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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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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원우 2003년 06월 256호
삼보일배를 다녀와서 아직 바닷바람이 차가운 3월 28일. 벌써 여름 철새인 도요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서해안갯벌은 전세계적으로 생태계에 있어서 아주 높은 가치를 지닌 습지이다. 겨울이면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하늘을 수놓으면서 군무를 펼쳐보이고 세계적인 희귀조인 검은머리물떼새를 비롯한 수많은 겨울과 여름 철새들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여름과 겨울철새들의 이동통로에 서해안의 습지가 있어 지친 날개를 쉬어갈 수 있는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철새는 이동중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먹이 활동이 필요한데 풍부한 갯벌의 생태계는 이런 다양한 먹이를 공급해주기에 충분하다. 육지에서 숲과 같은 역할을 갯벌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전북 부안의 해창갯벌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4대종교의 성직자들이 모여 있었다. 불교의 수경 스님, 천주교의 문규현 신부님, 원불교의 김경일 교무님, 기독교의 이희운 목사님이 그들이다. 전북 부안에서 서울 광화문에 이르는 멀고도 험난한 길 305km를 새만금갯벌과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로 가기 위한 출발선에 서 있었다.
삼보일배는 무엇인가? 불교의 수행법의 하나로 인간의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3독을 없애고 하심下心하는 수행 바로 그것이 삼보일배이다. 수경 스님은 이전에도 삼보일배 수행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305km에 이르는 거리를 두 달여에 걸려 강행되는 이번의 삼보일배는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기에 비장하기까지 했다. 이 세상의 뭇 생명을 내 생명처럼 여기지 않는다면 감히 할 수 없는 고행의 길인 것이다.
20세기적인 개발독재의 폐해는 이미 우리 국토를 심각한 환경병으로 앓게 하고 있다. 시화호가 그렇고 천수만이 그러했으며 작금의 북한산·천성산·새만금이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2003년 설날 실상사를 찾았을 때 수경 스님은 새만금갯벌의 문제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고 다시 자연으로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음을 절실하게 통감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함께 수행자다운 환경운동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 사회에서 수행자가 보여주어야 할 모습과 해주어야 할 역할이란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민끝에 수경 스님의 제안에 따라 삼보일배가 시작된 것이다.
삼보일배가 시작된 지 며칠 뒤 전북 죽산에서 수경 스님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하루 10시간에 걸쳐서 6km에 이르는 거리를 삼보일배로 정진하고 있었다. 절과 스님은 아주 익숙한 문화지만 수경 스님은 체력이 약하신 분이다. 2002년에도 서울에서 북한산 관통터널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를 하다가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간 적도 있다. 그 만큼 수경 스님 개인에게 있어서 삼보일배는 고행인 것이다. 오히려 절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문규현 신부님은 타고난 체력이 강해서인지 절에 익숙해져 있었다. 절을 하는 성직자들의 뒤에는 도보로 따르는 행렬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타종교의 종교인들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원불교·카톨릭·기독교 중 유독 찾아보기 힘든 종교인은 불교였다. 머리를 깎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의기소침하고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잠시 땀을 닦고 쉬어가는 시간에 수경 스님만이 외롭게 혼자서 쉬고 있었다.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이 신자들에 둘러싸여 외호를 받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장면이었고, ‘이것이 우리 불교의 환경 체감도의 현실이구나’하는 자괴감까지 안겨주었다. 우리 불교의 환경에 대한 정서가 이 정도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았지만 그래도 그 서운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시작한 지 며칠 안 되지만 수경 스님의 무릎은 벌써 물이 차는 현상이 생겨 다리를 절고 계셨다. 이런 몸으로 과연 얼마를 갈 수 있을지 수경 스님 자신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보다는 그래도 불교를 대표해서 참가했는데 중도에 낙오되어 혹 불교에 누가 되지 않을까를 먼저 염려하고 있었다.
삼보일배 수행자 일행은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면서 진행하고 있었다. 노숙텐트를 뒤로 하고 떠나오는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다. 덩그러이 혼자 남겨져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외로움을 같이 감당해야 할 수경 스님을 남겨놓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사실 수경 스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수경이란 법명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해인사 청동대불과 관련한 발언으로 지면을 통해서가 처음이었다. 작년 봄 북한산에서는 서울외곽순환도로 북한산 관통을 반대하던 비구니스님이 건설회사 인부들과 충돌하여 다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수경 스님은 단식수행정진에 나섰고 이런 모습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직 수행정진이 더 중요한 학인으로서 솔직히 산중을 떠나 세속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결국 학인스님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거기에 참가해서 수경 스님을 뵐 수 있었다.
