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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주필 법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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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연정 2003년 08월 258호
법인 스님 스님의 자리는 주필이라는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게 무척 비좁고 구석져 보였다. 대체로 그 정도 위치라면 따로이 방 하나는 마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일 넓고 긴 책상에 폼나는 의자 하나는 제공되기 마련인데, 옆에 비집고 의자 하나 놓을 공간조차 없음에 사실은 당황스러웠다. 편집실이 워낙 비좁아서… 하는 일도 없는 사람이 자리만 넓게 차지할 수 있느냐고 미리 대답해주신다.

대흥사 수련원장에서 불교신문 주필로
주 2회 발행하면서부터 거의 일간신문처럼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 무료하게 자리 지키고 있을 성격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아니나 다를까 기자들이 한결같이 엄지손가락을 쳐든다. 그저 이름만 걸어놓는 주필이 아니란다. 기획에서 취재, 편집, 광고까지 뒤에서 꼼꼼하게 일을 챙기고 기자들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으니 인기 최고일 수밖에. 본인도 기자 노릇을 해본 경험이 있기에 기자들의 생리와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주 2회 발행으로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사기는 충천해 있는 듯이 보였다. 빠듯한 일정으로 생기는 긴장감을 오히려 활기의 한 요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처음에는 좀 의아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법인 스님은 교계언론보다는 지난 6년간 해남 대흥사 수련원의 수련원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흥사 주말수련프로그램 ‘새벽숲길’은 모범적인 산사 주말프로그램으로 교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지난해부터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한문학당을 개설해 어린이수련회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흔치 않게 광주 향림사라는 도심 포교당에서 출가한 법인 스님은 고 2 때 고등학교 지도법사 노릇을 하는 등 일찍부터 포교를 해오면서 대중을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이끌어가는 탁월한 포교감각을 갖고 있다.

거침없고 진솔하게 수행풍토를 풍자했던 승가대신문의 기획광고
그러나 <승가대신문> 초기 멤버로서 당시의 기획력과 필력을 기억하는 이들은 포교 분야만이 아니라 언론 감각 역시 남다른 면이 있음을 알고 있다.
10여 년 전 박재동 씨의 만화와 함께 3년간 <승가대신문>에 연재된 ‘청정한 수행풍토 회복을 위한 경책마당’은 승가의 어긋난 수행풍토를 거침없고 진솔하게 드러냄으로써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승가의 일이기에 교계 언론이 함부로 다룰 수 없던 부분이라 화제가 되었다. 승속을 막론하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만화도 좋았고 글도 일품이었지’하며 그 일을 기억해 낼 만큼, 그러나 예전 신문을 하나하나 들쳐보다 보니 지금도 옛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무소유정신, 무사안일, 성급한 포교당 개설 붐, 불립문자의 진정한 의미, 참다운 지계 등 그 영역을 가리지 않았고 유연하고 거침없는 글솜씨가 묵은 체증을 쓸어내리듯 시원하였다.

