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이상사회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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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화 - 진월
1995년 04월 158호
지난 2월 태국에서 열린 “불교적 사회! 국제참여불자연대의 이상회의(The Dhammic Society: Towardsan INEB Vision)ꡓ에 다녀온 소식을 전한다.
회의 전날 자정 무렵에 도착한 방콕은 낮보다는 덜해도 퍽 더웠다. 아홉 시간의 시차와 함께 졸지에 딴 세상에 왔음을 실감했다. 회의장인 웅카락의 윙사닛 아쉬람(The Wongsanit Ashiram for Life and Society)에 도착했다. 남국풍의 정원에 자리한 수도장은 은은한 달빛 아래 깊은 정적에 들어 있고, 밤 벌레 소리가 운치있게 울려와 어린 날 기억 속의 한국 농촌 여름밤 풍경 같았다.
바람이 잘 통하는 누각 형태로 지어진 숙소 쿠리(승려용 요사)에 안내되었다. 한방을 쓰게 된 캄보디아 스님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종이 울리고 대중이 운집하여 아침 예불과 좌선을 하였다. 날이 밝은 뒤 남방 불교권의 전통에 따른 아침 공양을 하였다. 신도들이 만들어 온, 쌀과 옥수수를 넣은 코코넛 죽과 삶은 채소, 바나나와 파파야 같은 아열대 과일들로 차린 공양은 신선하고 푸짐했다. 점심에는 밥이나 국수를 먹지만 아침에는 보통 죽을 먹는다. 대부분의 남방 스님들은 하루에 한끼만 먹고 오후 불식 관행을 철저히 지킨다.
첫날 오전에 개회식을 끝낸 뒤 참석자들의 인사와 자기 소개가 있었는데 구면들도 있어 반가웠다. 이번 회의의 주최자연 술락(Sulak Sivalalga) 선생은 특히 인연이 깊은데, 태국 민주 민권운동의 주역이며 군사 정권의 심한 핍박 속에서도 양심과 소신을 지켜온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근년에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으며, 미국과 유럽 등지의 대학이나 사회 단체에서 강연과 연대 활동을 펼쳐온 불교 운동가이다. 지금도 그는 국왕의 권위에 누를 끼쳤다는 억지 혐의로 재판에 계류되어 있다. 그는 불교도들의 국제적 연대 활동이 필요함을 느끼고 뜻이 같은 이들과 7년 전 INEB(International Network of Engaged Buddhists)를 창설하였다. 올해 INEB 연차총회(2월 27일~ 3월 2일)를 앞두고 그 비전을 확보하고자 이번 회의를 준비한 것이다. 또 알렌(Alan Senauka)법사는 버클리 젠센터에서 불교평화협회 (Buddhist Peace Fellowship) 간사로 활동하면서 이번 회의를 조직하는 일을 해 왔고, 산티카로(Santikaro Bhikkhu) 스님은 평화봉사단원으로 태국에 왔다가 불교혁신의 선각자인 고 붓다닷사(Buddhadasa Bhikkhu) 스님의 감화를 받고 출가하여 그의 저술 영역과 유업의 계승에 헌신하고 있는데 이번 회의의 운영을 맡았다.
이번 워크숍에는 일본과 필리핀을 포함한 아시아와 영국을 포함한 유럽 및 북미, 그리고 호주 등 열여넓 개 나라에서 모인 사십여 명이 그들의 연구와 경험에 바탕을 둔 이상사회에 대한 비전을 갖고 동참하였다. 그 가운데는 퀸(Christopher Queen) 하버드대학 교수, 코버린
(Gerhard Koberlin) 함부르그 대학 교수, 카바지레스(Roberta Cabazaks) 필리핀 가톨릭 수녀, 라이트훗(Mary Lightfoot) 미얀마 적십자 요원 등 여러 분야의 성직자, 학자, 사회 활동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날마다 오전과 오후에 한 사람의 발제에 이어 분과토의 등을 통해 지구 공동체의 바람직한 미래 사회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첫번째, 술락선생이 “가슴과 함께 하는 머리: 정의로운 사회에의 불교적 비전(Head with Heart:A Buddhist vision of a just society)\" 이란 제목으로 덕성과 감성의 조화로써 건전한 인격과 사회 구조의 형성에 대해 역설했다. 현대사회는 욕심과 공포. 폭력과 압제의 구조가 우세하며 소비주의, 관능주의, 이기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 분석한 뒤, 많은 이들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나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하는데, 지혜와 자비를 기본 원리로 하는 불교적 이상사회 비전이 저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계, 정, 혜 삼학의 균수로 우리 사회 문화의 조화롭고 윤리적인 발전 지향과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평등사회 건설의 이상을 제시했다.
