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탱 가능한 세계를 위한 종교의 역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해인
2003년 05월 255호
최근 우리글로 번역되어 나온 <지구환경보고서 2003>(도요새 펴냄)에서는 특별한 주제를 다루었다. ‘지탱 가능한 세계를 위한 종교의 역할’ 환경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월드워치연구소에서는 매년 <지구환경보고서>를 펴내는데, 물, 대기, 에너지, 보건위생 등의 주제를 다룬다. 이번 보고서에서 ‘지탱 가능한 세계를 위한 종교의 역할’은 새롭고 주 목받을 만한 주제이다.
필자가 미국인이라는 이유이겠지만, 종교의 역할을 근거로 삼은 재료들이 미국과 스리랑카 등에 한정돼 있고, 많은 부분이 개신교와 가톨릭의 것이어서 불교의 입장에서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쉽지만, 우리 나라의 종교환경활동의 폭과 깊이를 가늠해보는 계기로 삼을 만하다. 특히 불교의 환경활동이 여타의 종교보다 활발한 이즈음에 우리 나라에서의 불교(종교) 환경활동의 가능성을 짚어보는 데 유용한 도구일 수도 있다.
필자인 게리 가드너(월드워치연구소 이사)는 환경주의자들과 종교인의 접촉을 환경활동의 최근의 추세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한다. 중앙집권적인 대규모 종교에서 지역의 부족종교까지 각 종교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1986년 이후 2001년까지 환경과 지탱 가능성에 관한 종교인들의 대표적인 10개의 국제회의를 간략히 소개하고 있으며, 이것과 함께 이 글에서 3쪽 정도로 소개한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운동과 미국 성공회의 교구 내 ‘에너지 회계감사’ 제도는 한국불교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종교는 지탱 가능한 세계를 건설하려는 노력에 최소한 다섯 가지의 강력한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게리 가드너는 보고 있다. 우주론(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는 역량, 도덕적 권위, 수많은 신도, 상당한 물적 자원, 그리고 지역사회 형성 능력이다.
세계관의 형성 종교가 사회변화에 효과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첫 번째 핵심은, 개인의 세계관을 형성하여 개인의 삶에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종교에서는 자연과의 관계를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윤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세계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역량은 윤리로 전환되고 사람들의 행태에도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도덕적 권위 두 번째 자산은 도덕적 권위를 불어넣고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은 영적인 문제에서 폭넓은 경험을 했고, 정신 수준에서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타고난 힘을 갖고 있다.
신도의 수 지구상에서 약 80%의 사람들이 세계 1만여 종교에 속해 있다. 규모 자체가 엄청나기에 공정하고 환경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참여시킬 수 있다면, 지탱 가능성 의제를 극적으로 진척시킬 수 있다. 종교가 없지만 영적으로는 절대적인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훨씬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물리적·재정적 자원 영국의 NGO인 ‘종교와 환경보호동맹’은, 세계에서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의 7%를 전세계 종교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건물도 많다. 파키스탄에는 30가구당 모스크가 한 개씩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를 제외하고 가장 큰 사회봉사 제공자가 천주교이다.
사회자본의 창출 종교는 사회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사회자본이란 강한 공동체를 창출하는 신뢰, 의사소통, 협력, 정보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종교는 흔히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소외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성원들 서로 간에도 돕도록 장려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이 특히 강력한 통합작용을 한다.
게리 가드너는 소비에 대한 종교의 가르침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절제에 대한 종교의 가르침과 생태주의가 결합하면 검소한 삶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열릴 것은 분명하다. 많은 종교들은 검소하게 살아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고,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여 이웃과 자연세계 그리고 정신세계와의 관계를 깊게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실, 소비는 환경 문제 발생의 근원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소비함으로써 생명을 유지시킨다. 인간 외의 다른 생물체에게 소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태계의 법칙 속에서 적절히 통제되어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과소비와 대량소비로써 생존의 한계선을 허물어뜨린다. 과소비는 물질의 풍요라는 말로 둔갑되어 찬양받고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소비는 경제를 유지시키는 엔진과 같은 것이다.
과소비와 대량소비는 자원이 무한하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되는데, 대부분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물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물은 유용한 돈벌이 수단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공기도 마찬가지다. 맑은 공기는 많은 이익을 남겨주는 새로운 상품이 되었다. 물론 자원은 생성-소멸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데 문제는 과도한 소비로써 생성-소멸의 순환이 멈춘다는 데 있으며, 현대 경제는 과소비와 대량소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교의 세계관에 기초한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운동은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세계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르보다야에 있어서 소비란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여기는 서구에서처럼 경제적인 목적이 아니다. 대신 사르보다야는 소비를 도구로 보고, 영적인 사업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르보다야의 이 같은 깨달음은 불교의 가르침에 천착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다. 그래서인지, 지탱 가능한 세계를 위한 종교의 역할은 환경주의자들에게서 강조된다. 합리성과 객관성, 기술의 발달로 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분석과 통계는 필요하긴 하지만, 현대 환경주의의 제한적인 언어일 뿐이다.” 명쾌한 지적이다.
마침내 환경주의자들은 운동 근원의 뿌리로 되돌아감으로써 자신들의 작업에 감성을 불어넣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영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대중에게 접근하는 것은, 지탱 가능성을 위해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종교인들을 동맹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영성이 발전에 중요하기 때문이다.”고 게리 가드너는 분석하고 있다.
불교를 포함한 종교는 예전에 없었던 ‘지탱 가능한 세계를 위한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 한국불교는 세계 어느 지역의 종교보다 영적·생태적 자산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마음씀은 아직 크게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