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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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3년 06월 256호
아카시아 꽃향기가 바람 따라 산을 내려와 도심에 가득하다. 괜스레 창문을 열고 코를 찡긋거리며 심호흡을 한다. 폐 속 깊숙이까지 향기가 스며드는 느낌이다. 하냥 좋아서 산사에서 온 산천을 도량 삼아 포행하던 시간을 생각한다. 전국 제방선원에서 하안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마 지금쯤이면 하안거 정진 중에 있는 수좌스님들은 호흡과 자세를 고르고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화두를 성성하게 들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래 전, 강원에서 공부를 하던 학인시절 초등학교 친구가 불쑥 산중으로 찾아와서 만난 적이 있었다. 산으로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어 공부하는 친구가 불현듯 보고 싶었더란다. 어린 아이 손잡고 찾아온 친구와 함께 오후 방선 시간에 틈을 내서 도량 주변을 산책하며 두어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아쉽게 돌아서면서 내 손을 잡고 “부처님 제자 된 것 후회 안하지? 참 잘했다. 그런데 스님한테서 맑은 산냄새가 나서 좋다. 꼭 큰스님 되어 또 만나자….” 그때 그 친구가 했던 이 말이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그래서 도심에 살면서 가끔 “아! 이제 나에게는 도심의 매연 냄새만 나겠구나…” 하면서 되뇌이곤 한다. 지금 나에게는 어떤 향기가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세월을 즐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무게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의 얼굴 위로나 몸과 마음으로 지나가는 시간이 그렇게 반가운 존재만은 아니다. 그래서 자기 삶 위로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려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어른 스님을 뵈면 “아! 저 어른의 삶 위로 흘러간 시간이 참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깨닫고자 하는 조급함이나 일상사에 급함도 다 내려놓고, 자기 수행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배려함에 인색했던 마음도 다 돌아서게 했던 것이 바로 시간의 힘인 것 같았다. 세월을 그렇게 보내기도 쉽지 않은데 세월의 참주인공이 되었던 모양이다. 바람을 만나면 바람이 되고 산을 만나면 산이 되어버리는 그런 주인공 말이다.
오랜 세월이 다시 흐르고 내 머리에 백발이 성성했을 때 후배가 찾아와 나를 만나고 돌아가서 나에게 어떤 향기가 난다고 할까? 순간순간을 잘 살아야 평생이 향기로울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간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승가에 사는 스님들은 관심사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시절, 젊음을 과신하고 살거나 수행자의 삶에 오만함과 만용을 부리며 삶의 질서를 절제하지 못한 사람은 평생 ‘그런 사람’이라는 꼬리표 하나를 덧붙이고 살게 된다. 또 혹여 작은 실수를 하게 되면 초심시절에는 참회를 통해 자기를 바로잡고, 윗사람으로부터 쉽게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젊어도 수행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은 누군가가 용서를 했다 하더라도 평생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살얼음을 지나듯이 그렇게 하루하루 살펴가며 살라고 했던가.
윗사람보다 뒤따르는 후학이 어렵다는 말이 있다. 어른이 되면 용서받는 입장보다 용서하는 입장에 있게 되고 누리는 자리만큼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 그래서 어른노릇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누리고 사는 자리만큼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쉽게 그 사람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나이에 비해서 젊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참 모습이 동안童顔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좀 엄격해 보이거나 첫 인상이 어려워 보이는 스님을 보면 “기숙사 사감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니면 전사처럼 씩씩한 사람을 보면 “쟌다르크 같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참 그렇다. 누군가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듣기에 좋은 표현을 하겠지만 가끔 자기는 누구나에게 편안하고 인자한 사람이고 싶은데 ‘기숙사 사감 같다’라는 표현을 듣게 되면 왠지 그 표현을 좋은 의미에서 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엄격하고 차갑게 보인단 말인가 싶어 거울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몇 년 전에 부산 광안리에 있는 수녀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 이해인 수녀님이 있는데 그 수녀님은 사람들로부터 젊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런데 예전에는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았는데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나이보다 젊게 보입니다”라고 하면 왠지 자기가 철없어 보여서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상대방에게 ‘젊어보여서 좋습니다’라는 표현을 쓸 때는 그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게 되었고, 또 나 자신의 경우에 옛날에는 ‘기숙사 사감 같다’는 표현을 많이 들었는데, 그때는 “아! 내가 좀 엄격하게 보이는구나” 아니면 “내 검고 굵직한 안경테 때문이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스님! 스님은 왠지 기숙사 사감 같은 분위기가 나요”라고 하면 나는 마음이 잠시 불편해진다. 내가 그렇게 마음에 빈 자리가 없어 보이고 무서워 보이는가 싶어 그 사람이 떠나고 나면 나는 거울을 다시 본다.
대학을 다닐 때의 일이다. 부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대신에 교직을 이수하고 있던 때였다. 그때 우리 종단에는 종단 개혁이라는 큰 이슈가 있어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이유로 단체행동을 많이 해야 했다. 그래서 몇 번씩 결석을 본의 아니게 하게 되었다. 담당 교수들은 3회 이상 결석을 하면 학점 나가지 않는다고 경고를 했던 터였다. 그래서 그 학기는 교직 학점이 엉망이어서 그 다음 해에 다시 그 과목을 신청해 들었다.
그런데 봄 학기에 교직이수자들은 교생실습을 나가야 했다. 나는 여자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실은 내심 중학교로 교생을 나가고 싶었는데 배당된 학교가 여자고등학교였다. 학생들하고 세대차이가 많아서 학생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한참 강남에서는 오렌지 족이 유행이었고 신촌 홍대와 이대 주변에서는 낑깡 족이 유행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동국대학교 비구니 수행원의 위치가 교통편이 불편해서 아는 불자님의 중고차를 빌려 타고 학교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비구니 수행원 공사를 할 때, 공사하는 사람들과 수시로 연락을 해야 했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때라 제일 빠른 연락 수단이 호출기였다. 그래서 호출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루는 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하려는데 어느 학생이 “와! 우리 선생님. 오렌지 스님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 학생의 의견으로는 스님인데 자동차와 호출기를 사용하는 최첨단을 걷는 현대식 스님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자기들 언어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행원으로 돌아오며 언어 뒤에 있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누군가의 표현에 따라 소극적으로 살 필요는 없지만 때론 자기 자신이 자기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객관적이지 못하고 상대방의 표현이 정확할 때가 있기 때문에 수행자가 필요 이상의 것을 갖지 말 것과 수행자로서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삶은 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점점 세월의 두께가 더할수록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는 일과 누군가의 삶에 자신의 향기를 나누고 나지막한 격려의 말 한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산다면 나에게도 훗날 은은한 ‘침향’ 같은 수행자의 향기가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