두번째, 미국 상황에서 본ꡐ미래의 전망(Envisioning the future)ꡓ을 발표한 에이킨 선사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ꡓ는 글귀를 인용하여 거대 조직인 주, 연방정부, 나아가 세계 공동체의 바람직한 변화는 우리 각자와 이웃의 작은 공동체가 건전하게 육성됨으로써 가능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내더(Ralph Nader), 촘스키(Noam Chomsky), 머윈(W. S. Merwin)등 행동하는 지성인을 예로 들어 우리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많은 제자와 여러 권의 저술을 통해 널리 존경받고 있다. 그의 노련한 선수행 경험과 온화한 인품에서 나오는 팔순 할아버지의 화음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세번째, 영국 신경제협회(New Economic Foundation) 연구 간사인 재텍(Simon Zadek)박사는 “진취적 불교경제를 향하여(Towards a Progressive Buddhist Economics)ꡓ에서 슈마tu(E. F. Schumacher)의 유토피아 그리고 아리야라트네(A. T. Ariyaratne)의 사르보다야(Sarvodaya) 운동을 예로 들면서 자기실현, 사회정의, 조화와 창조성, 자연 생태계 안에서의 저마다의 역할 등을 언급하고, 물질과 정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불교의 응용이 건전한 경제 원리임을 제시했다.
네번째, 일본의 마루야마 법사는 “현대 불교를 위한 사회적 논제들(The Social Issuess for Modern Buddhism)”에서 자유, 정의, 복지, 평등, 평화, 인간 존엄성 둥의 보편적 주제의 인식과 환경, 성별, 인종, 가족 상황의 악화에 착안하여 불교적 대안의 모색과 정치 사회적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적극적 현실 참여를 주장했다.
다섯번째, 태국 타마삿대학교의 카빌싱(Chatsumarn Kabusingh) 교수는 ꡒ불교 여성적 관점에서 본 이상사회 전망(Vision of Dhammic Society : Buddhist Women\'s perspective) 에서 태국서민 여성들의 열악한 사회 경제적 환경과 처우, 특히 여성 수행자가 겪는 부조리와 고충을 지적하며 바람직한 불교 사회를 위한 개선책의 필요를 역설했다. 한 예로서 매지(Mae ji : 출가한 여자로서 행자나 사미니 정도의 신분. 태국에는 현재까지 비구니가 없음)에게 내무부는 출가자라 하여 선거권을 주지 않는 반면, 교통부는 승려가 아니라하여 무임 승차를 허용하지 않는 실정의 부조리를 들었다.
여섯번째, 필자는 “불교적 이상사회 : 한국으로부터의 대승적 비전(A Buddhist Ideal Socity : A Mahayana Vision from Korea) 이라는 제목으로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의 원인 분석과 그러한 문제들이 없는 이상사회의 접근 방식을 모색했다. 근시안적 이기주의와과학, 기술, 경제 우선의 현대산업사회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 부조리의 극복과 쇠락한 인간 가치의 회복을 위하여, 이타적 인격의 전형인 보살 정신이 바탕이 된 이상사회 건설을 위한 불교교육의 중요성과 사회복지 증진을 강조했다. 아울러 남북통일과 조계종불교 개혁운동의 진행도 바람직한 미래 한국사회 비전의 기본요소로 설명했다.
일곱번째, 스위스의 가이서(Marcel Geisser) 선사는 “불교적 사회 : INEB의 비전(The Dharmic Society : Towards an INEB Vision)\"에서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의 예를들어 생명 존중과 평화증진을 통한 불교 이상사회 건설의 단초를 제시했다. 그는 연기법에 기초한 윤리의 회복과 건전한 생활원리로서의 계율에 대한 현실적 재해석의 필요를 강조하며, 진정한 불교는 항상 현실 속에 살아나는 것이라 했다.
여넓번째, 산티카로 스님은 “불교적 사회주의의 가능성(Some Possibilties of a Dhammic Socialism)에서 붓다닷사 스님의 사상에 서서 사회 문제 인식과 해결의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소승과 대승의 편파성을 극복하여 불승(佛乘)을 지향해야 함을 전제하고, 사회 문제(고苦)의 원인을 자본주의, 소비주의, 군사주의, 부정, 차별 배타주의, 흥행주의 등으로 보았다. 그 해결 방법으로는 팔정도(八正道) 정신을 바른 종교, 바른 문화, 바른 경제를 포함한 열 한기지 사회적 정도(正道)로 해석하여 예시했다.
끝으로 종합 토론과 평가회를 가져 모든 참가들이 각자의 소감을 나누고 폐회하였다.
이 진지한 회의 기간 동안 우리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한시간씩 참선과 예불을 했는데, 각 나라의 전통의식에 동참해 다양한 문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필자도 한국식으로 예불을 안도하고 공양 때의 의식을 주재하기도 했는데, 한국식 예불이 가장 좋았다는 평을 많은 사람들에게서 듣기도 했다. 고유한 전통을 지켜 오는 여러 나라 불교인들은 물론 가톨릭 성직자와 모슬렘 등 문화와 민족의 다양성이 어우러진 대화의 광장에서 각자가 느끼는 현 사회 문제점에 대한 반성과 함께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위해 격의 없는 의견을 나눌 수 있었던 뜻깊은 모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