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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 그 이름마저 버려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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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3년 08월 258호
홍류동천 해마다 여름이면 홍수로 인해 거센 물결이 광분狂奔하여 산을 삼키고 언덕을 휘감아 종전의 계곡과 하천의 모습을 바꾸곤 했는데, 이곳 홍류동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쯤 홍수로 가야산 계곡에 물이 넘쳐 농산정 곁 계곡 한가운데 팔분체八分體로 ‘홍류동紅流洞’ 세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떨어져 나가고 지금은 ‘류’자의 일부와 ‘동’자만 남게 되었다. 이 홍류동 석각石刻은 농산정에서 계곡 건너 도로 위쪽에 최고운의 시가 새겨진 제시석題詩石과 함께 이 계곡을 찾는 사람 가운데 글씨에 관심있는 이라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완상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취를 온전히 볼 수 없게 되어 아쉬운 심정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다만 전에 찍어둔 사진을 내어 보기는 하나 어디 홍류동 물소리 들리는 실경實景 가운데서 보기만 하랴.
올 여름에도 홍류동에 들어갔다가 떨어지고 남은 석각의 일부를 보고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일간에 자동紫東 이정모李正模(1846~1875)의 시문집인 《자동집》 가운데 <가야잡영伽倻雜詠>의 ‘홍류동’이라는 재미있는 시를 보게 되었다.

세인지분태世人脂粉態 세상 사람 겉치레하는 속태
무물불천투無物不遷 무엇이든 변치 않음이 없네
번장홍일자將紅一字 문득 하나의 이 ‘홍’자마저
강욕완청류强欲浣淸流 굳이 맑은 물에 씻고자 하네

시인은 홍류동 맑은 물에서 세상의 가식을 씻고자 하여 ‘홍류동’이라는 이름 가운데 ‘붉다’는 뜻의 ‘홍’자마저 씻어내기를 바랐다. 어차피 그 이름도 마침내 버려야 할 색상色相이 아니던가. 이 시를 통하여 그동안 아쉬웠던 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자동의 이 시는 어쩌면 오늘의 나를 위해 준비한 말인가. 홍류동의 ‘홍’자가 없다한들 어찌 홍류동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는 데 더하고 덜할 것이 있으랴.□


필자 주:이정모는 경남 의령의 자미산紫薇山 아래 도당곡陶唐谷에 살았으므로 호를 자동紫東이라 하였고,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1818~1886)의 제자 가운데 주문팔현洲門八賢에 들 정도로 학행이 높았다. <가야잡영>은 모두 10수인데 《자동집》 권1에 실려 있고 ‘홍류동’ 시는 이 가운데 제9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