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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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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은표 2003년 06월 256호
요즈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불교는 과학이다’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과학을 불교와 연관하여 말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과학에서 쓰는 용어가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으로 밝혀진 사실 그중에서도 미소微小한 크기를 갖고 있는 원자의 특성을 토대로 부처님 법을 설명하려고 한다. 백만 배 이상을 확대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으로도 겨우 볼 수 있는 원자原子의 행동을 보면 재미있다. 그들은 주위 환경에 맞추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마치 또 하나의 우리 생활을 보는 것 같다.

원자들이 모여서 물질이 되고 물질을 가공하면 사람들에게 편리한 도구가 된다. 물질의 근본이 되는 원자는 그리스 시대부터 말은 있어왔다. 그러나 불과 백여 년 전만 하여도 원자의 존재만 말할 뿐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과학의 발달로 원자들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원자가 얼마나 작은지, 백 원짜리 동전이 지구만큼 커진다면 원자는 축구공만할 것이다. 원자는 핵核을 중심으로 전자電子가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금성이나 지구가 돌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원자나 태양계는 유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어 학자들은 원자나 소립자의 거동을 관찰하여 우주宇宙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있다. 의상 대사의 ‘하나의 작은 티끌에 시방세계가 있다’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 생각난다.

원자는 홀로 있으면 불안해 한다. 원자는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우리의 호흡에도 태풍 같은 영향을 받아서 빠른 속도로 날아가버린다. 따라서 원자는 팔을 내밀어 이웃한 원자들을 끌어당겨서 구조를 이루려고 한다. 도솔천 내원궁 위에는 그물이 덮여 있고 각각 그물코에는 구슬이 달려 있는 것과 같이 원자는 그물 구조를 이루며 그물코에 달린 구슬처럼 달려 있다. 미약한 원자는 서로 연결이 되면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의 호흡은 물론 바람, 힘 또는 열 등에도 날아가지 않는다. 한편 원자 덩어리로 된 구조물들은 서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큰 구조를 이룬 것이 작은 구조를 잡아먹어 더욱 커지려고 한다. 사람이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려는 것이나, 힘 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과 흡사하다.

원자들은 같은 종류만 있으려 하지 않고 다른 종류와 손을 잡으려고 한다. 금과 은 덩어리를 붙여놓고 열을 가하면 원자들은 부지런히 움직여서 금과 은이 서로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섞여야만 강해지고 안정되기 때문이다. 즉, 순금은 무르지만 은이 섞이면 단단해진다. 원자들은 배타적이지 않고 다른 원자를 포용함으로써 보다 강해지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도 다른 사람, 민족, 나라와 서로 화합하고 조화로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부처님께서 승단에 그토록 화합과 조화를 강조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원자에 강한 충격을 가하면 원자는 고유한 특성을 버리고 미련 없이 다른 종류의 원자가 된다. 예를 들면 철鐵 원자에 빛과 같은 속도를 가진 헬륨 이온 원자가 충돌하면 이 두 종류 원자는 합쳐져서 니켈 원자가 되어버린다. 철은 항상 철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니켈로도 금金으로도 변할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태양은 수소가 핵융합을 하여 열을 발생시키면서 헬륨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태양은 불이 꺼진 별이 될 것이고 지구도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량한 시간 후에 일어날 것이므로 우리 세대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결국 수소水素라는 원소에서 나온 것이다. 수소가 핵 융합하여 헬륨이 되고 헬륨이 핵 융합하여 베릴륨이 되고 베릴륨이 핵 융합하여 산소酸素가 된다. 그러면 수소는 어떻게 왔는가? 다른 종류의 원자들은 결국 둘이 아니며 뿌리가 같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원자가 모인 물질 즉 재료를 연구하다보면 느끼는 일인데, 쓸모없는 재료는 없다는 것이다. 재료에 따라서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고 단지 사람의 용도에 따라서 쓰여질 뿐이다. 비행기나 자동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비중이 작은 알루미늄이나 티타늄 합금을 쓴다. 반면 엘리베이터의 균형추의 무게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비중이 큰 철, 납, 텅스텐 등을 사용한다. 물건을 접합하기 위해서는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녹는 납을 쓰지만 전구 불에는 높은 온도에서도 잘 녹지 않는 텅스텐을 사용한다. 이렇게 재료들 사이에는 우열이 없고 남의 특성을 모방하려 하지 않고 그냥 존재한다.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해 나간다면 이것이 반야般若의 삶, 행복幸福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약 20여 년 동안 재료材料 공학을 공부하면서 부처님 말씀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수천 년 전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첨단 과학으로 밝혀진 사실을 비교해보면 언제나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성理性과 합리주의合理主義에 철저한 서양 지식층이 부처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부처님 법은 빛을 발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스승은 자연이었기 때문이다.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듯이 나는 부처님의 실상진리를 벗어날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작은 우물 속에 있는 중생이 부처님 가르침의 거울을 가지고 작은 것 하나라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무명無明의 구름에 가려서 사물을 바르게 볼 수 없지만 부처님의 빛을 이용하여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