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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 눈망울에 심은 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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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화륜 2003년 08월 258호
하나
‘그래! 결심했어! 우리 집에도 어린이 법회를 만드는 거야… 내가!!’

“토요일 오후 2시, 알제?”
“<달려라 하니> 봐야 되는데….”
그날 밤 잠을 뒤척이며 곰곰 생각했다.
‘하니보다 더 좋아할 만한 게 뭘까? …… 뭘까? ……’
책상 서랍 속 깊이 숨겨둔 나의 비밀상자를 조심스레 끄집어냈다.
뽑기에서 다섯 번만에 걸린 꽃반지와 일주일치 받은 용돈 500원을 주머니 속에 넣고 학교로 갔다.
“자. 이거 받아라. 내일 우리 집에 가는 거다.”
반지를 받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쮸쮸바 10개를 사서 내가 모은(?)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시원한 쮸쮸바를 먹으며 우리는 내일을 약속했다.
“여기가 너거 집이가? 윽수로 부자다. 우와! 금덩이 세 개나 있다.”
“금덩이가 아니라 부처님이다. 여기는 법당이고…… 자! 내 따라 해라!”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삼배를 올리는 나를 보고 호기심으로 들떠 있던 아이들은 어느새 차분해져 따라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성된 초등학교 3학년짜리 법사인 나를 포함한 7명의 ‘꾸러기 법회’, 드디어 우리 절에도 어린이 법회가 시작된 것이다.

둘
“어…… 으아앙!”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도무지 눈이 떠지지 않았다. ‘꿈이겠지!’ 이리저리 돌아누우며 외면하려는데 온기 서린 방울이 빰에 떨어지는 순간 번쩍! 눈이 뜨였다.
“화…장…실 갈래. 선생님.”
아이의 ‘선생님’이란 표현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투덜이 여고생이 아닌 나는 2박 3일간 ‘선재반’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그래… 자! 가자!”
깜깜한 어둠을 가르며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여기 있어요, 꼭…. 가면 안 돼….”
“알았어. 갔다와. 같이 들어갈까?”
그건 싫었던 모양인지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들여보낸 나는 쪼그리고 앉아 아이를 기다리며 아직 덜 깬 잠 때문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있었다. ‘퍽!’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끄덕거리다 못해 털썩 나자빠진 것이다.
‘왜 이렇게 안 나오지?’ 얼른 다시 자세를 잡고 눈을 감는 순간,
“치, 또 잘려구?”
“언제 나왔어? 가자.”
“잠꾸러기!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미안한 마음에 아이의 손을 더 꼬옥 잡았다.
“부처님은 억수로 착한데….”
“왜?”
“나 무섭지 말라고 맨날 맨날 잘 때 책도 읽어주고, 옛날 이야기도 해준단 말이야.”
“엄마가?”
“아니, 부처님이….”
난 더 이상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너무도 자신 만만하고 단호한 이 아이의 반짝거리는 눈에 나는 아이의 키보다 더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셋
부푼 가슴을 안고 운문사를 찾아올 500명의 아이들을 기다리며 여름불교학교 준비로 바쁜 나날이었다. 도량 곳곳에 아이들을 맞이할 알록달록한 장엄물들, 부처님 일대기에 대한 수업준비, 기초교리, 기본예절 등…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는 초등학생을 이해시키기 어려우리란 생각에 온갖 관련 서적들 속에 푹 파묻혀 고민 또 고민해 갔다. 막상 초롱초롱한 눈망울 앞에 서면 떨릴 것 같아 아예 대본을 써서 거의 외우다시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드디어 대망의 그 날! 설렘과 두려움 속에서 아이들과의 시간이 펼쳐졌다.
“스님! 어제 밤에 모기한테 스물 두 방이나 물렸어요.”
자신의 팔뚝이며 종아리며 붉게 부풀어 오른 모기자국을 내보이며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약 발라 줄게. 이리 와.” 물파스를 아이의 팔뚝에 발라주고 있는데, 이 잔인한 모기는 또 이 아이의 팔뚝에 착지 중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바닥을 내리쳐 모기를 잡았다. 내심 으쓱한 마음에 아이를 향해 씽긋 웃고 있는데, 웬걸! 아이의 표정은 너무도 심각하고 고뇌에 차 있는 것이다.
“스님, 나는 간지러우면 약 바르면 되는데 모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 예상 밖의 반응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발보리심 해라.” 모기를 향해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뭔데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살생을 하게 되면, 부처님 믿는 마음 내라고 일러주는 거란다.”
“날려 보내주면 되지!” 허둥지둥, ‘발보리심’의 의미와 ‘인과법’을 이해시켜 보고자 머릿속을 맴돌던 구구한 설명들… 이론적 변명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아이의 대자비심大慈悲心에 고개 숙일 수밖엔…….

넷
채경당 굴뚝을 타고 넝쿨을 풀어헤친 능소화가 필 때쯤이면 운문사 학인 스님들은 여름방학을 기다린다. 하지만 나는 곱게 핀 능소화만큼이나 예쁜 아이들을 기다리며 여름불교학교 준비로 여념이 없다. 그림을 그리고, 색지를 오려 붙이고, 찬불가와 율동도 익히며, 여러 가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준비… 조금씩 여유로워져 가는 나의 모습에 다행스런 마음도 들지만, 문득문득 순수 그 자체의 이 아이들에게 행여 내 방식대로의 진행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심리학에 어려서 보고 들으며 경험한 것은 마음에 새겨져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각인刻印’이라는 개념이 있다. 따라서, 단편적인 나의 생각으로 부처님 법을 전달하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가 호기심을 갖고 능동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동기유발요인’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심스럽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수직적 관계보다는 수평적 관계로 대했을 때, 이들을 통해 내 자신이 한층 더 순수해질 수 있고 겸손 진실해질 수 있지 않을까?
또, 아이들에게는 여름불교학교·수련회 등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불교적인 정서 및 생활습관이 그 뒤의 심리구조에 많은 영향을 준다. 때문에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불교학교나 수련회는 타수련회들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는 아이들이 레크레이션에 가장 흥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교리공부나 스님의 설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렇다고 지루한 주입식 방법은 좋지 않다. 불교적 관점에 무게중심을 두고 흥미를 접목시키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또, 아이들의 질문에 응해줄 때에도 단정적인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그 의문점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서 암시하는 방법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비록 어린이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경험을 토대로 오늘도 내일도 쉬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포교에 앞장선다면, 불심佛心의 나무를 심어주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색종이 한 장을 손에 쥐고 티없이 맑은 순수함과 신심信心, 그리고 모기 한 마리에게조차 대자비심大慈悲心을 일깨워준, 또 다른 나의 선지식들을 떠올린다.
나무불·나무법·나무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