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홍수로 인해 거센 물결이 광분狂奔하여 산을 삼키고 언덕을 휘감아 종전의 계곡과 하천의 모습을 바꾸곤 했는데, 이곳 홍류동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세인지분태世人脂粉態 세상 사람 겉치레하는 속태
무물불천투無物不遷 무엇이든 변치 않음이 없네
번장홍일자將紅一字 문득 하나의 이 ‘홍’자마저
강욕완청류强欲浣淸流 굳이 맑은 물에 씻고자 하네
시인은 홍류동 맑은 물에서 세상의 가식을 씻고자 하여 ‘홍류동’이라는 이름 가운데 ‘붉다’는 뜻의 ‘홍’자마저 씻어내기를 바랐다. 어차피 그 이름도 마침내 버려야 할 색상色相이 아니던가. 이 시를 통하여 그동안 아쉬웠던 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자동의 이 시는 어쩌면 오늘의 나를 위해 준비한 말인가. 홍류동의 ‘홍’자가 없다한들 어찌 홍류동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는 데 더하고 덜할 것이 있으랴.□
필자 주:이정모는 경남 의령의 자미산紫薇山 아래 도당곡陶唐谷에 살았으므로 호를 자동紫東이라 하였고,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1818~1886)의 제자 가운데 주문팔현洲門八賢에 들 정도로 학행이 높았다. <가야잡영>은 모두 10수인데 《자동집》 권1에 실려 있고 ‘홍류동’ 시는 이 가운데 제9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