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이르기를 하늘이 끝없이 높다고는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 내 몸을 굽히지 않을 도리가 없고, 이 땅이 후덕厚德하다고는 하지만 내 몸 두기 위해 바늘 하나 꽂을 만한 자리도 찾기 힘든 것이 중생들의 세상이다. 진리를 행하는 이에게는 모든 일이 도道에 이르는 문이요, 모든 자리가 곧 근원으로 통하는 길(事事入玄門 處處歸源路)이라고 했건만, 중생에게는 모든 일이 어둠 속의 문이며, 모든 자리는 지금의 나를 알기에도 부족함이 있다.
그러므로 눈 밝은 이에게는 안개나 어둠 속의 일마저도 완연할 일이나 무명의 중생에겐 눈앞에 피어난 꽃잎이 그저 화로 위에 떨어진 눈꽃만큼 덧없다.
사문유관四門遊觀이란 석가부처 성도 전 태자의 신분으로 성城의 동서남북의 문을 나가서 인생의 고통스런 장면을 만난 후 뒷날 출가를 결심하게 된 사건을 말한다.
어느 날 동쪽의 문으로 산책을 나갔을 때 본 마른 풀처럼 빛이 바랜 머리와 지팡이보다 더 가냘픈 노인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된 일과, 남쪽 성문 밖으로 수레를 이끌자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던 병자의 모습을 보게 된 일, 서쪽의 문에서는 죽은 시체를 앞세운 장례행렬과 마주치게 된 일로 싯달타는 마음에 깊은 병을 얻었다. 신분이 높거나 혹은 낮거나, 그 심성이 착하거나 혹은 악하거나, 여자나 남자나 할 것 없이 사람이 태어나면 결국은 죽음으로 달려간다는 사실이 참으로 덧없고 무력했던 것이다.
며칠 뒤 북쪽문에서 만난 의젓하고, 기품이 넘치는 사문沙門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을 한다는 그 한 마디의 인연으로 밝은 눈을 한 싯달타는 곧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모든 중생의 고통까지도 근원根源에 이르는 길로 바꾸었다.
그러므로 중생에게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친구보다 가까운 일이어서 그 이치를 알 사이도 없이 그저 화살과 같이 달려가버리는 일이었으나 싯달타가 처음으로 본 노老·병病·사死는 훗날 그것이 도에 이르는 문이 된 것이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으니 이러한 고통을 맛보지 않은 싯달타에게 진리는 늘 저 산에 걸린 구름보다도 더 허무한 것이었으리라.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은 어두운 길에 이정표를 찾아 그 발걸음을 의지한다. 석가모니 일생의 여덟 장면 중 그 세 번째로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을 두는 것은 아직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에 앞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