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이 다 그렇듯이 새벽 1시쯤 자고 아침 7시쯤 일어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 그러나 해인에서의 하루는 새벽 3시부터 시작 되었다. 한 방에 50명이 넘는 법우님들과 달랑 모포 한 장으로 그것도 한참 초저녁인 시간에 잠을 자라니 잠이 들면 이상한 것 아닌가?! 새벽 2시! 차라리 먼저 씻자.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밖으로 나온 나는 헉! 그렇게 많은 별들이 해인의 밤 하늘에 있다니. 살아서 꼼지락거리는 해인의 별들. 참으로 모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한참을 온 몸으로 별빛에 취해, 스님들의 그 영롱한 눈빛들이 이 이른 새벽 저 별빛 때문이었구나. 익숙지 않은 산사의 새벽은 적당한 어둠과 아직 쏴한 찬기운이 잘 어우러져 팽팽한 긴장감을 주었다. 차수하고 보경당으로 향하는데 둥 둥 둥… 그 소리에 끌려간 나는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합장하고 주루룩 눈물까지 흘리며 한참 단잠을 자고 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연미복이 아닌 회색 법복을 입고, 한 손에 지휘봉이 아닌 양손에 북채를 들고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하는 오케스트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는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이렇게 나를 감동시키지는 못하리라. ‘하루에 세 번, 나는 돈도 안 내고 라이브 연주를 즐기고 왔다.’ 새벽예불!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힘차고, 빠르고, 얄미울 정도로 정확한 목소리, 몸동작… 정신없이 스님들을 따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그랬구나. 그랬어.
공기 좋고 물 좋은 깊은 심심 산골에서 한가로이 편하게만 살고 계시는 줄 알았었는데, 그래서 확 놓아 버리고 싶을 때면 “절에나 들어가 버릴까” 하고 객기 어린 소리를 했었는데 망발로 죄를 지었었구나. - 합장 - 108배, 좌선! 나는 3월부터 오늘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었다.
작년에 다녀온 후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면서 언니는 운동을 좀 해서 살 좀 빼고 가라고 했다. 너무 바쁘고 힘든 직장생활에 늘 마음에 있을 뿐 실행할 수 없었던 운동을 하루 두 시간씩 꾸준히 했다. - 주위에서 모두 놀람 - 그랬음에도 본래 허리가 안 좋은 사람이라 파스를 여기저기 붙이고 참여해야 했다. 멋모르고 주위의 법우님들을 따라 하다 보니 처음 108배는 성공했다. -아! 감격 - 발우공양! 아침을 안 먹은 지 벌써 이십년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난 많이 먹었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우리를 위해 후원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천수를 준비하고 그랬을 행자님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감사히 맛있게, 옆의 혜원 스님보다 더 많이 먹었다.
어디서든 복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 나는 정말 복도 많지, 혜원 스님이 옆에 앉아 발우공양을 하셨고 혜원 스님 단무지 때문에 평소 웃음이 많은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또 한번의 혜원 스님 단무지! 좀 웃긴 했지만 잘 참았다. - 스님께서는 왜 웃는지 모르시겠지, 그럴거야 - 좌선! 졸지는 않았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고 무릎이 정말 아팠다. 화두를 들기는커녕 그저 회사 일은 잘들 하고 있는지 엄마랑 막내는 잘 있는지… 집에 가면 무엇을 먼저 먹을까 등 등… - 피자, 스파게티, 자장면, 김치찌개… - 누군가 난타 당하는 죽비소리에 화들짝. 마지막 좌선 시간엔 저 소리의 실체를 맞아 봐야 알겠다 싶어 자처해서 어깨를 내밀었다. 정말 시원했다. - 아버지가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어린 아들에게 아, 시원하다 - 세 번 더 맞았다. 한계령에서 만났던 운무가 해인의 저녁 안으로 가득 들어와 하얀 눈으로 내리는 듯 했다. 갑작스럽게 많은 일들을 해낸 지난 겨울을 떠올리며 이번 겨울도 그렇게 분주하고 행복하기를… 알듯 모르는 게 더 많은 스님들의 강의시간. - 병속의 새는 어떻게 꺼내지? -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절집에서 그렇게 힘들지만 깊은 환희심으로 하루 또 하루, 또 하루가 가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 1,080배! 