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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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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3년 06월 256호
중국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 운강 석굴의 답사를 마치고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돈황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도착해 보니 아주 작은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탑승을 했는데 아무런 안내 방송도 없이 찜통 같은 기내에서 출발하기까지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가까스로 출발은 했지만 도중에 난주蘭州라는 곳에서 난데없이 내리라고 했다. 직행편으로 알고 있던 우리 일행은 당황하면서 내려 또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돈황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낙타도 아닌 비행기로 왔는데도 참으로 멀고도 멀었다. 사막 한가운데 작은 건물만 하나 달랑 있는 돈황 공항, 그래도 내가 지금 돈황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일행과 함께 공항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돈황은 잘 알려진 대로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고비 사막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늘날 중국의 행정구역으로는 감숙성甘肅省에 들어간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20분 정도가 걸리는데 차를 타고 조금 달리니 정말 오아시스가 있고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옥수수 등 여러 곡물의 파란색이 너무나 신기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을 먹고 돈황 시내로부터 남동쪽으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막고굴莫高窟로 향했다. 천불동千佛洞으로도 불리는 이 석굴은 4세기 말부터 조영이 시작되어 13세기까지 약 천 년에 걸쳐 수많은 불상이 만들어지고 벽화가 그려졌다. 현재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석굴의 길이는 약 1.6킬로미터이고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는 492개의 석굴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영 시기가 빠른 것은 비교적 규모가 작고 소박하나 수나라와 당나라에 걸쳐 조영된 석굴은 그 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크고 화려하다. 석굴 중에는 훼손이 심하여 텅 빈 곳이 있는가 하면 뒤늦게 발견되어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곳도 있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그 관람료가 석굴의 보존과 복원에 쓰이고 있지만 한편 습기와 진동 등을 발생시켜 훼손도 심해 또 다른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한다. 석굴 건너편에 있는 돈황문물연구소라는 곳에서 석굴의 관리를 맡고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니 어떻게 복원하고 보존 처리를 하고 있는지 상세히 전시되어 있었다. 한편 방문자들이 안내료와 입장료을 지불하면 언어에 따라 안내원이 배정된다. 입구에서 카메라를 비롯하여 모든 짐들을 맡기고 손전등만 꺼내 들었다. 석굴 안이 깜깜해서 손전등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막고굴은 일반굴과 특별굴로 나뉘어 있다. 몇 개 안 되는 일반굴은 정해진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자유로이 볼 수 있다. 그러나 특별굴은 사정이 다르다. 보존을 이유로 해마다 공개하는 굴이 다르고 굴마다 전부 입장료도 다르다. 그러므로 먼저 안내소에서 그 해에 공개되는 특별굴들과 그에 대한 입장료를 확인하고 관람하고 싶은 굴들을 신청해야만 한다. 우리 일행은 일반굴과 함께 특별굴을 모두 보기로 해 꽤 많은 돈을 따로 지불해야만 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석굴로 들어가 안내원이 설명과 함께 비추는 전등의 불빛을 따라 이리저리 눈을 돌리지만 석굴 안이 워낙 어두워 벽화를 전체적으로 본다거나 자세히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특별히 보고 싶은 장면 등이 있다면 미리 도록 등의 책자에서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초기에 조성된 굴은 인도나 서역의 영향이 농후하고, 서위西魏나 북위北魏의 시대가 되면 중국 고유의 신앙과 외래 신앙이 습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수와 당나라 때 조성된 곳은 그 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사방의 벽에 주로 변상도가 그려졌고 장식도 화려해졌다. 개인적으로는 방문 당시 마니보주摩尼寶珠에 관심이 있어 제285굴, 제288굴(西魏, 535-556년) 등에서 다이아몬드형의 보주들을 볼 수 있었고, 수와 당나라 때 조성된 굴에서는 둥근 형태의 보주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시대에 따라 형태와 그 쓰이는 위치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연꽃이나 화염火焰 등과도 결합하면서 불교미술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제285굴의 천정 네 면에는 비천飛天, 역사力士, 중국의 신화 전설에 나오는 복희伏曦, 비렴飛廉, 개명開明 등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날고 있어 굴 천정 전체가 마치 하나의 허공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녹색과 코발트색 그리고 흰색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당나라 초기 때 조성된 제57굴의 관음보살상은 막고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그시 감은 눈, 미소를 머금고 오므린 듯한 입술, 화려한 장신구, 유려한 포즈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였다. 제158굴(中唐期)은 커다란 불열반佛涅槃이 안치되어 있는 굴로 유명한데 특히 상 뒤의 벽면에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며 통곡하는 십대제자들과 나한들의 표정들이 정말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었다. 굴마다 거의 모든 그림에서 연지蓮池의 연꽃에서 부처님과 보살들 그리고 성스러운 식물과 동물들이 끊임없이 화생하고 있었다. 비천은 하늘을 날면서 꽃을 뿌리며 부처님을 찬탄하고 천인들은 가지각색의 악기를 연주하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장엄 세계를 배관하는 동안 감탄과 환희는 어느새 경외와 침묵으로 바뀌었다.
배관을 마친 후 석굴을 뒤로 하고 명사산鳴沙山에 올랐다. 바람에 따라 모래가 이리저리 움직여 여러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그 위로 우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과거 돈황은 수많은 문물들이 모이고 다시 갈래지어 각지로 흩어지는 동서 문화교류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돈황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이 화려한 장엄의 세계로 화생하여 그 문물교류의 중심에 우뚝 서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비록 모래밖에 안 보이는 사막이지만 다시 돈황에서 시작하여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가보고 싶다는 서원과 함께 친구들과 아이의 선물로 작은 병에 고비 사막의 모래를 약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