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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것은 마르게 두고 무성한 것은 무성하게 둔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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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2003년 09월 259호
조계종정·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일지영혜일지고一枝榮兮一枝枯하고
중심녹엽갱부소中心綠葉更扶疎로다
황앵임해천반어黃任解千般語하야
면득방인탄자무免得傍人彈子無로다
한 가지는 무성하고 한 가지는 말랐는데
가운데 푸른 잎은 더더욱 우거졌네.
꾀꼬리가 천 가지를 말할 줄 알아서
보는 사람이 배를 끄는 줄(노끈)을 없애지 않게 되었네.

약산유엄藥山惟儼 선사께서
천황도오天皇道悟 스님과 운암담성雲巖曇晟 스님과 함께 만행을 떠났습니다.
같이 산 구경을 다녔는데 무성한 나무와 마른 나무를 동시에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약산 선사는 함께 다니던 두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마른 것이 옳은가? 무성한 것이 옳은가?”
이에 운암 스님이 말했습니다.
“무성해야 옳습니다.”
“그렇다면 일체처소에서 광명이 찬란하겠구나.”
그러자 도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마른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일체처소에서 모두가 말라지게 해야겠구나.”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고사미高沙彌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마른 것은 제대로 마르게 두고 무성한 것은 제대로 무성하게 두어야 합니다.”
이에 선사께서 운암 스님과 도오 스님을 돌아보면서 말했습니다.
“모두 옳지 않다.”

해제를 맞이하여 세 명의 운수납자가 함께 천하를 주유周遊하게 되었습니다.
운암담성 스님은 약산유엄 스님의 법을 이었으니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됩니다.
천황도오 스님은 석두희천石頭希遷 스님의 법을 이었습니다.
약산유엄 스님 역시 석두희천의 법을 이었으므로 도오 스님과 약산 스님은 사형사제간이 됩니다.
고사미는 약산유엄 스님의 제자입니다.
따라서 이 공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석두 문하의 대선장大禪匠들입니다.
그래서 함께 만행을 다니면서 석두 가풍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산 선사께서 운암 스님과 단둘이 산 구경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에 약산 선사의 허리에서 장두칼 소리가 나니 운암 스님이 물었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이에 약산 선사는 칼을 빼서 갑자기 운암 스님에게 달려들어 찌르는 흉내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뒷날 어떤 납자가 이 법문을 듣고서 어느 노장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달려들어 찌르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그 노장이 대답하였습니다.
“감히 거기에 머리를 내밀 수 없느니라.”

설봉의존雪峰義存 선사의 제자들인 장경혜릉長慶慧稜 스님과 보복종전保福從展 스님
그리고 경청도부鏡淸道 스님도 이 못지 않습니다.
장경 스님이 보복 스님과 산 구경을 갔습니다.
보복 스님이 산봉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자, 저기가 승락국勝樂國 묘봉정妙峰頂일세.”
그러자 장경 스님은 말했습니다.
“그건 그렇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멀었네.”
나중에 보복 스님이 경청 스님에게 똑같이 말했습니다.
“자, 저기가 승락국勝樂國 묘봉정妙峰頂일세.”
그러자 경청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장경이 아니었다면 공연히 온 세상에 아무것도 모르는
엉터리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돼 버렸을걸세.”

이 세 납자는 모두가 설봉 스님의 제자들로 똑같이 도를 얻고 똑같이 깨쳤으며,
똑같이 보고 똑같이 들었으며, 똑같이 활용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가지에서 나온 사람들이었기에 한마디 했다 하면 곧바로 귀결처를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설봉 스님의 회상에서 평상시 문답을 했던 사람은 이 세 사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고인古人들은 움직일 때나 머무를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이 도道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한마디 했다 하면 곧바로 귀결처를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이런 공부인에게 해제와 결제가 무슨 구별이 있을 것이며,
큰방에 앉아 있는 것과 산천을 다니는 것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가는 곳마다 공부처요, 보이는 경계마다 거량처인 것입니다.
요즈음 납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면 턱뼈가 떨어져 아무 말도 못했을 터인데
그래도 장경 스님에게 물은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고인들이 이렇게 한 것은 그에게 안목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기 위한 것입니다.
한 철 제대로 정진을 했다면 가는 산천마다 이런 선지식을 만나게 될 것이고
한두 마디 정도 아는 소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눈 밝은 사람을 눈앞에서 바로 만나더라도
거량은 고사하고 그 사람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약산영고藥山榮枯’ 공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무성한 나무와 마른나무를 보고서 ‘어떤 것이 옳으냐’고 물으니
한 납자는 ‘무성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인은 ‘속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성한 나무와 마른나무를 보고서 ‘어떤 것이 옳으냐’고 물으니
한 납자는 ‘말라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인은 ‘속마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른 것은 제대로 마르게 두고 무성한 것은 제대로 무성하게 두어야 한다’고 한 사미가 대답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인은 ‘아이를 예뻐하다가 추해지는 줄 모르는 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마지막으로 ‘모두가 틀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산승이 해제대중들에게 묻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고인의 모든 답변에 과연 옳고 그른 것이 있습니까?
이렇게 대답한 고인의 모든 답변에 과연 얻고 잃는 것이 있습니까?
한 철 동안 정진하여 안목을 갖춘 납자가 있다면 한번 제대로 된 답변을 해 보십시오.
만약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없다면 해제철도 결제 삼아 더욱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낙상황엽작금전落霜黃葉作金錢하니
치해아제견희환癡孩兒啼見喜歡이로다
착득헌양구도호捉得獻孃俱道好나
부지수시신방관不知誰是傍觀고
서리맞은 단풍잎을 돈이라 하니
어린아기 울음 그치고 기뻐하였네.
가져다가 엄마에게 보이니 모두가 좋다고 말하나
곁의 사람 비웃음 받을 이는 누구이던가?

불기 2547(2003)년 하안거 해제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