문학 한답시고 허송세월한 20대 초중반-최소한 10년은 공부해야
20대 초반에 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스님이기에 글솜씨를 거론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20대 중반까지는 문학도였다. 출가 초기에는 한용운 스님의 시에 반해 한용운의 저서를 온통 탐독하는가 하면, 한때는 이른바 ‘승려 시인’이라는 이름자를 가진 분들이 앞서가는 스님상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에 와서 스님은 그 시절을 허송세월했다고 하지만. 그래서 혹 후배스님들이 문학이나 예술을 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전철을 밟는 것 같아 기를 쓰고 말린다. 화를 내고 욕까지 하면서. 출가 후 최소한 10년간은 경전 공부하고 선방에 가서 공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행자의 기본은 부처님의 사상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공부하고 체득한 바탕에서 문화적 활동이 가능한 것이지, 처음부터 문학을 하려 한다든지, 현대화와 대중화의 명분으로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대중 앞으로 끌어내려 포교토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20대 후반 들어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부처님 가르침이 전달 목적이 아닌 바로 내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수행자로서 내 자신이 어줍잖아 보이더라구요, 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공부를 하자는 생각으로 뒤늦게 중앙승가대학을 들어갔다. 이후로 스님은 시를 쓰지 않았다. 마음에 울림이 오면 혼자 끄적이기는 하지만. 법인 스님이 중앙승가대학에 입학한 시기는 90년이었으니, 종단이 어지러울 때였다. 승가 일각에서는 젊은 스님들을 중심으로 사회참여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었는데, 중앙승가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장서 민주화를 외치며 사회운동에 뛰어든 스님들도 있었다.
법인 스님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방향은 달랐다. 스님의 관심은 사회참여가 아니라 승가상 정립에 있었다. 스님다운 학풍과 수행가풍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참여를 외치는 스님들에게 오히려 아쉬운 점을 많이 가졌다.
센세이션을 불러온 ‘경책마당’시리즈는 승가를 향한 승가의 참을 수 없는 자성의 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비판의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스님은 거부반응을 보인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너무 경직되고 서로를 이분화해 불교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드러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솔직하게 드러나야 바르게 볼 수 있다. 절집안도 나도, 부정적인 것도, 참된 것도 팔정도의 가르침대로 바르게 보자(正見), 이게 바로 불교적으로 자기성찰이고 참회며, 자자와 포살이 곧 참여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고쳐진다면 정진이 되는 것일 테고.
스님은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있는데, 흔히 쓰는 말 속에는 은연중에 너와 나를 가르고 상대를 대립과 투쟁의 대상으로 보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화엄적 세계관에서 보면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것인데 자기도 모르게 이분법적으로 가르고 있음이다.
문학과의 인연을 끊고 들어온 대학에서 다시 기자로서 펜을 잡게 된 셈인데, 덕분에 스님의 안목은 넓어졌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회 사람들이 수행자나 불교종단을 바라보는 시각과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었고, 수행자로서의 처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새로운 인연의 시작-선우도량 멤버들과의 만남
그리고 스님에게 있어서 아주 획기적인 인연을 만났는데 ‘선우도량’을 취재하러 간 것이 그 계기였다.
선우도량 멤버스님들이 토론중이었는데, 그동안 보아왔던 도심에서 포교하는 스님들이나, 지나치게 문자를 부정하는 선방수좌, 어느 학자들보다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진 스님들이라고 생각했다. 시대를 진단하는 시각이나 승가상 확립을 위한 노력들도 진지하게 와닿았다. 이후 스님은 실상사 화엄학림에 들어가 《화엄경》을 공부하였고, 강사를 맡기도 했다. 세계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화엄경》의 핵심인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의 조화로운 삶이 스님 사고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게 된 것이다.
개혁종단 때는 선우도량의 일원으로 종단의 교육개혁에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한 일이 승가의 교육체계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출가를 하면 행자교육원을 거쳐 강원교육을 마쳐야 비구, 비구니계를 받을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진 그때였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제도와 법과 사상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점을.

활기 넘치는 불교신문-기자들부터 공부하고 신행하라
지금 스님은 <불교신문>에 있다. <불교신문>에 처음 와서 스님이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기자들이 스스로 정한 보도원칙이었다. ‘집안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안 있는 보도를 한다. 신행과 교리 문화를 중점으로 한다.’ 스님은 여기에 적극 동의하였고 <불교신문>의 색깔이 보다 분명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항상 1면을 장식하던 종단 기사는 이제 뒷전으로 밀리거나 아예 없을 때도 있으며, 대상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 수준으로 낮춰 누가 봐도 어렵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스님은 그저 기자들이 잘 하기에 기존에 하던 대로 따라만 줄 뿐이라고 말하지만, 스님의 역할은 막중하다. 스님이 주필이 됨으로써 가장 큰 변화는 일단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기사는 감명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스님이 늘 강조하는 부분이다. 더불어 동반돼야 하는 것이 행行이기에 수련대회 등에는 취재 차원을 넘어 동참을 권한다. 명名과 실實이 상부해야 한다는 것이 법인 스님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기사에 있어서 단순보도보다 기획기사 부분이 늘어났다. 대안 없는 보도는 아무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 토론이 많아졌다. 교리해석에서부터 기사 방향에 이르기까지 토론하며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질적으로 향상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스님을 재주꾼이라고 한다. 닿기만 하면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마이다스의 손’처럼 무엇을 맡겨놔도 빛을 발하게 하는 재주가 스님에게는 있다. 그러나 스님 자신은 그 말을 별로 달가워 않는다. 이름 하나 짓기 위해 밤새 고민하고 프로그램 하나 짜려면 몇날 며칠을 끙끙거려 얻은 노력의 산물을 재주로 치부되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스님은 노력파다.
요즘 새롭게 신문을 시작하면서 스님은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단다. 사람을 만나면 필자, 취재원, 독자, 광고주 등 4종류로 분류가 이루어지고, ‘한 장의 불교신문 한 사람의 포교사’가 항상 귀에 맴도는 것을 보면 증상은 심각하다.
법인 스님이 이번에는 신문을 통해 어떤 꽃을 피울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취재·정리/이연정, 사진/신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