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頂上에서 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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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3년 05월 255호
옛적 정조 5년 신축년(1781) 초여름에 성주와 칠곡의 선비들이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에서 모일 일이 있었다. 이 날 모인 선비들 가운데 가야산을 노닐면서 즐기려는 뜻을 가진 이들 아홉 사람이 무리지어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길에 올랐는데, 옥계玉溪를, 율현栗峴을 넘어 오시午時가 되어 홍류동에 이르렀다. 홍류동은 이때 초여름 녹음綠陰 방초芳草가 한창이어서 그야말로 ‘물외物外의 가경佳景’이었다고 할 만하다. 첩석대疊石臺 취적봉吹笛峯 낙화담落花潭 등의 명소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구경하느라 날이 저무는지도 모르다가 저녁 무렵 해인사에 들어가 하루를 묵었다.
이튿날 학사대에서부터 천천히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서로 돌아보며 경계하기를 “산에 오르는 방법은 또한 문학을 익히는 것과 같아서 조급하게 나가려는 뜻이 없고, 쉬지 않는 공부가 있다면 중도에 폐하는 근심이 없으리라.” 하여, 길이 험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함께 정상에 도착하기를 기약했다. 중소리암中蘇利菴 도솔암兜率菴 상소리암上蘇利菴 옛터를 지나 봉천대奉天臺에 이르니 상봉이 멀지 않았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곧 상봉을 향했는데, 이때 두 사람이 험준한 길을 겁내어 먼저 하산하고 말았다. 일행은 이에 “구인九의 산을 만드는 일에 한 삼태기 흙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한다(爲山九 功虧一).”는 《서경》 <여오편旅獒篇>의 말을 들어 하산하는 벗을 위해 아쉬워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상봉에 이르러 눈 앞에 사방으로 아득히 펼쳐진 산들을 굽어보며 마음과 눈을 상쾌하게 하고 가슴을 열어 한 산의 광경을 두루 다 보았으니, 정상에 앉아 표연히 속진의 누를 잊은 순간 결코 신선이 따로 없었다. 이윽고 신선의 흥취를 안고 하산하는 길에 중봉암中峯菴에 들어가 잠시 쉬고 저물녘이 되어서야 다시 학사대에 이르렀다.
초여름의 산행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 산행에서 우리는 산에 오르는 일상의 일에서도 ‘자강불식自彊不息’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려는 고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하루 이틀의 유람에 불과한 산행에서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우리 인생의 멀고 긴 산행에서는 더욱 자강불식의 이치를 체득하여 마침내 정상에 걸터앉아 쉬면서 웃을 수 있는 휴정休頂의 경계를 바라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