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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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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3년 08월 258호
요즈음 방송국을 오고 가는 길에 시야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시원하게 하는 풍경이 있다. 파란 풀들과 어울려 마치 안개꽃처럼 하얗게 피어 있는 개망초 꽃, 수줍은 듯 잎사귀에 꽃잎을 살짝 감추고 피어 있는 연분홍색 메꽃, 해가 뜨면 그 꽃잎을 닫는 달맞이꽃, 넉넉하지만 그다지 크지 않고 화사하지만 빛깔이 요란하지 않은 부용화, 노란빛깔이라 더욱 눈에 띄는 나리꽃이 어우러진 풍경이다.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을 짧은 시간이지만 늘 새롭게 만나면 어느 건축가의 말이 생각난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 있으면 그 고마움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집을 설계할 때 가능하면 창문을 작게 설계합니다”라고 했던 말. 이 건축가의 말처럼 널려 있는 자연의 풍경도 아껴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삶을 풍요롭게 사는 사람일 것이다.
가끔 사람들에게 “지금 삶에 행복지수는 어느 정도 됩니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대답을 머뭇거린다. 그러나 “요즘 살아가기 어렵고 힘드시죠?” 하고 물으면 즉각 “네, 많이 힘들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네,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그런대로 살 만해요”라는 대답은 참 듣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대답은 어렵고 힘든 정치적 경제적인 현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품고 사는 행복지수가 자기 자신의 분수에 맞는 현실적인 것에 기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는 행복과 만족이란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특정한 장소에서 특별한 사람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이 그것이기도 하지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이 또 그것이다.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고 주변을 바라보자. 사람과 사물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아는 자기 눈길에 있고,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일구어가는 손끝에 있고, 언제나 함께 있어서 공기처럼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가족이나 만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시내를 나갈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탔다. 버스를 오르는 순간 환하게 웃고 있는 버스 기사님으로부터 “어서 오십시오”라는 반가운 인사를 받았다.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기도 힘든 그런 날씨에 예기치 않은 반가운 인사를 받고 보니 이유 없이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리에 앉아 버스가 광화문을 향하는 동안 계속 그 버스 기사를 지켜보았다. 미소 띤 밝은 표정과 공손한 언어가 버스에 오르는 모든 승객에게 한결 같았다.
며칠 전에 영재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서 금호아트홀을 찾았다. 물론 연주도 어린 연주자의 기량을 생각하면 아쉽지 않았지만 먼저 기분을 유쾌하게 했던 것은 건물 안내를 하고 있던 경비 아저씨로부터였다. 작년에 처음 그 아트홀을 방문했을 때도 느꼈던 일이지만 성함도 모르는 그 경비 아저씨의 자세였다.
콘서트홀을 찾기가 좀 어려워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건물 현관 로비로 내려와 경비 아저씨께 콘서트홀의 위치를 물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이었는데 말씀도 친절하시고 몸소 계단까지 안내를 해주시며 즐겁게 관람하고 가시라며 고개를 공손하게 숙이시고 인사까지 잊지 않으셨다.
그 어르신의 모습은 회사측의 방침에 따라 훈련되어 나오는 마지못해 하는 인사가 아니라 진정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 인사를 꼭 받아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수단으로 선택한 직업이지만 그 일이 자기를 생존하게 하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겁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을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말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고 당연하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또 작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결코 작지 않은 일이 그런 일이다. 그리고 작은 일부터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큰일에 실수가 없는 법이다.
어느 건물을 방문했을 때 참 마음이 많이 상했던 적도 있었다. 그 경비 아저씨와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젊은데도 가만히 앉아서 고갯짓으로 사람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런 말로 외계인 취급을 했다.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하는 양 방문객들을 호령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건물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불편함을 살피며 그 빌딩의 얼굴이 되어야 하는 서비스 정신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비단 그런 일이 대도시 빌딩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산중 사찰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사암 종무소와 법당, 후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방송국에서 내가 진행하는 프로로 전해오는 청취자 사연을 통해서나 불특정 다수인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보면 사찰을 참배하고 와서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 마음 따뜻한 미담도 있지만 대부분은 항의 전화나 건의 사항이 많다. 불자들이 사찰 입구 입장료 징수하는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는 일부터 종무소에서 대수롭지 않은 대화 내용으로 친구와 수다를 떠는 직원 앞에서 귀한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일, 복장이 불량하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젊은 불자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며, 조용한 질서가 있어야 할 법당에서 시장에서 싸구려 물건을 팔듯이 부처님을 파는 보살들의 소리에 귀를 강요당해야 하는 일이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기도 도량 후원에서 허기진 배를 구걸하듯이 채워야 한다는 일이며, 후원에 작은 강아지만한 쥐가 아래위로 활보하고 다니더라는 청결불감증에 대한 일이며, 참 웃지 못할 소식들을 많이 전해온다. 마치 방송국이 해결사라도 되듯이 말이다.
이렇듯 우리 사찰 내에서도 그 일의 목적에 전도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어 불쾌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이해되지 못할 일도 없겠지만 사찰이라는 곳은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할 때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어렵고 괴로움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이 조용한 사찰이고 고요히 앉아 자기의 현실을 살피고 삶의 이정표를 찾는 곳이 법당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섬세하게 마음을 써야 하고 도량 구석구석 가람을 정돈하고 꾸미는 일도 중요하지만 적재적소에 있는 소임자들의 역할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앞으로는 수행과 행정이 분리되어 의식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들은 재가 종무원들이 담당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예전보다 많이 친절해진 종무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아직은 미비하고 보충되고 교육되어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다. 물론 우리 종무원들이 프로의식을 가지고 일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이미 자기가 선택한 일에 있어서는 그 일에 맞는 최선의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찰을 찾는 모든 사람과 매사에 하심하고 인내하며 친절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하며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불자가 되는 것이 기본이지 않을까. 그리해서 수행자는 아니지만 부처님 도량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어 그 일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계절은 여름의 한중간에 있고 한 사람의 미소와 공손한 말 한 마디가 시원한 바람이 되어 주변을 향기롭게 한다. 얼굴에는 미소가 있고 마음에는 삶의 풍요가 깃든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자기 삶의 주변에 널려 있는 재료로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