허리가 성치 않은 나는 꼭 1,080배를 해내야겠다는 생각보다 정성을 다해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하는 데 뜻을 두기로 했다. 한 가지 소원을 갖고 절을 하기 시작 했다. 이마에서 등에서 땀이 어찌나 많이 흐르던지, 얼마나 지났을까? 죽비소리 두 번에 한 번 절을 하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 이러면 안 되는데… - 앞에서 우리와 함께 1,080배를 시작하신 혜오 스님, 무진 스님을 쳐다보며 힘을 얻어 죽비에 맞춰 나가다 또 두 번에 한 번, ‘힘내세요’하는 스님들 말씀에 한 번에 한 번 또 두 번에 한 번, ‘얼마 남지 않았어요’하시며 주위를 맴돌아 주시는 스님들이 고마워서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하여 한 번에 한 번… 혜원 스님이 지날 때마다 단무지가 생각나서 웃음이 나와 정신 차리고 한 번에 한 번. 여기저기서 드디어 울음소리. 그렇게 몇 번을 빼먹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끝까지 다른 법우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에 넘, 넘 감사드리고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애불 산행시간이 되자 평소에 산행을 좋아하던 나는 룰루랄라. 우비를 입고 등산화가 아닌 하얀 고무신을 신고 일부러 돌을 찾아 밟으며 지압으로 인해 피로가 쏵. 좀 굵어진 빗줄기 속에 넉넉한 미소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맞아주는 마애불상 앞에서 무성 스님의 디카로 찰칵! - 나오긴 했는지? - 내려오는 길에 시원한 계곡물에서 꺼낸 수박! 참 맛났어요. “무진 스님! 다시 해인을 찾는 날 수박 많이 사갈게요.” 차 한 잔을 나누며! 좋은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입담 좋으신 현진 스님의 진행으로 각자 다른 얼굴처럼 다른 사연으로 수련회에 오게 된 얘기들을 들으며 많이 웃었다. 올 때는 각자 다른 생각으로 오게 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 모두의 가슴에는 “잘 왔다” 그랬을 것이다. 평소보다 좀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소등과 동시에 얼마나 피곤했던지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 너무 피곤해서일까? 많이도 퍼붓는 빗소리 때문일까?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우르르 쾅, 쫙… 천둥, 번개가 방으로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닌가. 어찌나 무섭던지. 애꿎은 시계만 보다, 새벽 2시! 입재 첫날 밤처럼 한잠도 못 자고 먼저 씻었다. 좀 잦아든 비가 고마웠다. 조용히 경내를 거닐며 《부모은중경》 독경을 하다 엄마를 생각하고 철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수련회를 못가게 하셨던 엄마의 마음을 좀 이해 할 것 같았다. 결혼은 죽어도 않겠다며 학교 졸업 후 일에 미쳐서 오직 한길만을 걸어온 나에게 최근 아픈 시련이 닥쳤다. 십오년을 친구처럼, 애인처럼 살가웠던 사람이 자기 길을 가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 내가 머리라도 깎겠다고 할까 봐 불자인 우리 엄마는 수련회를 못 가게 한 것이다. - 엄마! 걱정 마세요. 저처럼 이기적이고 게으른 사람이 감히… - 해인의 새벽 법고소리와 함께 나는 그를 놓아주었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수계식이 있었다. 다행인지 쑥뜸으로 하지 않고 향으로 했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비록 살면서 약속한 계를 다 잘 지키며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 보련다, 마음으로 약속했다. 회향식이 모두 끝나고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질 않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보내고서야 아쉬움을 뒤로 한채 나도 출발할 수 있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혜원 스님의 단무지를 생각하니 졸음을 쫓을 정도의 웃음이… 진짜 발길을 돌리려는데, 혜원 스님이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 묻는 것이다. 혹, 단무지 때문에 웃었냐고? 어떻게 아셨냐고 물으니 당시에는 몰랐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것 같더라고. 스님께 좋은 추억 만들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유난히 맑고,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웃으시며 말씀이 없으셨던 스님, 큰 키에 빼빼 마르셔서 괜한 걱정이 앞서게 되는 스님! 혜원 스님! 성불하셔서 꼭 큰스님 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