌 흥덕사지는 한동안 어딘지 모르고 있다가 1985년 청주시가 택지를 조성하던 중 금당지의 유구와 함께 ‘흥덕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유물을 수습함으로써 정부는 1992년 3월 17일 이곳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세워 인쇄문화의 발상지로 기념하게 되었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우리의 선조들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구텐베르크를 금속활자 발명가로 잘못 알고 있고, 《직지》가 다른 나라에 소장되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11년 동안 대한 인쇄문화협회장을 재임하면서 《직지》를 되찾아오고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1993년 영국 버밍햄에서 개최된 인쇄기자재 전시회 참가 도중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방한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의 문화재 반환 협정에서 《직지》가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현지에서 결의문을 작성하여 반환을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갖기도 했다.
그후에도 1997년에는 《직지》 유네스코 등재와 직지를 반환해줄 것을 요청하는 건의문을 유네스코에 제출하고, 1998년 대한인쇄문화협회 정기총회 때도 《직지》를 되찾아오기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궐기대회를 가졌다.
10년 이상 직지반환을 위한 나와 우리 인쇄인들의 노력은 그치지 않아 2001년 9월 4일,《직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성과는 올렸으나, 여전히 《직지》를 반환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을 우리의 《직지》가 아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본으로 잘 못 알려져 있는 것이 시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어서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나는 20대에 인쇄업계에 투신하여 칠십평생을 인쇄인으로 살아왔다. 종립대학인 동국대에 다니면서 손경산 스님, 석주 스님, 그리고 광덕 스님 등의 선지식을 뵙고 가르침을 받으면서 불자로서 살아왔다. 세계인쇄종주국인 우리 인쇄문화가 불교문화와 뗄 수 없는 인연임을 생각해볼 때, 내가 인쇄인이 되어 불자로 살아온 것은 운명이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보면, 부처님의 보살핌으로 보람된 일이 수없이 많았다.
《석보상절》 완간일인 9월 14일을 인쇄문화의 날로 의결 확정하던 날, 《월인천강지곡》을 대한민국의 유엔가입 기념으로 유엔에 기증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때와 세계 제일의 두루파 인쇄기자재 전시회 때 오천년 문화민족으로서 세계인쇄종주국 대표로 인정받았을 때의 감회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직지》를 사랑하는 내게 이제 남은 바람이 있다면, 직지반환과 직지찾기는 물론, ‘직지의 날’을 제정하는 일이다. 《직지》의 발행일자를 불교학계에서 조사 연구하여 찾아내고 정부와 협의를 거쳐 이 날을 ‘직지의 날’, 또는 ‘직지의 탄생일’로 정부가 제정, 공포하여 불자는 물론 온 국민의 성대한 축제의 날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람은 청주고인쇄박물관 옆에 있는 흥덕사의 대웅전을 크게 신축하고, 그 곁에 스님들이 주석할 수 있는 요사채를 지어서 《직지》의 본 주인인 스님들이 머물며 사찰을 운영하고 불교를 전법했으면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 흥덕사에 스님이 주석하고 있지 않은 실정을 교계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 본다. 오늘도 나는 직지연구소를 설립하여 직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흥덕사에 스님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고 범종소리와 목탁소리가 울려퍼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직지》에 대한 나의 사랑은 죽는 날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