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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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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이재현 2003년 08월 258호
2003년 하계 수련회 묵언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묵언이 수련기간 동안 꼭 지켜야 하는 규율이었지만 사실 묵언을 하게 해주셨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말을 하게끔 강요하는 사회에서 길들여져 있다 보니 잠시 규율로라도 습관을 끊게 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묵언의 다른 의미들이 많겠지만 말로 표현을 안 하면 답답하다고 화를 내는 세상에, 또 말을 하면 그런 말을 했다고 토를 다는 세상에서 잠시 구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사회에서 혼지람을 받을까 봐 불안하여 자발적으로 표현하고 말하고 조바심을 냈던 마음이 많이 진정이 되었었다.

좌선의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좌선이라 하면 가부좌 틀고 허리 곧게 펴고 앉아 깊은 숨을 쉬면서 화두 하나 들고 있을 법하다. 그러나 가부좌를 틀지 못하는 나에게 좌선의 시간은 온통 고관절, 무릎관절에서 느껴지는 고통과의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을 잊기 위해 들은 대로 단전호흡을 하거나, 있는 그대로 나의 호흡에 집중을 하거나, 화두에 몰입하는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호흡은 단전이 아니라 내 무릎이 씩씩대고 혼자 다 하는 것 같았고, 집중하고자 시도했던 나의 호흡은 너무 얕아서 잡고 보면 놓치고 또 다시 잡고 보면 호흡이 아니라 통증이곤 했다. 호리병 속에 들어가 있는 새는 그 병 안에서 좌선을 하면서 어떻게 나갈까 숙고나 할 것이지 날개를 퍼덕이면서 난동을 치는 바람에 온 몸에 열이 나버렸다.
하지만! 고통은 철저히 나를 현재에 붙잡아 두었다. 때때로 현재 나에게 있지 않은 고통을 두려워하며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었는데 지금 일종의 고통을 느끼고 있으니 이게 그렇게 두려워할 만하고 피하고 싶을 만한 건지 시험해 볼 기회이기도 했다.
놔 버리면 맞부닥칠 용기가 생긴다고, 고관절 인대가 끊어지고 무릎이 꺾일까 봐 안간힘을 내며 방어하던 몸의 기전氣轉을 의식적으로 풀어버렸다. 그리고 그 고통에 빠져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어라, 들여다 보니까 보이지가 않았다.
기쁨도 잠시, 얼마 후 다시 고통이 느껴졌다. 이게 객관적으로 얼마만한 고통일까? 낮에 혜암 스님 사리 친견하고 대기하고 있던 장소에서 보았던 사진이 떠올랐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고행을 하고 있던 석가모니 사진…… 나는 그냥 10분 조금 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자세와 그 고요함을 따라 해 보았다. 죽비 세 번 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무신의 맛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무신의 맛은 쫀득쫀득하고 착착 감기는 맛이다. 산행을 할 때 그 느낌은 더했다. 지압효과 또한 만점이었다. 서울에서 떠나기 전날, 신발가게에 가서 고무신 주세요, 했더니 아저씨가 “젊은 사람이… 49재라도 있나….” 하시면서 내주신 고무신은 여자 고무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여자 고무신을 살 생각이었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신어보았다. 모양새가 이상했다.
이렇게 신고 절에서 수련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었다. 비구니 스님을 떠올려보니 아무래도 이게 아니었다. “남자 걸로 주세요!” “아가씨 사이즈에 맞는 건 없고 120 이하나 150 이상만 있어.” 할 수 없이 3,000원짜리 하얀 운동화를 사가지고 내려왔다.
하지만 난 그 운동화 대신 전 차수의 수련생들이 놓고 간 고무신을 택했다. 그 덕에 내가 이때까지 몰랐던 고무신의 맛을 알게 되었던 것. 덧붙여 알게 된 사실은 고무신에도 패션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신발 중앙에 나이키 상표를 멋드러지게 그려놓은 그 하얀 고무신은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just do it’이라는 표어 아래 하얀 고무신 신고 축구 하는 해인사 스님들이 나오는 광고를 상상해 보았다.

