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차 한 잔의 공양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학사대 - 무성 2003년 05월 255호
매년 음력 3월 3일 삼짇날 가야산 마애 부처님전에 차를 공양 올리는 헌다식을 강주스님, 학감스님과 사중의 어른스님을 모시고 여법하게 잘 마칠 수 있었다.
헌다식이 있는 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에 우리 다경원 소임자 스님들은 무척이나 걱정을 많이 했다. 지난해 삼월 헌다식 때 비가 오는 바람에 고생을 한 기억이 떠올랐고, 또 작년 해인사 1200주년 개산대재(처음 해인사를 창건한 날) 때 전국의 다인茶人 백여 분과 스님 십여 분이 1200주년 기념 헌다식을 아주 장엄하고, 여법하게 진행하던 중 갑자기 쏟아진 집중 소나기 때문에 낭패를 겪었던 기억도 있었다.
그 덕분에 개산대재 헌다식이 더욱 기억에 남게 되었지만….
헌다식 준비를 위해 치문반 스님, 사집반 스님들과 함께 다경원 부회장 스님은 새벽강의를 마치곤 바로 짐을 이고 지고 먼저 올라가 헌다식 준비를 했다.
비가 계속 올 것을 대비해 비닐로 천막을 치고, 마애 부처님 전에 사시(점심)불공도 드리고… 이 선발대는 히말라야의 셀파들처럼 짐을 잔뜩 지고 올라가 대중들이 오기 전에 준비를 완전히 마쳐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해인사에는 유명한 약숫물이 있는데, 5대 약수 중의 하나인 장군수가 그것이다. 그래서 해인사 스님들이 그처럼 씩씩하고 우렁차게 예불을 하고, 축구를 잘하는가? 항상 마애불 헌다식을 할 땐 이 장군수를 새벽 일찍 떠서 정갈하게 선발대 스님 중의 한 분이 이 약수를 들고 마애불에까지 올라가 그 물로 차를 달여 헌다를 한다.
전날 헌다식 습의를 하였지만 나는 예불을 마치고 대중들보다 먼저 올랐다. 헌다식 팽주 준비와 헌다 담당 스님들(우린 ‘다동茶童’이라고 부른다)과 함께 다시 최종 준비를 했다.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의 가피였나 보다. 사시예불 들어갈 때까지 내리던 비가 마치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그친 게 아닌가!
마애불을 올라가면서 올해의 헌다식은 잘될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팽주 소임이 아랫반 스님들에게 내려가므로 나는 이번 행사를 전수차원에서라도 신중하게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스님들과 신도님들이 한두 분씩 올라오고 헌다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땀이 식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추워지고, 몸도 으슬으슬하고, 콧물이 날려고 하는데… ‘이러다가 헌다식을 망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식이 시작되면서 마음이 모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추위와 망상이 조금씩 떨쳐지기 시작하였다. 오직 차에 대한 생각과 그걸 작법하는 주인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차를 마실 때의 이 느낌, 차와 찻물과 나에 대한 집중을 견고히 챙기면서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마치 화두를 놓치지 않고 견고히 들고 있는 수좌의 느낌이 이럴까?
처음 하는 헌다식인데도 실수 없이 잘해준 사집반 팽주 스님과 치문반 스님들을 지켜보면서 다경원의 미래를 확신하게 되었다.
특히 올핸 유난히 눈에 띄는 스님이 방부를 들였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출가한 법현 스님이다. 이 스님이 헌다 시자를 여법하게 해서 참석한 신도님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나는 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도 그냥 좋아서 즐기고 있다. 그러는 사이 차가 주는 여러 가지 선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마음에 맞는 도반과 다인茶人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승려생활에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좋은 추억들이 될 것 같다.
헌다식을 마치고 음다飮茶를 가졌다. 조금은 바쁜 손길로 차를 우려내어 비가 오는데도 이처럼 헌다에 동참하려고 오신 분들과 여러 대중스님들께 따뜻한 마음의 공양을 올렸다. 식을 마치니 다시 비가 내렸다. 마치 모든 번뇌를 씻어내려는 듯.
다경원으로 내려가는 길에 참석하신 선배스님께서 이번 헌다식이 무척 여법하고, 행다도 잘 했다고 하신다. 그 내려가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게 느껴지던지… 하지만 매번 느끼는 거지만 조금은 아쉬운 점이 더러 있었다.
다경원에서 가진 들차회 때 참석하신 분들과 차를 함께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그간 미루어왔던 <다로경권> 합본호를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발간하게 된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몇몇 스님들이 방학 때 화주를 다녀 모금한 게 이번의 합본호 발간의 성과를 이룬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매년 이맘때 피는 들꽃인 얼레지꽃에 반해 오신다는 보살님과 올해 처음 만든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셔서 이 행사를 알고 오셨다는 보살님이다.
<다로경권>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는 그 시대의 차문화와 다인들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시대로서 처음 차를 접하거나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경원에서 ‘인터넷 다음Daum’에 ‘다로경권’이란 카페를 만들어 일상에 지치거나, 차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잠시 지대방처럼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산사의 정취와 향기로운 차향이 나는 공간이 되어 많은 이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많은 분들이 올바른 차생활을 하게 되었으면 한다.
이 삼월 삼짇날의 헌다식 공덕으로 후배 스님들의 수행에 장애 없이 모두 무사히 강원생활을 마칠 수 있기를, 또 모든 이들의 가정에 화목과 건강과 사랑이 넘치기를.
위없는 큰 서원을 발하신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하오며 발원합니다.□