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가 중세(의 수도원 건축과 마스터 빌더master builder)를 이해하는 데 대단한 공헌을 하였다고 평한 것처럼, 건축가이기도 한 페르낭 뿌이용이 쓴 소설 <거친 돌Les Pierres sauvages>은 중세 수도사들의 정신세계와 교리를 충실하게 따르며 수도원을 지어나간 시간과 공간을 조사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귀족집안 출신으로 시토에서 25년 동안 건축수도사로 활동하던 기욤 발스가 1163년 젊은 수도사 둘과 함께 고향 근처의 시골 르 또로네 지방으로 내려와서 그의 마지막이며 위대한 수도원을 완성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집을 짓기에는 매우 어려운 땅, 질이 좋지 않은 주변지역의 석재, 부정확한 자금과 작업 도구, 경험이 없는 일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단과의 갈등과 정신적인 자신감의 상실, 심한 부상과 끊임없이 괴롭히는 질병을 극복하면서 신과 교단과 그 자신에게 기념비적인 작업을 바친다. 마치 실화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수도원을 지을 장소를 정하고 지역의 생태와 환경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재료를 정하고 숙련되지 않은 기술자들을 교육시키면서 수도회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가능한 한 단순하고 절제하며 감동적인 건축공간을 이루어내는 마스터 빌더의 작업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2년 전 여름, 몇몇 건축가들과 함께 이 경이로운 장소를 체험하기 위하여 먼길의 순례를 떠났다. 파리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거의 1000킬로미터를 달려 숲 속에 고립된 수도원의 진입로에 겨우 닿은 시간, 엄청난 장대비가 내렸다. 늦은 시간의 갑작스런 비는 개장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멎었고 시간에 쫓기며 바쁜 마음에 수도원에 붙은 교회 앞마당에 당도하였다. ‘프로방스의 3자매’라고 불리는 수도원 중의 하나인 <르 또로네Le Thoronet>는 화려하지 않으나 정제되고 청빈한 사원으로, 공간의 비례와 재료가 발산하는 부드러움이 무한한 감동을 만들어내면서 저녁놀의 빛을 받고 있었다.
12세기 프랑스 로마네스크의 중심적 존재였던 시토수도회의 미학이, 그리고 디종 근처의 중부도시 끄레르보의 수도원장을 지낸 베르나르의 이상과 미학이 최고조로 나타난 것이 마르세이유 동쪽의 산간에 세운 이 수도원이다. 수도회를 창건한 베네딕트의 가르침을 엄격하게 지키고 수도회의 규칙에 따라 호사로움과 지나친 장식을 피하면서 빈 공간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건축공간으로 청빈을 강조하는 기독교 수행의 이상을 실현한 것이다. 베르나르는 당시의 타락한 수도원 건축을, 특히 교회의 거대한 높이와 도가 지나친 건물의 길이나 불필요한 공간의 폭같은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부패하고 타성에 젖은 성직자들을 공격하였다고 한다. 그는 기하학에 근거한 비례에 대하여 엄격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파리에서는 초기 고딕 양식의 대성당 건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건축의 아름다움이란 결코 장식된 조각이나 그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빛에 있으며 그 공간과 빛은 재료와 구조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이해하고 강조하였다.
20세기 현대 건축을 이끌었던 르 코르뷔지에나 루이스 칸 같은 건축가들이 시토수도회 건축 특히 르 또로네 수도원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현대 건축가 루이스 칸은 벽돌로 지을 건축을 구상하며 벽돌을 보고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 그는 벽돌이라는 재료가 만드는 조직구조에 주목하며 구조와 재료의 관계에 대하여 탐구한다. 그리고 전면 유리로 덮인 ‘국제주의 양식’ 건축에서 나타나는 균질한 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그 벽의 틈과 투명한 유리를 통하여 들어오는 미묘한 빛은 충격적인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였다. 그가 <유니테리안 교회>에서 보여준 빛의 처리는 공간의 중심을 만들고 빛으로 가득 찬 방은 건축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그는 “구조체는 빛을 만들고 빛은 공간을 만든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롱샹교회>와 <라 뚜레뜨 수도원>을 설계하며 “건축이란 빛 아래 모인 볼륨의 지적이며 정확한, 그리고 장대한 놀이다”라고 한 르 코르뷔지에의 표현과 비슷하다. 두 건축가는 재료와 그에 투영하고 반사하는 빛을 통하여 경건한 종교공간을 피력하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라 뚜레뜨 수도원>을 설계하기 위하여 르 또로네 수도원을 방문하였고 당시의 사진가 루시앙 에르베Lucien Herve의 사진집 <진리의 건축Architecture of Truth>에 다음과 같은 서문을 실었다.
“이 책의 사진들은 진리眞理의 증언witnesses이다. 건물의 디테일들은 창조적인 건축의 원리를 나타낸다…… 전체와 부분은 하나이다…… 돌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 돌에게 필요함이 아니라 돌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빛과 그늘은(진리, 고요함tranquility, 강함을 표상하는) 이 건축의 확성기loudspeakers이며, 그 외에 덧붙일 것이 없다.”
이 언설은 오늘날 우리가 갈등하고 있는 현대적 종교공간의 본질적 질문에도 적절한 시사를 던지고 있다. 건축의 형태나 기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거나 가치가 상실되지만, 분명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는 정신적 가치이며(만든 사람들의 의지를 포함하여), 재료와 빛으로 이루어내는 ‘진리’의 공간이 시대를 넘어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보편성은 그 땅의 특질로부터 생겨난 건축(혹은 그 집합체)과 주변의 자연과 인간의 삶이 관계를 맺으며 형성될 때 가능한 것이다.□
르 또로네 수도원Abbaye du Thoronet
프랑스의 시토수도회가 지은 ‘프로방스 3자매’ 수도원의 하나. 1160년경 착공하여 주요 부분은 1175년에 완성. <르 또로네>는 한때 폐허처럼 묻혀 있었으나 19세기에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복원되었다. 장식이 없는 금욕적 공간과 소박한 돌쌓기와 세부細部의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시토수도회 건축Cistercian Architecture
11세기 프랑스 중부지방 디종 근처의 시토Citeaux에서 창단된 가톨릭 수도원의 계파로 베르나르Saint Bernard 수도원장(시토회가 융성하였던 12세기 최고의 지적 지도자. 1090-1153)의 개혁운동 후 거의 2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 1,500여개의 수도원을 건설하면서 큰 영향을 끼쳤고, 그 후 쇠퇴하였지만 많은 우수한 종교건축을 남겼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스위스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1922년 <에스프리 누보> 잡지를 통하여 회화, 공예, 건축, 음악 분야에서 전위적 주장 전개, 20세기 도시건축의 중요한 사상을 수립하였다. <빌라 사보아> <롱샹교회>
루이스 칸Louis Kahn (1901-1974)
에스토니아 출생의 미국건축가. 펜실베니아 대학 건축과 교수. 50세에 <예일대 미술관>으로 데뷔한 후 24년간 왕성한 활동. 50-70년대의 기념비적인 건축과 저술을 남겼다. <킴벨미술관> <소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