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업장이 몹시도 두터운 모양이다. 요즘 들어 몸뚱아리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그날은 주검을 처음 대한 것도 아니건만 내가 진한 죽음의 아픔을 맛보았던 날이었으리라 .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람이 갖는 고통의 하나라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는 고통 그 자체였었지.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그때 문득 이 사구게가 생각났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사라지게 마련이라지만 그리고 그 의미를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그 아픔은 한꺼번에 그리고 감당 못 할 정도로 다가왔다. 그후론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의미한 동작의 반복일 뿐이었다.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나의 무능력은 나날이 폐인만을 양산할 뿐이었고 그걸 바라보시는 어머님의 모습은 세월의 골만큼이나 깊은 한숨 그것이었다.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은 주름이 패였을는지…….
삶의 자취가 가고 있었다. 아니 버려지는 것이었다. 불현듯 찾아 들었다가는 숨이 들어왔다 쑥 꺼져 나가듯 그렇게 가고 있었다. 거기가 시작이었으리라.
아주 오랜 일이다. 아버지가 가족을 세상에 덜렁 남기고 홀로 저 세상으로 가셨을 때도 난 죽음이란 걸 잘 알지 못했었다.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도 다만 죽음의 공포보다는 알 수 없는 서러움만이 복 받쳐 오를 뿐, 그 뿐이었다. 그땐 참 무지하게 서럽게 울었었는데. 그 당시 내게는 스님으로 생을 마치신 외할머니 한 분이 계셨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지금 이 중은 외할머니가 만드신 거나 진배없다
외할머니는 내게 늘 입버릇처럼 “너는 속세에 살 팔자가 아니구나” 라고 말씀하셨었다.
외할머니 스님의 말씀 한 마디는 18살의 가슴에 항상 숨어 살아 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정말 난 외할머니 말씀대로 스님이 되어야 편하게 살게 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 반 갈등 반으로 숱한 세월을 보내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산속의 삶은 나의 동경이었고 그래서였는지 법당에 가 앉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그 언젠가처럼 다시 한 번 떠나볼까, 정말 사람이 왜 사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건지도 모르니 그거나 한 번 찾아볼까.
그러다가는 뒤돌아서서 머리 깎아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욕심없이 살 뒤엉켜 살면서 세상 사는 것도 의미롭지 않을까. 별별 생각, 별의별 고민을 다 했었더랬다.
출가하기로 작정하고 가족에게 알리던 날, 방 안은 그야말로 적막 그대로였다. 나 외에 어느 누구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건만 마치 블랙홀을 지나온 것처럼 무지하게 힘든 시간이었다. 순간 “출가하는 것도 인연 따라 하는 것이니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 어머니의 한 마디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곤 난 그렇게 버리고 결국 청주행 기차를 타고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빨리 공부를 마칠 수 있는 것입니까?” 이제 갓 머리 깎은 행자의 질문에 은사스님은 몹시 언짢으셨을 게다. 왠지 모르게 그때는 그랬다. “모든 것을 놓으시게. 버리시게. 놓고 또 놓고 버리고 또 버려서 놓을 것도 버릴 것도 없어지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네.” 은사스님의 대답 겸 법문의 골자는 이러했다. 또 해인사 강원으로 공부하러 가라고 권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세상은 용도 있도 뱀도 있고 여우도 있고 사자도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울려 뒹구는 곳일세. 무렴수좌는 너무 분별이 심해서 탈이야. 옳은 건 옳은 대로 그른 것은 그른 대로 다 그대로인 것이니 강원에 가거들랑도 이 말 명심해서 사시게. 무렴수좌는 강원에 다만 글 공부하러 가서는 안 돼요. 중물 들인다는 것 그게 보기보다는 쉽지 않거든.”(은사스님께선 사미계를 받고 난 후 나를 꼬박 ‘무렴 수좌’라고 불러주셨고 난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스님의 마음인지 요즘 조금씩 깨닫고 있다.)
중물을 들인다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당시 나는 중물을 들인다는 것을 사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요즈음 조금씩 은사스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중물을 들인다는 것은 물론 속세로부터 가져온 습習을 버리고 새 습의를 익힌다는 면도 있겠지만 어떻게 하면 대중과 지혜롭게 살아가는지를 온 몸으로 체득한다는 것일 게다. 중물은 자비란 말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란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아무튼 그 어렵다는 해인사 강원 치문반을 나고 이제 사집반에 올라와 벌써 하안거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데, 아직도 난 아직도 뭘 놓아야 하는지 뭘 버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름대로 버림이란 탐, 진, 치 삼독심을 버려야 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저 난 조금 예전보다는 참을성이 많아졌고, 예전보다는 조금 더 남의 허물보다는 내 허물을 찾으려 하고 있을 뿐 정녕 아무것도 놓거나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미혹한 중생의 욕심은 한이 없는가 보다.
이제 용맹정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내 화두는 ‘버리고 놓고 살기’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