며칠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수경 스님에게서 수행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은 결제중에 북한산까지 오게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수행에 방해가 되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수경 스님은 그런 분이었다. 세속의 현장에 있되 한시도 수행자임을 망각하지 않고 있었다. 세속과 어울리되 수행자답게 어울려야 되며 수행자에게 수행이 가장 중요함을 한시도 잊지않고 있었다. 아직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우리 학인스님들을 똑같은 수행자로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과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진정으로 먹물 옷을 입은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그분에게서는 서열과 상하를 구분해 보겠다고 옷을 달리하는 큰스님들의 모습과는 다른 수행자의 향기가 나고 있었다.
5월 5일 서해안의 갯벌에는 벌써 청다리도요, 고까도요, 뒷부리도요, 알락도요, 노랑발도요 등 엄청난 도요새들이 날아와서 분주하게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미 번식을 마친 꼬마물떼새는 어린새를 데리고 다녔다. 정말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이러는 사이에도 새만금의 갯벌은 조금씩 숨통이 끊어져 가고 있었다.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볼 요량으로 삼보일배일행의 점심공양을 준비해서 서산 부석사의 가족들과 수경 스님 일행을 찾았을 때 충남 천안을 지나 성환에 머물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가 걱정되었는데 여전히 다리는 절고 계셨고 무릎의 상태가 악화되어 소염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와 있었다. 건강한 몸으로도 하기 어려운 305km대장정을 그 아픈 다리를 이끌고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수경 스님의 목에는 ‘묵언’이란 팻말이 걸려 있었다. 수경 스님에게 있어서 삼보일배는 이미 환경운동을 넘어서 출가 수행자의 삶이 되어 있었다.
삼보일배를 지원하고 도보행진을 같이 해온 일행의 소진된 체력을 생각해서 절집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채식 위주의 식단이 아닌 고칼로리 음식을 준비했다. 조금이나마 소진된 체력을 보충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공양을 아주 맛있게 먹어 준 일행의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같이하지 못하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덜 수 있었다.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이날은 삼보일배 52일째를 맞이하고 있었고 일행은 벌써 수원을 지나 의왕시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삼보일배 불교인의 날’이었다. 중앙승가대 학인스님들과 봉녕사 학인스님들이 왔고 난 전승련의 임원으로서 참석하게 되었다. 수경 스님은 여전히 다리를 절고 있었고 이제 거의 마지막 체력적인 한계에 와 있는 듯 했다. 하루 일정이 끝날 무렵에는 탈진하여 쓰러질 정도였다. 지금 수경 스님이 보이는 모습처럼 새만금의 갯벌은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간절하게 마지막 애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많은 생명의 외침 때문이었는지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수십년을 수행해온 수행력으로 하루일정을, 그날은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5월 18일의 삼보일배일행의 모습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처음 전북에서 일행을 찾았을 때 수경 스님 혼자서 버려진 사람처럼 있던 모습과는 달리 그동안 서로 다른 종교간의 벽이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수경 스님께 와서 인사를 하고 묵언중이라서 필담으로나마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참여 종교단체 중에 항상 꼴찌를 하던 우리 불교인들의 참여도 수도권에 가까이 오면서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특히 근처의 절에서 온 불자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수경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모습은 가장 큰 감동을 안겨주었고 어떤 설법보다도 강력한 법력을 갖추고 있는 듯했다.
21일 수경 스님은 마침내 과천에서 남태령을 가는 구간에서 때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오후 2시 30분경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두 시간 만에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고 한다. 부안 해창갯벌로부터 284km지점이었다. 하지만 하루를 쉬면서 소진된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일정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31일이면 아마 일행은 광화문에 있을 것이다. 쓰러져 죽는 한이 있어도 수경 스님은 광화문까지 기필코 갈 수 있을 것이다. 새만금에서 애타게 목숨을 애원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이 있고, 이미 수경 스님에게는 이번 삼보일배가 목숨을 건 수행자의 구도의 길이기 때문이다.

삼보일배를 시작하면서 수경 스님은 이런 글을 남겼다.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경》의 진리는 도대체 지금 바로 여기가 아닌 그 어디에 존재하며, 너는 나의 뿌리이며 나 또한 너의 뿌리인 《화엄경》의 연기론은 또 지금 바로 여기가 아닌 그 어느 곳에 있어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