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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불교와 ‘지저스 럽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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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법진 2003년 06월 256호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치는가 싶더니 밤색 정장을 단정히 입은 여자가 내 등 뒤에서 사탕을 하나 건네준다. 얼떨결에 받아들고서는 “땡큐”라고 했다. 그랬더니, 되돌아오는 말은 “유아 웰컴”이라고 한다. 자연스런 대화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사탕을 건넨 이는 나에게 “지저스 럽스 유(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탕 하나로 시작된 작은 인연이 이렇게 황당한 말을 듣는 것으로 끝나다니. 그야말로 사탕 하나에 완전히 당한 것이다. 외국유학 중에 있었던 일이다.
그 여자를 다시 만나면 어떻게 복수해줄까 하는 생각으로 한나절을 고스란히 보냈다. 머릿속은 온통 잡다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아무래도 말로는 안 될 성싶은 사람이니 이렇게 한대 때려줘야겠다 하고 핸들 잡은 손을 들썩들썩했다. 적어도 ‘나는 네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점잖게 대꾸했어야 했는데, 그보다는 ‘너나 지저스 러브 (예수님의 사랑)를 한껏 가져라’고 쏘아붙여야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양으로 살고 싶지 않으니, 너나 그렇게 살아라’고 타일렀어야 했는데, 등등.
순간적이나마 내가 그 여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폭력을 생각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신문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중동 폭력을 뉴스로 읽으면서 ‘폭력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건데’라고 자탄했던 내가 아닌가.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이스라엘 건국과 더불어 유태인들에게 부당하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유태인들은 반대로 자신들의 종교적 세속적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무려 2000년 이상이나 팔레스티니안들에게 부당하게 점유 당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최근 60여 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두 집단 사이에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동 분쟁의 내면을 가만히 보면 그곳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무장된 집단적인 최면 같은 게 있다.
팔레스티니안들도 유태인들과 마찬가지로 원래 중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주민이 아니라 원래 그곳에 정착하고 있던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국을 비롯한 2차대전 승전국들은 팔레스니티안들이 2000여 년 동안 살고 있던 삶의 터전에 유태인 국가 이스라엘의 건설을 승인하여 준 데에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국가 없이 떠돌다가 바야흐로 자신들의 염원인 시오니즘을 향한 첫 단추를 끼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에 대한 팔레스티니안들의 저항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로 끈질기다. 사막의 건조함을 극복하고 그 위에 안정된 풍요의 보금자리를 일구고자 하는 그들에게는 동시에 두 가지의 당면 과제가 있다. 하나는 자연을 극복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후 세계 질서를 극복하고 자기만의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도 쉬운 게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해 실로 끈질기고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팔레스티니안들이 전후 세계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이스라엘의 무참한 보복만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인접 국가들은 같은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동질성으로 팔레스티니안들에게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인접 이슬람 국가들의 국제 관계가 매우 복잡하기는 하지만, 전후 세계 질서를 만든 서방 세계에 대항하기 위해 이슬람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종교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외부 서방 세력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 국가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그리하여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어 있지 않은 한국인들은 유태인들의 시오니즘을 제국주의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유태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비록 그들이 오랜 기간 동안 가나안 지역에 그들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 있지 못했지만, 그들은 한번도 그 지역을 비우고 떠난 적이 없었으며 동시에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시간적인 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유태신앙을 바탕으로 그들이 독립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데 있다. 따라서 그들이 지난 세기의 여느 제국주의 세력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중동 지역의 분쟁을 보면 우리 역사가 경험한 호국불교와 같은 형태의 종교적 역할을 읽을 수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불교계가 국가적인 차원으로 동원될 때에는 호국불교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원광이 수나라로부터 귀국하여 황룡사에서 《인왕경》을 강의할 때에도, 의상이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신라를 통합하고자 십찰을 세울 때에도, 거란과 여진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승군을 모집할 때에도, 대장경 조판 불사를 추진할 때에도, 왜란과 호란을 경험할 때에도, 그리고 일제의 식민 정책에 저항할 때에도 그들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정당성은 늘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팔레스티니안들에게 이슬람 민족주의가, 그리고 유태인들에게 시오니즘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호국불교가 있었던 것이다.
전통시대의 호국불교는 말이 호국이지 실은 왕권의 안정적 유지에 그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인왕경법회’에서는 어진 왕(인왕)이 반야의 지혜와 인천의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 나라의 안팎이 안정될 것이라 했다. 어진 왕이 국가를 통치하므로, 그에 대한 인과도 좋을 거라는 믿음에서 나온 것들이다. 호국불교는 불교와 왕권의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백성을 통합하고, 외부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정하든 부정하든 간에,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어느 역사를 막론하고 침략자들의 손에는 달콤한 사탕이 들려 있었다. 자기로 대표되는 공동체의 이념과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그들은 언제나 침략지의 약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의 유혹에 대한 아마추어적 대응은 침략자의 프로적 근성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고 만다. 그래서 결국은 아마추어적 대응 전략을 버리고 폭력을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적 논리 체계 속에서 폭력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왕과 국가가 개인보다 우선하는 이념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불교정신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사탕으로 유혹되고 ‘지저스 럽스 유’로 린치 당하고 난 후, 은연중에 폭력의 대응을 떠올렸듯이, 침략자의 유혹과 린치도 문제지만, 그에 대한 폭력 대응도 문제이지 않을 수 없다. 호국불교의 본질을 알고 버릴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