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차 수련회 기간 동안 날씨는 매우 다양했다. 매우 좋은 날씨, 보통 좋은 날씨, 비 오는 날씨, 비가 약간 흩뿌리는 날씨, 바람 부는 날씨…. 마치 인생의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등을 느끼는 것처럼 고렇게 그 날씨들의 맛을 참 잘 느낄 수 있었던 수련회였다. 셋째날 비가 와서 기분은 가라앉고 몸은 처져 있었는데 그 와중에 우산 들고 암자 순행길을 나서야만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개울소리와 뒤섞인 빗소리를 들으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것이 나쁘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봉황의 눈 바위 앞에서 바라본 전경이란… 비가 갤 무렵 낮게 깔려진 구름이 산과 어울려 대단한 운치를 선사하고 있었다. 맑은 날의 심심한 명료함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비 오는 날은 그렇게 감동적으로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감성 위장을 무디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련 기간 동안 우리 할머니를 3번 이상 떠올렸다. 할머니께선 86세로 고령이시지만 시장에 가시면 뒤에 짊어지신 가방과 양손에 가득히 장을 봐 가지고 오실 정도로 체력이 좋으시다. 할머니의 건강은 가히 위력이라 할 만하다. 위의 힘 말이다. 반쯤 썩은 음식을 골라 드시거나, 김치찌개 먹은 그릇에 우유를 따라 마시거나, 말라비틀어진 음식들 한데 모아 전혀 하모니가 이루어지지 않는 국물에 말아 드시거나 하셔도 전혀 거부감이 없는 위장을 가지셨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드시기 때문일까? 오히려 반응은 그걸 보는 나의 위장에서 나타났다. 비위가 상해 그 날은 내 밥을 반쯤 남기곤 하게 되는 것이다.
발우공양 때 마시는 그 퇴수는 나의 민감한 위장을 단련시켰음이 분명하다. 어떤 반찬이 나오더라도 단무지의 시큼달다름한 맛이 기본 양념으로 가미되는 그 독특한 맛에 대한 거부감이 이틀이 지나자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더 많은 양의 퇴수물로 고문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지도 모르겠지만 물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데는 우리 할머니의 역할이 컸다. 우리 할머니에게는 이건 수련이 아니라 생활이신데….
절실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면 받는 것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게 되는가 보다.

불안의 위문품을 압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대인들은 아마도 많이 불안한가 보다. 뭔가에 계속 의존하게 된다. 건강이 안 좋아진다 싶으면 약에 의존하고, 잊혀질까 봐 두려우면 핸드폰에 의존하고, 피부에 약간이라도 주름이 생길라치면 좋은 화장품에 의존하게 된다.
지갑, 핸드폰, 화장품, 샴푸 등등, 불안을 위로해 주는 위문품들은 첫날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 압수당하고 말았다.
오호, 의외의 이 홀가분함이란! 이 홀가분함의 결과는 뽀얗고 튼튼해진 피부와 자유로움이었다. 현대생활에서 자신을 관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 자유로움을 고수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문 여는 방법을 알고 방 안에 앉아 있는 것과 문 여는 방법을 모르고 방 안에 갇혀 있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매너 없이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들은 사회생활을 안 해 보셔서 그런지 여자들에 대한 매너나 특별한 배려가 없으시다. 해병대 하사관이 인정한 혹독한 훈련. 여자라고 예외는 없었다. 규율을 어기면 호통을 치고 포기할라치면 매정하게 나무라신다. 남녀가 달랐던 것은 자는 방과 샤워실과 해우소 정도일까?
심지어 밤 9시 30분, 소등을 할 즈음이 되면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셔서는 무서운 얼굴로 “모두 누워요”를 외치신다. 그리고 확인하고 소등을 하고 나가신다. 처음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하긴, 스님들에게 남녀를 구분하는 개념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혹독한 수련을 완수했다는 뿌듯함이 남았다.

따듯한 거짓말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날 밤, 차를 마시며 수련회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한 분이 “무성 스님을 믿어야 할지….” 하면서 시작한 얘기로 모두 배꼽을 잡고 말았다. 모두가 공감을 했었기 때문이다. 1,080배를 앞두고 지쳐 있는 우리들은 “이제 다 했습니다, 조금 남았습니다”라는 말에 다시 힘을 내어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30분이 지나야 죽비소리가 끝이 났다. 마애불에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로 이제 거의 다왔다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가파른 경사길이 나오고 있었다. 또 현오 스님의 거짓말은 어떠한가, “수련이 힘들긴 하지만 2일째만 넘기면 내리막길이에요”라고 하셨지만 정작 4일째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지 않았던가.
하여 감사드린다. “좌선 시간에는 다리나 허리에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낄 테지만 30분가량 반드시 참아내야 하고, 1,080배는 2시간가량 진행되는 동안 온 몸이 땀으로 젖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탈진상태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1,080배가 끝나고 바로 가야산 산행이 있을 예정인데 40분 이상 가야 하니 각오를 단단히 하십시오.
그러니까 약 3시간 동안 고강도의 운동이 진행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과도한 수련에 의한 실신이나 낙상에 의한 부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십시오.” 이렇게 친절하고 소상한 설명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반 이상이 수련을 완수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뉘앙스의 글을 가끔 병원 의사들의 설명이나 약의 포장지에 쓰여져 있는 부작용 설명서, 기계 사용시 주의사항에서 발견하곤 한다. 이러한 글은 대부분 별로 감동이 없거나 때론 너무 충격적이거나 못 알아 듣는 전문 용어로 채워져 있기 일쑤이다. 사용자 보호용이 아니라 시술자나 제조자의 방어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님들께선 ‘거의’ ‘조금’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써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셨다. 따지고 보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마다 거의, 조금이라는 기준이 다를 수 있으니….
거짓말을 해가며 호통을 치시는 스님들과 자다가 모기 물릴까 봐 걱정하는 스님들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우리 수련생들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회향식이 끝나고 끊길 줄 모르고 법당을 울렸던 박수소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