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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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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소 - 해인 2003년 09월 259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세상의 시간이 뒤로 물러섬이 있을까마는 새벽은 새로운 날로 나아감이 있으니 이것이 새벽의 미덕이다. 그러나 새벽에는 한밤중보다 더 짙은 어둠과 추위가 있는지라 여기에 이르면 중생은 늘 아침을 의심한다. 이렇듯 새벽의 징검다리는 물밑에 잠겨 있으나, 그 물밑에 잠긴 하루를 밝은 눈으로 알아보는 것이 여래의 눈빛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수미산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이 도솔천兜率天이다. 이미 중생의 걸음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으면서도 불보살은 한시도 중생을 잊는 때가 없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한 날로 치더라도 오고감이 있는 시간은 아닐 것이며, 그 하루를 위한 때를 준비할 만한 곳이리라. 석가모니가 사바세계로 내려오기 전 머물던 곳이 도솔천이며, 미륵 보살이 부처가 될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다.
선운사 도솔암 큰 바위 위에는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 부처님을 모신 곳이 도솔암이라 이 부처님이 용화세상을 기다리는 미륵 부처님인지, 혹 항마촉지降魔觸地의 수인手印에 좌정한 부처님이니 석가 부처님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엄격해 보이는 눈매에 중생을 위한 마음을 가득 담고 있는 것은 중생의 어두운 눈으로도 비춰 알 수 있다.
이 부처님이 선운산에 모셔진 것은 고려가 막 시작되던 때이다. 모두가 마음은 새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 속에 있었을지라도 현실은 새벽만큼이나 춥고 어두웠다. 산마다 사찰마다 그 희망만큼이나 거대한 부처님들이 속속 모셔졌고, 은진미륵같이 왕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미륵 부처님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대신하였다. 그러니 이곳에 모셔진 여래가 같은 희망과 발원이 모인 미륵불이 아니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고려는 그 시작을 불심佛心에 기대어 백성들의 어지러움을 여래의 마음으로 다독이고자 하였다. 이는 고려를 시작한 태조의 발원이었고 백성들의 손길이 이를 만들어 내었다. 그저 세상의 어려움이 중생들의 불심을 엮어 내었다고 하면 그 또한 허망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오래 된 인연과 근기 없이 어찌 그것이 또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그러니 눈에 보이는 부처님을 새겨 모신 그 손길을 두고 탓할 일은 아니요, 그 부처님의 모습에 천년의 세월을 두고 희망을 되새기는 중생의 마음을 따뜻하게 바라볼 일이다.
여래의 머리 위에는 세월의 풍상을 조금이라도 덜 겪기를 바라면서 만든 누각이 있었으나 그 나무기둥은 바람과 비에 더 쉽게 무너졌으니, 중생의 어리석음도 이와 같아 누각으로 감추고 덮을 것이 아니라 바위에 새겨진 여래와 같은 마음 속의 불성만이 비바람을 견딜 수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